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사라졌지만, 베트남에선 아직 일상인 장면들

우리가 지나온 길들을 보여주는 모습들

by 한정호

베트남에서 살다 보니, 어느 순간 익숙한 장면 앞에서 멈칫하게 된다.

'어? 이거… 우리 어릴 때 보던 모습 아닌가?'


[베트남 사람이야기] 한국에서는 사라졌지만, 베트남에선 아직 일상인 장면들 : 우리가 지나온 길들을 보여주는 모습들


지금의 베트남은 낯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한국의 70~80년대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순간들이 있다. 물론 완전히 같지는 않다. 다만 한국에서는 사라졌고, 베트남에는 아직 남아 있는 생활의 결이 분명히 존재한다.


1. 병원보다 약국이 먼저인 의료 감각

한국에서는 이제 “어디 아프면 병원부터”가 거의 상식이 되었다. 동네 의원, 종합병원, 응급실까지 접근성이 높아졌고, 자가 판단에 대한 불안도 커졌다.

반면 베트남에서는 지금도 감기, 복통, 피부 트러블 정도는 약국에서 해결하는 장면이 흔하다. 약사는 상담자이자 판단자이고, 약은 치료이자 응급 대응이다. 이 모습은 병원이 멀고 비싸던 시절의 한국과 매우 닮아 있다. 편리하지만, 동시에 위험을 안고 있는 구조라는 점까지도.


2. “남의 아이도 혼낼 수 있다”는 사회적 개입

한국에서는 이제 아이에게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순간 갈등, 신고, 분쟁 가능성이 먼저 떠오른다. 그래서 대부분은 모른 척 지나간다.

하지만 베트남에서는 공공장소에서 아이의 행동이 문제로 보이면, 주변 시선이나 말 한마디가 바로 튀어나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건 폭력적 개입이라기보다 공동체가 질서를 유지하던 오래된 방식에 가깝다. 한국도 과거에는 그랬다. 지금은 그 역할을 제도와 규칙이 대신하고 있을 뿐이다.


3. '각자 조심'이 기본인 안전 감각

한국은 이제 난간, 표지판, 안전요원, CCTV가 기본값이다. 사고가 나면 책임 소재부터 따진다.

반면 베트남에서는 여전히 위험은 생활의 일부에 가깝다. 공사 현장, 도로, 보행 환경 모두 '스스로 조심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이 장면들은 안전 인프라가 촘촘해지기 전, 한국의 일상과 거의 겹친다. 불편하지만, 동시에 사람들의 감각은 훨씬 예민하다. 그래서 오토바이 사고가 나도 서로 툴툴 털고 몇마디 나누곤, 제 갈 길을 가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4. 아이의 노동이 ‘현실’로 보이는 사회

한국에선 '아이의 노동'이 보이면 즉시 문제 제기가 된다. 그만큼 기준이 바뀌었다.

베트남에서는 공식적으로는 금지되고 줄어들고 있지만, 길거리, 관광지, 가족 생계의 맥락 안에서

아이의 노동이 여전히 눈에 띈다. 이건 미화할 일도, 단순 비교할 일도 아니다. 다만 한국 역시 과거에는 아이의 노동을 '집안에 보탬이 되는 일'로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시간 차이만큼의 간극이 느껴진다.


5. ‘정’과 ‘호의’가 안전보다 앞서는 순간들

한국에서는 이제 과한 친절은 경계의 대상이 되었다. 선의보다 시스템이 먼저 작동한다.

하지만 베트남에서는 아직 낯선 사람의 도움, 과잉 친절, 개입이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이 모습은 한국에서 사라진 장면이기도 하다. 따뜻함과 위험함이 동시에 존재하는, 그래서 더 복합적인 풍경이다.


과거와 현재가 겹쳐 보일 때

베트남의 이런 장면들을 보며 “뒤처졌다”고 말하기는 쉽다. 하지만 나는 종종 이렇게 생각한다. 이건 뒤처짐이 아니라, 한국이 이미 지나온 시간을, 다른 속도로 통과하고 있는 모습일지도 모른다.

한국은 제도와 규칙으로 대체했다. 베트남은 아직 사람과 현장이 먼저 움직인다. 어느 쪽이 더 낫다고 비교하고 싶지 않다. 다만 분명한 건, 베트남의 오늘을 보다 보면,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를 훨씬 또렷하게 떠올리게 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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