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면서 고개를 돌리면, 그 녀석은 한쪽 구석에서 쪼막만 한 얼굴을 반즈음 숨기고 호기심에 가득 찬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곤 하였다.
어느 날 아침, 시리얼을 그릇에 붓다가 그 녀석이랑 눈이 딱 마주쳤다. 순간 이런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어? 인간 집사도 나랑 비슷한 걸 먹네?
[나는 네가 무엇을 하는지 다 알고 있다옹~]
길 위에 있었던 아이가 어떤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을지 몰라서 예방접종을 서둘렀다.
그리고 칩 등록도 요청하였다. 고양이는 칩 등록이 의무대상은 아니었지만 보호소에서 말하기를,입양을 해서 데리고 갔다가 다시 판매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면서, 꼭 칩(동물) 등록을 해달라고 요청하였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의사 선생님이, "이 아이한테는 이 주사가 생애 첫 예방접종이겠네요."라고 말씀하셨다.
야옹, 야옹... 애처로운 울음이 몇 번 들려서 마음이 불안했다. 이동장 안에 얌전히 앉아있는 녀석을 건네받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수고한 아이에게 간단한 먹을거리를 주자, 맛있게 먹고 나서는 곧이어 떡실신하듯 깊은 잠에 빠져들어갔다.
[예방접종 후 떡실신]
나를 쫄쫄쫄 따라다니던 아이는, 내가 외출했다가 돌아오면 항상 현관 입구에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었다. 가방을 내려놓고 손을 씻고 나가면, 기다렸다는 듯이 격하게 반기는 녀석을 쓰다듬으면서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이 교차하기도 하였다.
장난감을 가지고 열심히 노는 모습을 지켜보기도 하고, 때로는 가만히 앉아서 집사를 바라보고 있는 아이의 눈동자를 주의 깊게 바라보기도 하였다. 한쪽은 호박색을 띈 눈동자와 다른 한쪽은 사파이어를 닮은듯한 반쪽의 푸른색과 반쪽의 짙은 밤색을 띤 홍채 이색증(虹彩異色症, 영어: Heterochromia iridis) 혹은 오드아이(odd-eye)을 가진 눈동자를 가만히 쳐다보면서 생각하였다.
[매력적인 눈동자(오드아이(odd-eye))]
너는 어느 별에서 왔니?
아부지는 뭐하시노?
니 형제는 있나?
하면서 나도 모르게 슬그머니 직업병이 발동하면서, 녀석의 가계도(genogram)가 궁금해지기도 하였다.
[사냥감을 노려보는 매서운(?) 눈매]
온 집안을 찬찬히 탐색하더니, 앞발로 툭 쳐보고 움직이는 모든 것에 호기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며칠 전부터, 내가 아끼는 화분에 눈독을 들이더니, 드디어 일을 내고 말았다. 맙소사! 이일을 어찌할꼬!
[ 넘어진 금전수를 일으켜 세워보니... ]
대참사! 화분은 긴급히 피난을 가야 했다.
다른 화분들도 창문 쪽으로, 베란다로 이산가족이 되어 쫓겨 나가게 되었다.
새로운 장난감을 구해와서는 어떻게 사용하는지 방법을 알려주었다. 이내 곧잘 따라 하였고, 혼자서 몇 번을 해보다가 내 앞으로 그 물건을 스윽~하고 밀어놓는다. 같이 하자는 뜻이었다.
장난감을 사이에 두고 처음엔 함께 해주려고 시작하였지만, 재미가 붙고 하다가 보니 점점 승부욕이 발동하게 되었다. 작은 앞발을 날렵하게 움직이며 공을 쫓던 쪼꼬미는 온 에너지를 쏟아붓다가 이기지 못하는 상황이 되자 화를 내며 물어뜯는 시늉을 하기도 하였다. 그런 모습에 깔깔깔 소리 내어 웃고 있는 내 모습을 문득 깨달았다. 혼자 있을 때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이 장면이 참으로 새롭고, 즐겁고, 흥미롭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며칠 기온이 내려간 때였다.
나도 조금 추운 감이 있었는데, TV를 보다가 소파 헤드에 앉아있던 녀석을돌아보니, 콧물이 흐르고 있었다.
"어떻게! 너 감기 걸린 거야? 열도 나나?"
그런데 어떡하지? 이 털복숭이가 열이 나는지 확인할 방법은... 똥꼬...?
급하게 이동장에 밀어 넣고, 동물병원으로 가는 차 안에서 처음으로 재채기 소리를 들었다. 어! 애기같이 재채기를 하네?
의사 선생님이 허피스 증상이 있지만, 심하지는 않다고 하였다. 5일치 약을 처방받아 오는 길에 슬그머니 걱정이 되었다. 예방접종도 했는데, 괜찮겠지... 하면서.
베란다 문을 열어놓은 것이 문제였던 것 같다.
아이구 내 탓이요, 내 탓이요, 이게 몽땅 다~ 내 탓인 것이다.
아가야~ 진짜 미안하대이~.
돌아와서는 서둘러 방 안의 온도를 높였다. 나를 위해서는 한동안 불을 때지 않았는데, '고양이' 너를 위해서 엄마가 돈을 좀 써볼게 하면서.
[골골골~ 몸이 곤하다옹~]
기운 없이 축 쳐져서 자는 모습과 쌕쌕 거리는 숨소리를 들으니, 한편으로는 애처로운 생각이 들었다.
아프냐? 네가 아프니, 나도 아프다.
아주 오래전에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다모]에서 남주가 다모인 여주에게 했던 대사를 나도 모르게 하고 있었다. 그래 이런 마음이었던 것이다.
중증장애인시설에서 근무할 때, 내담당 방의 막내가 고열에 시달릴때, 밤새 지켜보면서 물수건으로 닦아낼 때도 내가 대신 아팠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작고 여린 생명이 이 밤이 얼마나 힘들까?' 하며 애처롭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프고 싶어서 아픈 사람은 없겠지만, 커다란 어른이 되어서 아이를 잘 돌보지 못했으니, 마음고생이라도 대신해야만 했다.
어느 날 교육을 갔다가 조금 일찍 귀가한 날이었다.
맙소사! 이게 다 뭐지?
문 앞까지 마중 나온 녀석의 온몸에 먼지처럼 묻은 초록색 가루의 정체는...?
고양이계의 마약이라고 불리는?? 캣닢(catnip, 개박하)?
온몸으로 뒹굴었는지, 난리가 났다. 문제는 약에 취한듯한 몽롱한 표정이 나를 더욱 황당하게 하였다. 저 가루의 효과가 저런 것인가?? 장난감 안에 쪼금 넣어주고 감추어 두었던 소포장 1개를 어떻게 찾아낸 것 같았다.
[캣닢에 취한 몽롱한(?) 눈동자]
녀석의 궁디를 '팡팡' 치고는 머리부터 꼬리까지 빗질을 해가면서 가루를 털어내고, 청소기를 돌려야 했다. 참 우스운 생각이 들었다. 좋아하는 물고기 인형을 물고 빨고 하면서 소파 위를 뒹구는 모습을 보니, 조용하고 단조로웠던 나의 일상과 집안에 생기와 활력이 도는 것은 기정사실이 되었다.
며칠 뒤, **시 축산과로부터 [동물등록증]이 우편으로 도착하였다.
천천히 봉투를 개봉하다 보니, 입양 전, 입양자 요건의 하나인 온라인 교육을 이수하였던 것이 생각이 났다.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지만 교육 내용이 책임감의 무게를 좀 더 가지게 했다면, 동물등록증에 기록된 내 이름 아래에 이 고양이 녀석의 신상을 확인하고 나니, 공식적으로 제대로 내가 이 아이의 보호자이자, 양육자가 된 것을 실감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