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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ive Oct 20. 2021

에덴(Eden)

인류의 지능은 높아져갔고, 과학과 문명은 발달했지만 변해가는 자연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생태계가 파괴되고, 밀림이 사라지고, 물이 말라갔다. 

세계 곳곳에서는 사막화가 진행되었고,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유해먼지 바람이 불어올 때면 

사람들은 집안 곳곳에 숨어 어디도 다닐 수 없었다. 

자연이 병들어가자 인류의 터전도 사라졌다. 과거 엄연한 국가였던 곳이 지금은 황폐한 사막으로 

바뀌어 사라졌고, 각종 전염병과 인간이 손 쓸 수 없는 자연재해로 인구가 줄어들었다. 


이런 세상 속에서 살고 있는 창진은 비행기 조종사였다. 

화성으로 이주 계획을 세우고, 순간이동이 가능한 텔레포트 기기가 거리 곳곳에 세워지고, 

집집마다 플라잉카를 몰고 다닐 수 있을거라 떠들어댔지만, 기대만큼 그 발전은 더뎠다. 

더욱이 화성에서 산다거나, 플라잉카를 몬다거나 하는 말은 가진 자들. 막대한 부를 가진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것들이었다. 작은 보너스에 기뻐하고, 여전히 내 집 없이 카드 빚에 허덕이며 살고 있는 창진은 평범하게 사는 것보다 조금 더 아래. 식탁 위에 며칠 째 놔둬서 바싹 말라버린 식빵처럼, 팍팍한 삶을 살고 있었다. 


부기장이었던 창진은 기장과 함께 비행을 나섰다. 오늘의 목적지는 '칸트레비아'(*)라고 하는 섬이었다. 

나라는 사라졌지만, 새로 생긴 섬은 많아졌다. 칸트레비아는 대한민국 제주도 크기 정도의 섬이었다.  

바다가 워낙 맑고, 아직 사람의 손을 덜 탄 곳이라 지금도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곳 중에 하나였다. 

물론 유명해지기 시작하면서 우후죽순으로 여행상품이 생겨났고, 사람들의 방문이 많아질수록 그곳 또한 

점점 망가지고 있다는 소문이 돌긴 했다. 창진은 이곳이 처음이었지만, 기장은 두 번째라고 했다.  


"우리 비행기 이륙합니다" 


이륙은 문제없이 이뤄졌다. 하지만 1시간쯤 비행을 하고 나자, 갑자기 예보에 없던 비바람이 세차게 불면서, 날씨가 변덕을 부리기 시작했다. 


"오늘 이런 예보는 없지 않았어요?" 

창진은 기장에게 물었다. 기장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비행기의 흔들림은 갈수록 심해졌다. 몸이 양옆으로 흔들렸고, 컵에 담긴 물이 바닥으로 쏟아졌다. 


"기장님. 어쩌죠??" 

"자..잠깐. 기다려봐!!!" 


기내에는 산소호흡기가 내려왔고, 승객들은 모두 패닉상태였다. 어린 딸의 손을 꽉 잡으며 중얼중얼 기도를 하는 이도 있었고, 어디든 당장 착륙하라며 소리지르는 이도 있었다. 


퍼엉!!!!!!!! 

그 순간 비행기 꼬리쪽을 무언가가 강타하는 것이 느껴졌다. 고막을 찌르는 굉음과 함께 비행기는 엄청난 속도로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창진은 비명을 질렀지만, 그 소리마저 다 묻힐 만큼 순식간에 비행기는 어느 거대한 바위산과 충돌하면서 폭발해버리고 말았다. 


<전원사망> 뉴스에서는 그렇게 보도되고 있었다. 


하지만 창진은 살아있었다. 유일한 생존자였다. 

간신히 눈을 떴을 때, 얼굴 전체로 내리쬐는 태양빛에 눈을 질끈 감았다가 다시 뜬 건, 

낯선 여자의 목소리 때문이었다. 


"눈 좀 떠보세요.."


다시 눈을 떴을 때, 창진은 천사가 내려온 거라 생각했다. 

'아... 나 죽었구나. 죽은 게 맞구나... 그래도 다행이다. 천사라서... 나 착하게 살았나보네...' 

창진은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정신이 좀 드세요?" 

목소리가 또 한번 들려왔다. 창진은 번쩍 눈을 떴다. 몸을 일으켰다. 뼈가 사방팔방 흩어진 것처럼 움직일 때마다 욱신거렸지만, 그래도 제 힘으로 일어날 수 있었다. 자세히 보니 낯선 여자는 천사가 아니었다. 

그저 천사처럼 보이는 여자였다. 


"저... 살았나요...?" 

창진은 천사처럼 보이는 여자에게 물었다. 바보같은 질문이었다. 여자는 풉- 하고 웃었다. 


창진은 손으로 자신의 몸 상태를 만져보며 확인했다. 이마에는 피가 흘러 끈적하게 말라있었고, 옷은 군데군데 찢겨진 상태였다. 왼쪽 다리가 불편했다. 부러진 것 같았다. 하지만 괜찮았다. 어쨌든 죽지 않고 살았으니까. 병원에 가서 고치면 될 테니까. 창진은 주위를 둘러봤다. 사람은 오직 창진과 낯선 여자 둘 뿐이었다. 

어떻게 이곳까지 오게 됐는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창진은 차근차근 생각해보려 했지만 갑자기 머리가 지끈 아파왔다. 


"씁... 여기 병원.. 병원이 어디에 있죠? 구급차. 119.. 구급차 좀 불러주세요." 


창진은 머리를 감싸쥐며 여자에게 다급히 부탁했다. 하지만 여자는 멍하니 창진만 바라볼 뿐이었다. 


"저기... 휴대폰 없으세요? 전화요." 


창진은 손가락으로 수화기 모양을 만들어 전화하는 시늉을 했다. 여자는 창진의 모습을 따라했다. 

그 순간 창진은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억... 뭐..뭐야. 방금... 그거? 그..그거 뭐에요?" 

"아... 이거요?" 


여자는 긴 머리를 귀 뒤로 넘겼다. 그러자 귀 아래에 '아가미'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보였다. 

여자가 숨을 쉴 때마다 그것도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제가 여기에 오래 못 있어서 그러는데, 저랑 같이 가실래요?"

"네? 어...딜요?"

"다리요. 금방 고쳐드릴게요..." 


아가미가 있는 여자였지만, 자신을 잡아먹을 것 같지는 않은 여자. 무엇보다 얼굴이 예쁘고 창진의 완벽한 이상형이었던 이 여자를 무작정 따라가보기로 했다. 왼쪽다리가 부러져서 절뚝거려야 했지만, 가냘퍼 보이는 여자는 생각보다 힘이 셌고, 창진을 잘 부축해주었다. 몇발자국 걸어가 도착한 곳은 바다 앞이였다. 


"바다...?" 

창진은 여자에게 물었다. 


"설마...?" 


여자는 빙긋 웃으며 바다로 풍덩 들어갔다. 그리고 창진에게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제..제가 수영을 못해요..." 

"괜찮아요. 내가 잘 하니까. 얼른 들어와요!" 


여자는 속삭였다. 속삭이면서 말했지만, 그 목소리가 바람처럼 창진의 귓가에 정확히 꽂혔다. 


'미친 짓이야.. 미친짓...' 

창진은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몸은 자신도 모르게 자꾸만 움직이고 있었다. 한발 한발 차가운 바닷물이 창진의 몸을 감쌌다. 바닷물은 창진의 허리까지 왔고, 가슴까지, 목까지 왔다. 그러자 여자가 창진에게 가까이 다가와 손으로 창진의 얼굴을 감쌌다. 


"아..아야!" 

잠시 따끔거렸고, 창진이 귀 뒤를 손으로 만져보자, 무언가가 느껴졌다. 아가미였다. 


"어..어떻게 한 거에요?" 


여자는 손바닥을 보여주었다. 반짝이는 가루가 손바닥에 묻어있었는데, 그 가루가 순식간에 아가미를 만들어냈다는 건, 마법이 아니고서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마법사에요???" 

여자는 창진의 말에 또 풉- 하고 웃었다. 이번에도 바보같은 말을 한 것 같아 창진은 고개를 숙였다. 


"어어어어! 뭐..뭐에요? 지느러미?!!!!" 


방금 전까지 멀쩡했던 그녀의 두 다리가 이제는 푸른빛 지느러미로 변해있었다. 인어였다. 그녀는 천사가 

아니라 인어였다.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사이, 창진은 끝없는 바다로, 검푸른 바다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창진은 꿈을 꾼 거라고 생각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자신은 침대에 누워 있었고, 평범한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하.. 꿈이었구나. 그래. 인어가 있을리가 없지. 지금 난 병원에 실려온거야.... 유일한 생존자로..' 


창진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가 자신의 목덜미를 매만졌다. 


"으악!!!!!!" 

여전히 아가미가 느껴졌다. 창진이 숨을 쉴 때마다 아가미에서는 쉭쉭 바람빠진 소리가 났다.   


"정신이 좀 드세요?" 

그 여자였다. 아가미가 있는 여자. 두 다리가 지느러미로 변한 여자. 창진의 이상형. 

지금은 지느러미가 아닌 두 다리로 멀쩡히 서 있었다. 


"다리는 어떤 것 같으세요?" 

"다리..요?" 


눈을 뜬 직후부터 다리가 가볍다고 느꼈는데, 창진은 부러진 왼쪽다리를 슬며시 움직여보았다. 아무렇지 않았다. 부러진 다리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아무 문제 없었다. 


"어떻..게 한 거에요?" 

"이곳이 그래요. 이곳에 있다보면 아픈 곳이 낫고, 병든 곳이 치유되죠." 

"여기가... 어딘데요?" 

"에덴이요. 우리는 이곳을 에덴이라고 불러요." 


에덴. 성경에서 하나님이 아담과 이브를 위해 만들었다는 낙원.  

창진은 그 낙원을 본 적은 없지만, 이곳을 왜 '에덴'이라 부르는 지 알 것 같았다. 

바다로 빨려들어갔지만, 바다 아래의 또 다른 세상. 하늘이 있고, 땅이 있고, 나무가 있고, 풀이 있고, 

꽃이 있고, 물이 있는 곳. 아가미가 있지만 사람의 형상과 다를 바 없이, 두 다리를 가진 인어들이 살고 있는 곳. 창진의 눈에는 이곳이 바로 낙원, 에덴이었다.  


"하.... 놀랍네요..." 

창진은 에덴에 있는 모든 것에 감탄했다. 그리고 궁금했다. 


"그럼 이 나라.. 에덴을 통치하는 사람은 누구에요? 음... 대통령! 그러니까 대통령이 있나요? 

 아.. 여기서는 '왕'이라고 부르나요?" 

"에덴의 아버지 말씀인가요?"

"아버지? 뭐... 네! 에덴의 주인?" 

"주인은 우리 모두고요. 에덴의 생명력이자 우리의 아버지는... 반짝이는 나무에요." 

"반짝이는.. 나무..요?"  

"이 금빛 가루의 원천이자,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죠. 에덴의 치유능력은 이 나무에서 떨어지는

 금빛가루 덕분이에요. 이렇게 상처가 났어도, 이 가루를 뿌리면.. 말끔하게 치유되죠."

"하... 그럼 부러진 내 다리도...?" 

"맞아요." 

"저도... 그 나무를 볼 수 있을까요?" 

"따라와요." 


여자가 말한 나무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한 눈에 보기에도 그 나무는 특별했다. 

딱 한그루 뿐이었지만, 나무에서 끊임없이 떨어지고 있는 금빛 가루들로 눈이부셨다. 

사람들. 아니, 인어들은 바닥으로 떨어진 가루를 모아 주머니에 넣고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딱 주머니 크기 만큼만 가루를 담아갔다. 


"나무에서는 금빛 가루가 계속 떨어지는데, 왜 다들 조금씩만 담아가는거죠?" 

"필요할 때마다 담아가면 되니까요." 

"많이 보관해두면, 매번 이렇게 오지 않아도 되잖아요." 

"그게 어때서요?" 

"네? 아니... 뭐... 귀찮을 때도 있고, 위급한 상황이 생길 수도 있는데... 가져갈 수 있을 때 많이많이 

 모아두는 게... 좋은 거 아닌가요?" 

"글쎄요. 불편하다고 느껴본 적이 없어서요." 


창진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인어들의 표정은 모두가 밝았다. 불만도 불행도 없는 곳 같았다. 모두가 지금에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이곳에 며칠 있다보니, 창진은 인어마다 각자의 역할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이곳에도 집을 짓는 건축가가 있었고, 식량을 구해오는 사냥꾼, 농사를 짓는 농부도 있었다. 하는 일은 다들 달랐지만, 공통점은 이 모두를 함께 나눈다는 것이었다. 누군가를 위해 집을 지어주고, 잡아온 식량을 함께 

나누고, 땀흘려 농사지은 곡식을 모두가 함께 먹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창진은 부지런히 농사를 짓고 있는 인어에게 말을 걸었다. 


"힘들지 않으세요?" 

"힘들죠. 땀흘리는 거 안보이세요?" 

"그런데 왜 땀흘려 농사지은 곡식을 다같이 나누는 겁니까?" 

"농사 짓는 목적이 우리 모두를 위해서니까요." 

"아니... 그럼 다 같이 농사를 지어야죠. 왜 혼자서만 고생하십니까?" 

"네...?" 

"그렇잖아요. 허리가 굽도록 하루 종일 일만 하시는데, 힘들게 농사지은 곡식을 왜 저기 저... 팽팽 놀고 있는

 저 사람.. 아니 인어에게도 나눠주십니까? 뭔가 보상을 받으셔야죠." 

"보상이요...?"

"예를 들면, 내가 지은 쌀을 먹고 싶다면 돈을 내라든가...아니면.. 그 뭐냐. 금빛 가루를 몇 그램 받든가... 

 그래야 하는 거 아닙니까?"

"생각해보니 그러네요. 왜... 나만 고생을 하고 있지?" 

"그러니까요. 고생했으니 대가를 받으셔야죠. 앞으로는 이 곡식들을 저장해두세요. 그리고 곡식이 필요하다고 찾아오는 인어에게 곡식을 가져가는 만큼의 대가를 받고 파시는 겁니다."

"판다는... 게 무슨 뜻이죠?" 


창진은 농사짓는 인어에게 곡식을 파는 법에 대해 일러주었다. 때마침 '쌀'이 필요하다며 이곳을 찾은 인어가 있었고, 농사짓는 인어는 창진이 일러준대로 말했다. 


"쌀을 가져가고 싶다면, 여기 접시에 금빛 가루를 좀 덜어놔." 

"뭐? 그게 무슨 말이야?" 

"그냥 못주겠다는 뜻이야. 앞으로는 내가 힘들게 농사지은 곡식이니까, 그냥 가져갈 생각말고 쌀 한 그릇에 금빛가루 10g!!" 

"금빛가루라면 반짝이는 나무 아래에 가서 가져오면 될 텐데, 뭐하러 여기에 내 가루를 덜어놓으라는 거야?" 

"보상을 받겠다는 거야. 그... 뭐라고 했더라? 그래! 마땅한 대가!" 


창진이 일러준 이후로 그 누구도 농사지은 곡식을 그냥 가져갈 수 없게 됐다. 모두가 마땅한 대가를 지불해야만 원하는 곡식을 가져갈 수 있었다. 누군가는 금빛가루가 없어서 빈 손으로 돌아가야 했다. 농사짓는 인어는 굳이 나무 아래까지 가지 않아도 금빛가루가 자연히 쌓이자, 조금 더 욕심을 내기 시작했다. 쌀 한 그릇에 금빛가루 15g, 쌀 한그릇에 금빛가루 20g... 

그 탓에 불만도 불평도 없던 인어들의 얼굴에서 '불만'이라는 그늘이 점점 드리워졌다. 때때로 그들은 화를 

냈고, 불만을 쏟아냈다. 간혹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고, 억울해하는 이도 생겨났다. 


창진은 그 모습을 보며, 이번에는 사냥을 하며 식량을 구해오는 인어에게 관심을 보였다. 


"오늘도 상처 투성이군요. 사냥은 정말 어려운 일 같아요." 

"괜찮습니다. 상처 난 부위에 금빛 가루만 바르면 금방 낫는걸요." 

"저는 좀 이해가 안되네요."

"뭐가요?"

"솔직히 목숨걸고 사냥하는건데, 힘들게 잡아온 고기를 다같이 나눠먹는다는 게 좀..." 

"네?" 

"사냥하다가 죽을 수도 있는 거잖습니까. 그런데 왜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하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하는 분일수록 보상을 많이 받아야한다." 

"어떤 식으로요?"

"반짝이는 나무의 주인이 되는 겁니다."

"네?" 

"제가 곁에서 도와드리겠습니다. 반짝이는 나무의 주인이 되어서, 다른 인어들에게 금빛 가루를 직접 

 배분해 주세요." 

"대체 왜..."

"당신이 이곳의 왕이 되는 겁니다."

"왕....? 내가.. 에덴의 왕이 된다?"

"열심히 일한 자와 에덴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으면서 노는 자가 똑같이 금빛가루를 나눠갖는 건...

 좀 불공평한 거 아닙니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창진의 혀는 마치 뱀과 같았다. 간사하고, 교활했다. 사냥하는 인어는 창진의 말에 푹 빠져 홀딱 넘어갔다. 

그날로 에덴에는 '계급'이라는 게 생겼다.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 한마디로 계급의 높고 낮음에 따라 

금빛가루를 가져갈 수 있는 양은 각기 달랐다. 


"뭐야. 고작 한줌? 이봐! 금빛가루가 다 떨어졌다고. 한줌 가지고는 상처치유도 할 수가 없어!" 


반짝이는 나무를 찾아온 인어는 에덴에서 노래를 하는 인어였다. 그는 그저 노래하는 게 전부였다. 

창진은 노래하는 인어에게 쏘아붙이듯 말했다. 


"그럼 생산적인 일을 하세요. 에덴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 일. 그럼 금빛가루를 많이 드리죠. 다음!!" 


사냥하는 인어를 왕으로 세우긴 했지만, 사실 그는 허깨비일 뿐이었다. 실질적으로 에덴의 인어들을 쥐락펴락 하는 건 다름아닌 창진이었다. 그러는 사이 창진 편에 줄을 서는 인어들이 늘어갔다. 창진의 말이 다 맞다며,

지금껏 바보처럼 살아왔다며, 창진으로 인해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우월감에 빠진 인어들도 생겨났다. 

이전에는 모두가 똑같고 평등했지만, 창진이 에덴에 나타나면서 서로를 비교하고, 평가하고, 

시기 질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자는 이런 창진을 말리지 않았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지켜볼 뿐이었다.  


시간이 지날 수록 창진에게 불만이 생긴 인어들은 그들끼리 자연스럽게 반대세력을 만들었다. 

불만이 없던 그들은 매일 밤마다 모여 불만을 늘어놨다. 분노하고,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그리고 그들 중, 누군가가 외쳤다. 


"그 자를 죽입시다! 죽여버립시다!" 


전쟁이 선포되었다. 창진 세력과 창진의 반대세력은 각자 날카로운 무기를 들고 서로를 노려보았다. 

그들이 싸우는 이유는 결국 하나였다. 반짝이는 나무를 소유하기 위해서였다. 

하늘 위로는 검은 구름이 드리워졌고, 인어들은 서로를 공격하며 싸웠다.  

목이 잘려나갔고, 심장이 찢기고, 화살을 맞아 쓰러지는 인어도 있었다. 솟구친 검붉은 피는 땅 위로 흩뿌려졌다. 인어들의 비명소리가 고막을 찢었고, 그러는 중에 창진이 가장 믿고 있던 사냥하는 인어. 

창진이 '왕'으로 세운 그의 머리가 누군가의 손에 잘려나갔다. 반대세력은 그의 머리를 하늘 높이 들어올리며 허공 위로 승리의 고함을 질러댔다.   


"아...안돼!" 

이대로 가다간 창진의 목도 무사하지 못할 것 같았다. 목숨의 위협을 느낀 창진은 마구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 때였다. 누군가 재빠르게 창진의 손목을 낚아챘다. 


"쉿..." 


그 여자였다. 창진을 이곳으로 데려온 여자. 창진은 그 여자 덕분에 몸을 숨길 수 있었다. 창진을 찾는 소란스러움이 잦아들자, 여자가 조용히 말했다. 


"이곳을 떠나야겠어요."

"떠나요..? 어..어디로요?"

"당신이 살던 곳이요. 이제 당신은 이곳에 살 수 없어요." 

"나..나 좀 도와줘요. 내가 어떻게 하면 돼요?" 

"이 길 끝에 바다가 보일 거에요. 그대로 쭉... 앞으로 가기만 하면 돼요. 단... 그 어떤 소리가 들려도 절대 뒤돌아보지 마세요." 

"알겠어요... 저 그런데... 이름... 아직 당신의 이름을 몰라요..." 

"제 이름은... 이브에요." 


창진은 그 여자, 이브가 일러준 대로 걸어갔다. 이브의 말대로 바다가 보였고, 창진은 다시 한번 귀 끝을 매만져봤다. 아가미는 잘 붙어 있었다. 창진은 마지막으로 에덴을 돌아보며, 자신이 이곳에 얼마나 있었는지를 

헤아려 보았다. 


"한달..? 아니야. 그보다는 더 있었던 것 같은데.. 3개월?? 6개월인가....? 하... 이제와서 그게 뭐가 중요해. 

 그래. 돌아가자. 집으로 돌아가는거야. 어차피 돌아갈 생각이었잖아..." 


창진은 깊게 심호흡을 하고, 바다로 몸을 던졌다. 아가미 덕에 깊은 물 속이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창진은 끝없는 위로 몸을 움직였다. 그런데 그 때였다. 


"창진아." 


엄마의 목소리였다. 


"창진아!" 


곧이어 아빠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그리운 가족. 보고 싶은 엄마, 아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리 때문에 뒤를 돌아보고 싶었지만, 이브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 어떤 소리가 들려도 절대 뒤돌아보지 마세요.' 


창진은 두 눈을 질끈 감고, 계속해서 수면 위로 올라가려고 애썼다. 


"창진아! 창진아!!!!!!!" 


엄마의 울음섞인 간절한 외침이었다. 창진의 엄마는 애타게 창진을 부르고 있었다. 귀를 막았지만 

아까보다 더 크게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끝내 창진은 뒤를 돌아봤다.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햇살 한줄기 들어오지 않는 캄캄한 어둠. 

검은 바다 속이었다. 


"어억..." 


갑자기 숨이 조여오는 게 느껴졌다. 창진은 다급히 귀 뒤를 만져봤다. 아가미가 사라지고 없었다. 

가슴이 답답해지기 시작했고, 숨쉬는 게 불편해졌다. 창진은 미친듯이 수면 위로 올라가기 위해 발버둥을 쳤지만 계속 제자리였다. 창진은 두 팔을 허우적거리며 살기 위해 애썼다. 

있는 힘을 다해 펄떡거렸지만, 얼마 못가 온 몸에 힘이 빠졌고, 뜨거웠던 심장은 차갑게 식어버렸다.  





"여보... 우리 창진이 찾았대...!" 

창진의 엄마는 경찰의 연락을 받자마자 슬리퍼를 신고 뛰어갔을 만큼 정신이 반쯤 나가있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 풀썩 주저 앉은 창진의 엄마를 뒤로하고 각 언론사 기자들은 앞다퉈 보도하기 시작했다. 


"지난 11년 전! 비행기 추락사고로 전원사망했던 사건이 있던 가운데, 오늘 실종 상태였던 이창진 씨의 

 시신이 발견됐습니다. 놀라운 것은 11년 만에 발견 임에도 부패하거나 손상된 곳이 없었는데요..." 


땅 위에 있는 사람들은 무척 소란스러웠다. 

그에 비해, 바다는 그저 고요했다. 

그리고 저 멀리 고개를 내밀고 한참동안 이 모습을 지켜보던 여자는 다시 바다 속으로 사라졌다.  





- (*) 칸트레비아 : 검색해도, 지도를 찾아봐도 나오지 않을 곳입니다.. 제가 지어낸 이름이거든요^^; 

                        비루한 창작단편 임을 다시 한번 말씀 드리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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