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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by 스피커 안작가

생각해 보면 우린 모두 ‘E’로 태어나지 않았을까?

우리는 얌전한 아이를 보면

“아이가 정말 순하고 착하네요.”라는 말을 쉽게 던진다.

그러면 아이 부모는

“아니에요. 얘가 얌전한 척하는 거지 집에서는 얼마나 별난데요.”

“너 왜 착한 척해? 집에서처럼 나대봐”라고 말한다.

아이의 진짜 모습은 뭘까?

우리 사회는 얌전하고 조용한 아이에게 착하다고 말한다.

시끄럽거나, 뛰어다니거나, 어지럽게 놀면

“넌 왜 그렇니? XX은 얌전히 착하게 잘 노는데 말이야! 그만 좀 나대!”라는 말을 쉽게 한다.

“착해져야 해. 착해져야 해, 착해져야 해.”

이 말에 세뇌당한 아이는 자신만의 나댐은 내려놓고

착한 아이가 되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그때 우리는 생각했어야 한다.

진짜 나대면 착한 아이가 아닐까?

시끄러운 것과 착한 건 상관관계가 있을까?

어지럽게 노는 아이 중에는 정말 착한 아이가 없을까?

“나는 정말 착한 아이가 아닐까?”

나는 학창 시절 나대지 말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렇게 나대다 보면 학교 공부를 잘할 수 없단다.

머리에 든 게 없으니 나댄다는 말도 들었다.

머리에 든 게 없어서 나댄다는 말이 듣기 싫었기에

나는 많은 책을 읽기 시작했다.

위인 중 나대는 사람은 없었을까?

천재 중 나대는 사람은 없었을까?

유명인 중 나대는 사람은 없을까?

책을 읽으면서 내가 발견한 놀라운 사실은

위인, 천재, 유명인 중 착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모두 시끄러웠고 뛰어다녔고 어지럽게 놀았다.

심지어는 정신병자 취급까지 당하며 학교에서 쫓겨난 인물들도 있었다.

착한 아이가 되기 위해 노력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책을 읽으며 내가 내린 결론은

나대다 보면 나댈(될) 수 있다는 거였다.

이 책은 착함이라는 거짓된 프레임에 갇혀

제대로 나대지 못했던 분들이

이제는 시원하게 나댔으면 하는 마음으로 썼다.

나대는 것과 착함은 아무 관계가 없으니,

나대도 착한 아이가 될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아이의 진짜 모습은 뭘까?

둘 다 아이의 모습이지 않을까?

우린 잘못이 없다.

이제라도 당당히 나댔으면 한다. 진짜 나 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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