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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늦깎이 Oct 19. 2022

살아야 할 이유를 찾아라

화성에서 살아남기 위한 제1미션, [마션]과 <Stayin' Alive>

“아무래도 X됐다.”

식물학자 겸 엔지니어의 화성 생존기. 맷 데이먼 주연의 영화로도 제작된 소설 [마션(The Martian)]은 이처럼 다소 과격한 문장으로 시작한다.


인류가 이미 화성에 두 차례나 사람을 보내는 데 성공한 어느 미래. 인류 역사상 3번째로 화성을 향해 떠난 탐사대 소속 마크 와트니는 화성에 도착한 지 6일째에 앞서 말한 X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된다. 지독한 모래 폭풍을 피해 대원들과 함께 우주선으로 이동하던 중 바람에 날려온 안테나에 옆구리를 찔린 뒤 정신을 잃은 것이다.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 상황. 생명유지 장치의 신호마저 잡히지 않자 동료들은 그가 사망했다고 판단한다. 동료들이 화성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MAV(Mars Ascent Vehicle, 화성 상승선)를 타고 빠져나가면서 화성에 홀로 남겨진 와트니. '고립무원’이란 표현이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상황이 있을까 싶다.


소설을 원작으로 맷 데이먼이 주연한 영화 <마션>

마션은 아직 현실에선 인류의 발길이 닿지 않은 '화성(Mars)'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그려낸 SF 소설이다. 배경은 화성이지만 그곳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8살 때부터 아이작 아시모프의 소설을 끼고 살았다는 작가의 내공이 빛을 발했기 때문이다. 

작가는 보통 사람들은 생전 본 적도, 볼 일도 없을 산소 발생기, 물 환원기, 에어로크 같은 기계를 주인공이 수리하는 모습을 마치 캠핑장에서 텐트 수리하듯 현실적으로 묘사한다. 여기에 인류가 1997년 화성에 보낸 무인탐사선 '패스파인더'와 로버(rover) '소저너' 같은 소품들이 곳곳에 등장해 소설에 현실감을 더하면서 마치 '팩션(fact+fiction)'을 읽는 듯한 생생함을 안겨준다. 



소설의 진정한 재미는 이젠 그만 절망하고 포기할 법한 상황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고 어떻게든 살 길을 찾아내고야 마는 주인공 마크 와트니를 지켜보는 것이다. 당장의 생존이 경각에 달린 상황에서 주인공은 진심으로 '재밋거리'를 찾아내려 애쓴다. 외딴 행성에 홀로 남겨진 주인공에게 재밋거리는 단순히 무료함을 달래주는 수단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건 인간으로서 '살아야 할 이유'를 제공해 주는 수단인 것이다. 


주인공이 찾는 재밋거리 중 가장 상위 목록에 있는 것은 음악이다. 음악은 등장인물이 거의 없기에 등장인물 간의 갈등도 없어 자칫 단조로워지기 쉬운 이 소설에 활력을 불어넣는 요소다. 아웅다웅할 상대가 없는 주인공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음악을 듣거나 <600만불의 사나이> 같은 옛날 드라마를 반복해서 본다.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된 후 (동료인) 조한슨이 가져온 비틀스 음악을 들으며 저녁을 먹다 다시 기운이 빠졌다.”
“(태양) 전지를 걷고 나면 다시 안으로 들어가 구린 70년대 음악을 켜고 운전을 시작한다.”


재밌는 건 주인공이 듣는 음악은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이 아니란 점이다. 고립 상황을 염두에 두지 않았던 탓에 지구를 떠날 때 따로 음악을 챙겨오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먼저 떠난 대원들이 놓고 간 소지품을 뒤져 음악이 담긴 USB를 찾아내지만 하필이면 자신의 취향과는 거리가 먼 70년대 음악들뿐이다. 


특히 주인공은 탐사대장 루이스의 플레이리스트에 담긴 '디스코'를 노골적으로 '디스'한다. 심지어 가까스로 NASA(미 항공우주국)와 처음 교신을 시작했을 때 먼저 떠난 대원들에게 안부를 전달해 달라는 말과 함께 “루이스 대장에게 디스코 완전 구리다고 전할 것”이란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남긴다. 


이에 미 항공우주국(NASA)의 화성 탐사계획 총책임자인 벤카트 카푸어는 다음과 같이 회신을 보낸다. 


"시카고 컵스는 내셔널 리그 중부에서 꼴찌로 시즌을 마감했어. 데이터 전송 속도 때문에 음악 파일은 압축해도 보낼 수가 없을 것 같네. 그러니까 '제발 디스코만 빼고 뭐든' 보내달라는 자네의 요청은 들어줄 수가 없어. 디스코를 신나게 즐겨보도록."




나는 너무 심심해서 주제가를 골라보기로 했다! 적당한 것으로, 그리고 당연히 루이스의 짜증 나는 70년대 노래들 가운데서 골라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끝내주는 후보곡들이 많다. 데이비드 보위의 <화성에서 사는 것>(Life on Mars>),  엘튼 존의 <로켓맨(Rocket Man)>,  길버트 오설리번의 <(당연히) 다시 또혼자[Alone Again(Naturally)]> 등등. 하지만 결국 비지스의 <살아 있는 것(Stayin’ Alive)>으로 정했다.

[마션] 355~366P


아이러니하게도 그토록 디스코를 싫어하는 주인공이 자신의 주제가로 선택한 곡은 디스코의 대명사인 비지스의 <Stayin’ Alive> 다. 마치 아무리 디스코가 싫고 현실이 마음에 안 들더라도 일단 '살아남고(staying alive) 볼 일'이라고 항변하는 듯하다. 'Stayin' Alive'는 존 트라볼타가 주연한 영화 <토요일밤의 열기(Saturday Night Fever)> OST에 삽입돼 1978년 빌보드 핫100 차트에서 4주 동안 1위에 오른 히트곡이다. 


<이토록 재밌는 음악 이야기>란 책에서는 <Staying Alive>를 생명을 구하는 데 도움이 되는 노래로 소개하기도 한다. 이 노래의 BPM(분당 박자수)이 100 수준인데, 정신을 잃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심폐소생술을 할 때 가장 이상적인 압박 속도가 바로 1분에 100회 정도이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사실, 이는 디스코란 장르의 특성이기도 하다. 디스코는 BPM이 100~120회에 달하는 비트에 맞춰 춤을 추는 데 최적화된 노래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심장협회(AHA)는 디스코 리듬에 맞춰 심폐소생술을 하면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내용의 공익광고를 제작하기도 했는데, 'Staying Alive'가 배경을 삽입된 이 광고엔 실제 의사 출신인 한국계 코미디 배우 켄정(Ken Jeong)이 등장해 “디스코가 생명을 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정말 떠난다니. 이 춥디 추운 황무지는 1년 반 동안 나의 집이었다. 나는 한시적으로나마 생존하는 법을 알아냈고, 이곳의 섭리에 익숙해졌다. 살아남기 위한 필사의 투쟁이 어느새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아침에 일어나 식사를 하고, 농작물을 돌보고, 고장 난 물건을 고치고, 점심을 먹고, 이메일에 답장하고, TV를 보고, 저녁을 먹고, 잠을 자고, 어떤 면에서는 현대 농부의 삶과 다르지 않았다.
그다음에는 트럭 운전사가 되어 장기간 세상을 횡단했다. 그러다 마지막으로 건설 노동자가 되어 이전까지 아무도 고려하지 않은 방식으로 우주선을 개조했다. 이곳에서 나는 온갖 것들을 조금씩 해보았다. 할 수 있는 사람이 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마션] 548P


지긋지긋한 화성으로부터의 탈출을 목전에 두고 주인공 와트니는 지난 1년 반 동안의 화성 생활을 회고한다. 생존의 고비를 수차례 넘긴 그이지만 그가 회고하는 화성에서의 삶은 평범한 일상들의 집합이었다. 지구에서의 일상과 달리 사선을 넘나드는 위기를 수차례 겪었음에도 그가 그간의 삶을 "현대 농부의 삶과 다르지 않았다"고 회고할 수 있었던 건 '희망'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척박한 땅에서 살아남아 언젠간 집으로 돌아가 다시금 평범한 일상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란 희망. 평소 와트니와 심리 상담을 했던 비행 심리학자는 "가장 큰 걱정은 희망을 버리는 겁니다. 자신이 생존할 가망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면 더 이상 노력도 하지 않을 테니까요"라고 말한다.


이 책의 맨 앞장엔 화성에서 살아가기 위한 7가지 극한의 생존 미션들이 소개된다. 대부분 '공기를 확보하라' '산소를 분리해내라' '작물을 재배하라' '에너지 자원을 확보하라' 같은 물리적인 생존의 조건과 관계된 내용들이다. 그 중 마지막 미션이 눈에 띈다. "반드시 살아야 할 정당한 사유를 마련하라."


살아야 할 이유가 사람을 살아가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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