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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생각' 노래가 일러준 한국 베트남의 가족 문화

두 나라가 다른 방식으로 만든 ‘의지의 문화’

by 한정호

어제 저녁, ‘고향의 봄’과 ‘오빠 생각’의 배경 영상을 보며 설명보다도 묘한 그리움이 가슴을 먼저 파고들었다. 그리고 이어진 질문 하나. ‘한국의 오빠 정서는 베트남에도 같은 모습으로 존재할까?’


[K-star black] 고향의봄(Spring in My hometown)오빠생각(Thinking of Elder Brother)동요가좋아서...cover


'고향의 봄', '오빠 생각' 같은 오래된 동요를 듣다 보면 마음 어딘가가 이상하게 먹먹해진다. 단순히 옛 노래라서가 아니라, 그 속에 담긴 ‘그때 우리가 누렸던 보호감’이 지금은 거의 사라졌기 때문일지 모른다. 문득 다시 생각했다. 왜 옛날에는 ‘오빠’라는 존재가 그렇게도 든든하게 느껴졌을까?


1. ‘오빠’라는 말이 품고 있던 오래된 정서

한국에서 ‘오빠’는 단순한 호칭이 아니었다. 전통 농경 사회에서 오빠는 집안의 일손이자 대리 부모였고, 여동생을 지켜주는 보호자였다. 부모가 바쁘거나 집을 비우면 자연스럽게 책임을 맡게 되는 구조 속에서, ‘오빠’라는 단어에는 안전과 울타리의 이미지가 스며들었다.

그래서 “오빠 생각”을 들으면 오빠 개인보다 사라진 공동체의 그림자, 잃어버린 안정감이 먼저 떠오른다.


2. 산업화 시대가 만들어낸 ‘오빠 로맨스’

1960~80년대 산업화와 도시화는 가족을 흩어놓았지만, 가부장적 질서는 여전히 견고했다. 이 시기 드라마와 가요 속 ‘오빠’는 보호자이자 연인의 상징이었다. 듬직하고, 알아서 챙겨주고, 여동생이나 연인을 보호해주는 존재. 그 이미지 속에는,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시대의 남녀 역할 규범이 숨어 있었다. ‘의지할 대상’이 절실했던 사회에서 오빠는 그 공백을 채우는 정서적 기둥이었다.


3. 사회가 바뀌자 ‘오빠’의 자리는 작아졌다

2000년대 이후 한국은 빠르게 달라졌다. 성평등 의식, 개인주의, 연애·결혼관의 변화, 젠더 갈등의 심화…. 이런 변화 속에서 “오빠가 다 해줄게”라는 말은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게 되었다. 나이와 성별에 기반한 관계 권력에서 벗어나고 싶은 사람들이 많아졌고, ‘오빠’라는 단어 자체를 불편해하는 세대도 늘었다.

이제 한국에서 ‘오빠’는 상징적 보호자라기보다, 한 시대를 지나온 문화적 흔적에 가깝다.


4. 그렇다면 베트남에는 ‘오빠 의지’가 있을까?

베트남에도 anh trai(오빠)라는 말이 있지만, 정서적 역할은 한국과 다르다.

베트남 가족 구조는, 장자 중심의 무거운 책임이 약하고, 위계는 있지만 관계는 상대적으로 수평적이며, '형제가 집안을 책임진다'는 강한 기대가 없다. 그래서 anh trai는 존중의 대상일 뿐, 한국처럼 정서적 보호자의 상징은 아니다.

흥미로운 점은 베트남에서는 보호와 의지의 감정이 형제가 아닌 다른 곳에 분산되어 있다는 점이다.

나이가 조금 많은 사촌 형·누나, 친밀한 친구 그룹에서의 anh/chị, 연애 관계에서의 남성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 한국처럼 ‘오빠’에게 감정이 집중되는 것이 아니라, 가족·친척·친구 전체가 공동으로 안전망을 이루는 구조다. 그래서 ‘오빠 신화’는 애초에 태어날 필요가 없었다고 볼 수도 있다.


5. 결국 우리가 그리워하는 것은 ‘오빠’가 아니다

오빠 생각을 듣고 떠오른 마음의 정체는, 아마도 오빠라는 존재 그 자체가 아닐 수도 있다.

그 시절의 온기, 서로에게 울타리가 되어주던 공동체, 역할이 명확하고 책임이 자연스럽게 나뉘던 사회 구조, 그 속에서 느끼던 기댈 수 있음의 감정이 더 가까운 것 같다. 이 모든 것이 빠르게 사라진 지금, 옛 노래 속 ‘오빠’는 잃어버린 안정감의 상징처럼 남아 있다.


6. 그리움에 던지는 질문

이 감정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들에 닿게 된다.

'우리는 언제부터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마음을 잃어버린 걸까?'

'가족 안의 역할 변화는 우리의 정서를 어떻게 바꾸어 놓았을까?'

'베트남처럼 공동체 기반이 살아 있는 사회에서는 ‘의지’는 어떤 모습으로 존재할까?'

이 질문들은 단순한 향수가 아니라, 지금 우리의 삶을 다시 들여다보게 하는 작은 창처럼 느껴진다.


옛 동요 한 줄이 이렇게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킬 줄은 몰랐다.

노래 속 ‘오빠’는 사라졌지만, 그 감정이 남겨놓은 자리만큼은 아직도 마음 어딘가에 조용히 남아 있는 듯하다.


누군가에게 기댈 수 있었던 시절의 기억. 그리고 어쩌면 지금도 우리가 '가장 그리워하는 마음의 형상'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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