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나는 셰어하우스에 n년차 산다. 셰어하우스는 거실, 주방, 화장실과 같은 공용공간을 함께 쓰면서 선택에 따라 방은 혼자 또는 두세 명의 사람들과 같이 쓰는 주거 형태다. 웬만한 옵션은 다 갖췄다. 오피스텔이나 원룸에 풀옵션이라고 소개된 항목은 다 있다고 보면 된다. 요즘은 공용물품에 건조기도 있다. 몇 군데의 셰어하우스에 살면서 좋았던 점은 서울에서 50평대의 넓은 집, 도보 20분의 직주근접, 나로서는 못할 감성 인테리어, 원룸이나 오피스텔보다 나은 경제성, 그리고 인기척이 있었다.
“밖에 사람이 있구나, 물 마시는구나 그런 소리가 나야 해” 발 끄는 소리나 방문 여닫는 소리, 빨래 너는 소리. 여기에는 사람 소리가 있다. 세탁기나 밥솥에서 나는 소리에는 빠져있는 사람의 움직임이 포함된 소리인데, 나는 이런 소리가 들리면 마음이 편안하다. 물론 셰어하우스의 단점도 있다. 가장 큰 단점 또한 혼자 사는 게 아니어서 생기는 불편함이다. 방 밖에 늘 누군가가 있어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가 어렵고, 생활 소음에 신경 쓰이며, 가족이나 친구를 데려올 수 없을 때가 그러하다. 예상하지 못했던 단점은 셰어하우스에 산다 하면 불편하지 않냐는 질문부터 받는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의 인식에 셰어하우스는 단점이 먼저 떠오르는 공간이구나, 내가 사는 곳이 그렇구나라는 생각이 들면 유쾌하지 않았다. 서울에서 만난 100명 남짓의 사람 중에 나 말고 셰어하우스에 사는 사람을 만나보지 못했으니 신기해하는 반응도 이해된다. 하지만 은근하게 섞인 특이하다는 시선들, 예를 들면 이해가 안 된다며 설명을 요구받을 때 나는 다양함에 인색한 사람들에게 서운했다.
그럼에도 나는 셰어하우스를 선택한다. 내가 처음 셰어하우스를 살게 된 게 벌써 7년 전이다. 처음에는 친구 집과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집에 살았고, 직장인 촌이라고 불리는 그곳이 나쁘지 않게 느껴졌다. 한 블록 아래 먹자골목이 조성되어 있고, 대형마트, 헬스장, 코노에 옷가게 등 1인 가구에게 필요한 건 다 갖춰져 있었다. 그런데 방에 문제가 생기자마자 나는 집을 정리했다. 모든 게 1인분인 곳 말고 가족단위의 사람들이 공원 산책도 하고 배드민턴도 치는 아파트로 향했다. 그렇게 첫 셰어하우스 생활을 시작했다. 2년 정도 살면서 12명이 더 되는 사람들을 만났고, 지금까지 만나는 사람들이 3명이다. 잠시 혼자 살아야 하는 기간이 끝나자마자 나는 다시 셰어하우스에서 살기를 택했다. 어릴 때 언니와 방을 썼고, 1인실이 없는 기숙사 덕분에 대학 졸업까지 늘 누군가와 함께 살았던 나다. 혼자 사는 장점도 분명히 안다. 하지만 나는 그게 늘 필요하지는 않았다.
화성 같은 서울에 내 옆에 누군가가 있다. 같은 집에서 잠을 자고, 물건도 함께 쓰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일 년에 한 번 볼까 하는 친인척보다 가깝게 느껴지는 존재다. 직장에서 매일 본다지만 불필요한 긴장감을 주는 사람들보다 훨씬 편안한 존재이다. 연락의 압박감 따윈 없다. 그저 자연스럽게 만날 뿐이다. 만났다는 이유로 불편한 질문을 쏟아내지도 않는다. 우리에겐 언제 빨래를 할지, 장마철 전기료, 겨울철 가스비가 얼마나 나올지가 궁금할 뿐이다. 일상에 공통분모가 있다.
몇 해 전 청춘 드라마에서 셰어하우스가 배경으로 다뤄진 적이 있다. 실제로 저녁이면 원탁 식탁에 둘러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분위기의 셰어하우스도 있었고, 오가며 인사 정도만 하는 때도 있었다. 해봤는데 둘 다 괜찮았다. 11시 잠들 찰나에 도어록 소리가 들리면 나는 속으로 오늘도 모두 잘 들어왔구나 하며 졸린 눈을 마저 감는다. 칠 년 동안 여섯 번의 이사를 다녔다. 나는 산책할 곳과 갤러리가 많은 동네, 30분 내 직주근접, 12제곱미터 이상의 내 방, 그리고 사람 흔적이 있는 집이면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이 모든 게 가능한 셰어하우스가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