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케이 Jul 25. 2023

이러니 남사친이 없지

12.

남자친구의 침대에 생리혈이 샜다. 그가 다행이다는 말을 첫마디로 했다. 스트레스로 월경이 끊기자 약으로 조절 중인걸 알았던 그는 어떤 말보다 다행이란 말을 가장 먼저 했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내가 더 놀랐다. 당황해서 감수성이란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 공감능력이 좋다며 고맙다 했다. 출근해서도 점심시간 전에도 일과 중간중간에도 그가 생각난다. 그에게 조금 더 반한 것 같다.     


친한 친구를 이야기할 때면, 동성보다 이성인 친구를 언급하는 남자친구가 신기했다. 나는 동성인 엄마는 생각하기도 전에 이해가 되지만, 이성인 아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회과학 논문을 읽어보거나 영화 <국제시장>을 같이 보러 다녀오는 등 헛된 노력의 시간들을 들어야 했었기에, 이성 친구를 동성 친구보다 편하게 느끼는 그가 신기했다. 그처럼 이성인 친구가 많던 남자의 얼굴이 두 명 더 떠오른다. 그중 한 명은 까칠한 날에 내가 그날이냐고 말하자 여자인 내가 그런 편견 섞인 말을 쓰냐 했다. 나보다 성인지감수성이 높았던 그는 오래 기억에 남는다.


반면에, 나는 어땠는가. 아빠를 이해하려 한다며 가부장제를 검색해 관련 논문을 읽고, 주연이 남성 가장인 캐릭터를 보고 아빠도 같을 거라며 함께 영화를 보았다. 이미 머릿속에 아빠와 가부장을 등식으로 전제하였으니 이해보다 편향에 가까웠다. 그러니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감수성도 공감도 빠져서다. 아빠와 남동생이 있어도 언제나 내리사랑을 기대하게 하는 아빠와 싸우지 말고 잘 돌봐야 하는 동생은 이해보다 돌봄이라는 역할이 중심이었다. 역할이 변해서 이해가 필요한 순간에 게을렀던 탓일까. 명령과 싸움이 빨랐다. 그러다 지치면 좋은 얘기만 하거나 말을 하지 않는 방법으로 우회했다.     


그러니 내게 제대로 된 남자사람친구가 있을 리 없다. 있던 경우는 둘 중에 하나였다. 관심 있는 이성과 가까워지는 과정이었거나 혹은 너무 대화가 잘 통했는데 성별이 남자일 뿐이거나. 후자의 관계는 오래 지속되진 않았다. 이성 사람을 친구로 보지 못하는 편협한 내 시야가 문제였다. 이 글을 쓰면서 이성인 친구가 없던 이유와 필요를 모두 알 것 같다. 선입견에 막혀 이해할 수 없는 대상으로 남겨두기엔 그들은 너무 가깝다. 지금대로라면 평생 다투지 않을 이야기만 해야 하는데 그럴 리가 만무하다.      


한때 누구 씨에게 왜 여자가 아니냐며 여자였으면 더 친해졌을 텐데라는 말을 수차례 반복한 적이 있다. 그때 상대의 허탈함을 나는 이해할 수 있을까. 지금도 허탈일지 원망일지 혹은 다른 무엇일지 확신할 수 없다. 모른다는 이유로 자꾸 감정에 생채기를 내는 상대에게 “제발 모르지 좀 마”라던 드라마 한 장면이 생각난다. 몰랐단 이유로 상처 주는 무식해서 잔인한 사람이었던 나를 고개 숙여 반성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