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를 생각하면, 이것저것 하고 싶었던 게 많았던 것 같다.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면 자연스럽게 연을 날렸고,
비가 오지 않는 날이면 친구들과 구슬치기, 딱지치기, 땅따먹기 등
다양한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냈었다.
나만 좋아하는 걸 하며 시간을 보냈던 건 아니었다.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는 친구, 춤추는 걸 좋아하는 친구,
게임을 좋아하는 친구, 나처럼 수다 떠는 걸 좋아하는 친구,
독서를 좋아하는 친구, 생각하는 걸 좋아하는 친구,
먹는 걸 좋아하는 친구, 실험을 좋아하는 친구 등
각자 좋아하는 게 다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어느 순간 어른들은 우리에게
“네가 좋아하는 일만 하며 살 수 없어!”라고 말하며
우리의 좋아함을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그 말에 굴복당한 착한(?) 아이도 있었고
몇 번 저항하다가 굴복당한 덜 착한(?) 아이도 있었고
끝까지 저항하다가 굴복당한 못된(?) 아이도 있었다.
생각해 보면 그들은 우리의 좋아함을 굴복시킬 수 있는
대단한 존재가 아니었는데
우리는 그들이 내린 결론이 마침,
세상이 정해놓은 정답인 듯 받아들이고 있었다.
가장 열받는 건
“네가 좋아하는 일만 하며 살 수 없어”라고 말했던
어른 중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아는 어른도,
자신이 좋아하는 걸 끝까지 해본 어른이 없다는 걸
어른이 되고 나서야 깨달았다는 것이다.
이제는 우리가 어른이 되었고
친구 중에는 자신의 좌절감을 세상에 복사시키기 위해
아이들에게 똑같이
“네가 좋아하는 일만 하며 살 수 없어”를 말하고 있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끝까지 저항하다가 굴복당한
못된 아이가 어른이 되어
이제라도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려고 작정했어도
모순적으로 내가 뭘 좋아했었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제라도 더 늦기 전에
‘맞아. 좋아하는 일만 하며 살 수 없지’를
머릿속에서 지워버리자.
“네가 좋아하는 일만 하며 살 수 없다”라는 건
“내가 뭘 좋아하는지 사실 몰라요”를
그럴싸하게 포장한 말이니
대신 난 무엇을 좋아했었는지 종이에 적어보자.
처음에는 적히는 게 없어서 당황스러울 거다.
괜찮다.
누구나 처음은 다 어려운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