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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여자친구 없어요?

베트남 남부에서 혼자 산다는 것. 그리고 연애에 대한 오해들

by 한정호 Mar 21. 2025

 어제 저녁, 지인이 한 여성 분을 데리고 와서 함께 술을 마셨다. 나는 자연스럽게 자기소개를 하면서 “이 곳 푸미에서 혼자 산 지 6~7년쯤 됐어요”라고 말했는데, 그 여성 분이 갑자기 정색하며 물었다. 

 “진짜 여자친구 없어요?”

  사실 이런 반응은 처음이 아니다. 처음엔 그저 호기심이라 여겼는데, 반복적으로 비슷한 질문을 받다 보니 슬슬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여기에 혼자 오래 살았다는 게 그렇게 이상한 일인가?’

 호찌민시는 베트남에서도 가장 개방적인 도시다. 외국인이 많고, 젊은 인구도 많다. 커피숍이나 술집에서 데이트를 하거나, 연애 상대를 소개받는 일도 자연스럽다. 여기선 연애에 대한 이야기나 표현이 낯설지 않다. 한국보다 훨씬 가볍고 빠른 속도로 관계가 시작되기도 한다. 이 곳 푸미지역도 마찬가지인 듯 하다. 그만큼 한국 사람들과 외국인이 많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렇다 보니, ‘이곳에 오래 살았다’는 말은 누군가에게는 다른 뜻으로 들릴 수도 있다. “외국 남자가 이 도시에 오래 살았다 = 연애를 많이 했겠군” 혹은 “당연히 누군가 있겠지”라는 추측이 그 안에 숨어 있다. 특히, 남자가 혼자 오래 살았다고 하면 더더욱.

 그렇다면 이런 분위기가 호찌민, 즉 남부에만 해당하는 걸까?


 베트남은 지역마다 분위기가 꽤 다르다. 북부(하노이 중심)는 전통적인 가치관이 더 강하게 유지되고 있고, 중부(다낭이나 후에 같은 도시)는 상대적으로 보수적이면서도 외부 문화의 영향을 천천히 받아들이는 느낌이다. 특히 북부에선 가족이나 체면, 예의범절을 중시하는 경향이 남아 있어서 연애나 외도에 대해 훨씬 조심스럽고, 사회적 시선도 날카롭다.

 반면 남부, 특히 호찌민은 경제 중심지이자 이민자 도시라 분위기가 다르다. 외국인도 많고, 자유로운 분위기를 선호하는 젊은층도 많아서 연애나 관계에 있어 더 개방적이고 빠른 전개를 보이곤 한다. 물론 이런 경향이 모두에게 해당하는 건 아니지만, 도시의 전반적인 기류는 분명히 다르다.


 베트남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남성의 외도나 두 집 살림에 관한 이야기가 농담처럼 오가기도 한다. “남자는 밖에 여자가 하나쯤 있어야지”라는 말을 웃으며 던지는 경우도 있다. 반면 여성의 외도는 엄격하게 비난받는다고 한다. 이런 성 역할에 대한 이중잣대는 남부 베트남에서도 여전히 존재하는 듯 하다.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여성들도 점점 더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선택을 하고 있다. 특히 호찌민외 남부지역처럼 도시화가 빠른 지역에선 ‘내 삶을 내가 선택하겠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누군가는 결혼을 늦추고, 또 누군가는 관계의 방식을 자유롭게 정한다.


 나는 이 도시에 6~7년을 살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정작 진지한 관계는 많지 않았다. 누군가를 만나면 나도 모르게 마음에 벽을 세우게 되었다. 상대가 나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게 아니라, ‘한국 남자’나 ‘혼자 사는 외국인’이라는 틀로 바라볼까 봐. 때로는 내가 그런 시선을 경계하고 있다는 걸 상대도 눈치챘을 것이다.

 그래서 어제, “진짜 여자친구 없어요?”라는 질문이 꽤 오래 마음에 남았다. 아마 그 질문은 호기심과 농담이 섞인, 가벼운 말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 도시에서 살아온 시간과, 그 시간 속의 외로움과, 관계에 대한 고민이 겹쳐지며 꽤 무겁게 다가왔다.


 이곳에선 혼자 산다는 건,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은 것 같다. 얼마전 새로 들어온 우리 아들 덕분에 잠자리가 외롭지 않다는 점이 참 다행스럽다. 요 녀석 덕분에 침대위에서 노트북 사용도 못하고, 핸드폰도 조심스럽게 베개 밑에 숨겨 라디오처럼 소리만 듣다가 잠들곤 한다. 30분은 취침시간이 앞당겨진 듯 하다. 

내 머리 바로 옆에서 잠들어 있는 새 아들 '보스'내 머리 바로 옆에서 잠들어 있는 새 아들 '보스'

베트남에서 오랜 시간 살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현지 문화와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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