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서 다시 만난 우리의 옛 풍경 5가지
베트남에 살다 보면, 문득문득 시간이 거꾸로 흐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때가 있다. 한국에서라면 이미 사라졌거나, 문제가 되어 뉴스에 나올만한 일들이 이곳에서는 아직도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런 풍경들이 낯설다기보단 오히려 정겹게 느껴진다.
아마도 그것은 우리가 ‘그 시절’에 그랬던 기억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은 그런 장면들을 하나씩 떠올려 보고자 한다.
1. 회식 자리의 묘한 분위기
베트남 직장 회식 모습을 보면, 한국에선 볼 수 없게 된 정서가 아직 남아 있다. 상사가 여직원의 어깨에 팔을 두르거나, 머리를 쓰다듬으며 "정이 간다", "수고 많다"고 표현하는 모습. 손을 잡거나 등을 다독이며 동료애를 표현하는 문화도 낯설지 않다.
한국에서는 이제 이런 행동이 성희롱 논란을 부를 수 있지만, 베트남에서는 아직도 ‘한 팀’, ‘가족 같은 분위기’로 받아들여진다. 서로를 챙기고 가까워지려는 표현이 몸짓으로 드러나는 문화.
우리도 예전엔 그랬다. 회식 후, 어깨동무를 하고 노래방에서 팔짱 끼고 불렀던 "사랑으로"가 떠오른다.
2. 차를 사면, 제사부터 – 베트남에 부는 ‘자동차 시대’의 바람
요즘 베트남 사람들의 대화에서 빠지지 않는 주제가 있다. 바로 “차 샀어?” 예전엔 오토바이가 삶의 전부였지만, 이제는 거리 곳곳에서 SUV, 세단, 심지어 고급 외제차까지 보인다. 누군가 차를 사면 동네 사람들이 다 안다. 소식은 빠르다.
자동차는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니다. ‘나도 이제 이만큼 됐다’는 자부심, ‘가족을 더 편하고 안전하게 지키고 싶다’는 마음의 표현이다.
하지만 늘어난 차량만큼 문제도 늘었다. 좁은 골목 인도는 주차된 차들로 가득 차고, 밤마다 운전자들은 주차 공간을 찾아 헤맨다.
그럼에도 불만보다는 희망이 더 많다. '우리도 이제 잘살게 되는구나' 불편마저 발전의 증표로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그 모든 감정을 상징처럼 담은 의식이 있다. ‘차 제사’
도로변에 테이블을 펴고, 삶은 닭 한 마리, 맥주 두 캔, 바나나와 떡, 그리고 향을 피운다. 차 앞에 절을 올리며 말한다. “이 차로 무사고 무탈하게, 돈 많이 벌게 해 주세요.”
처음 보는 사람은 놀랄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도 그랬다. 시운전도 하기 전, 차량 앞에 절부터 올리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 차가 아니라, 인생에 절을 하셨던 것이었겠지'
3. 세차는 온 가족의 ‘작은 의식’
주말 아침, 집 앞에 놓인 은색 SUV 옆으로 아이들이 모여든다. 아빠는 양동이에 물을 받아 오고, 아이들은 “아빠, 저도 해볼래요!” 외치며 작은 수건을 들고 달려든다. 아빠는 능청스럽게 말한다. “이거 다 닦으면 심부름값 준다~”
사실 심부름은 핑계다. 오랜 오토바이 생활을 접고 처음 장만한 자동차. 여전히 번호판 비닐도 안 뗀 그 차를 바라보며 아빠는 속으로 말한다. '그래, 나도 드디어 차가 생겼다.' 재산 목록 1호가 바뀐 것이다.
왁스를 바르고, 창문을 정성스레 닦는 모습엔 남몰래 울컥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차가 아니라 삶을 닦는 기분. 우리는 그 장면을 기억한다. 1980년대, 아버지의 자가용 첫 세차를 도우며 세상을 배웠던 시간 말이다.
4. 저녁 골목은 수다의 장, 그리고 ‘이웃사촌’의 시간
해가 지면 바람은 선선해지고, 동네 공원은 다시 살아난다. 아이들은 근처에서 맨발로 뛰놀고, 아빠들은 아직 퇴근 전이다.
그 시간, 골목은 여성들의 세계가 된다. 한 손엔 까놓은 망고 한 조각, 다른 손엔 누군가의 이야기가 들려 있다.
“우리 집 애는 또 시험을 망쳤다니까~”
“요즘 남편은 맨날 핸드폰만 봐요.”
그렇게 공감과 웃음이 오간다.
문득 떠오른다. 한국의 1980~90년대,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실제로 살아 있던 시절.
'응답하라 1988'에서처럼 마당에 펼쳐놓은 돗자리에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여 고구마를 굽고, 옥수수를 나눠 먹으며 자식 이야기, 남편 흉보기를 넘나들던 그 풍경 말이다. 그땐 담장도 낮았다. 집과 집 사이, 마음과 마음 사이도 낮았다.
베트남의 이 저녁 골목에서, 나는 그 시절의 한국을 다시 만난다. TV보다 재미있던 이야기, 가족보다 살갑던 이웃들. 우리도 그랬다. 진짜 그랬다.
5. 추석같은 친척 모임, 그리운 풍경의 재현
베트남의 명절, 혹은 결혼식이나 생일 같은 특별한 날이면 한 집에 삼대가 모이는 풍경을 쉽게 볼 수 있다. 낮에는 원형 탁자를 중심으로 온 가족이 둘러앉아 밥을 먹고, 저녁이 되면 마당에 자리를 펴고 맥주잔을 기울인다.
어르신이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르면, 아이들은 그 곁을 맴돌고, 장남이 손수 맥주를 따르며 아버지께 건네는 장면엔 자연스러운 존경이 담겨 있다. 이웃도 친구도 한두 명씩 초대받아 어느새 10명, 20명으로 불어난다.
한 번은 내가 길을 지나며 그 장면을 사진에 담았는데, 한 어르신이 벌떡 일어나 나를 부르셨다. “외국인인가? 한 잔 안 하면 사진 못 가져가~” 장난기 어린 눈빛에 망설일 틈도 없이 술 한 잔을 건네받았다. 그렇게 나도 잠시 그 가족의 일원이 되었다.
그 풍경 속에서 문득 떠오른다. 어릴 적, 외할아버지 제삿날. 큰외삼촌 집에는 친척들이 모두 모였다. 조카들은 한 방에 모여 큰 누나, 오빠가 아이들에게 재밌는 이야기를 해주고 있었다. 어른들은 한쪽에선 고스톱을, 다른 쪽에선 이모들의 수다전쟁이 벌어졌다. 하지만 우린 언제부턴가 '명절이 힘들다'고 말하게 됐다.
그러나 베트남의 그런 밤을 보고 나면 생각이 달라진다. 그건 귀찮음이 아니라, 다시 돌아오지 않을 ‘우리의 시간’이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