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댕경x인영구]인영으로부터
얼마 전에 친구들이랑 여행을 다녀왔어. 내 얘기를 막 하는데 내 친구가 나한테, 그렇게 이야기하는 거야. 인영아, 너는 왜 네 행복을 다른 사람을 기준으로 해? 다른 사람으로부터 너의 가치를 찾으려고 해? 머리를 땡 하고 맞은 것 같더라. 내가 어쩌면 '배려'라고 생각했던 순간들이, 나를 사랑하지 않은 순간이었을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어. 오늘 보낼 답장은 내가 예전에 썼던 글인데 오빠한테 보내줄 만할 것 같아서 붙여 넣어.
마음이 아플 때는, 맛있는 음식을 해 먹어라
얼마 전 페이스북에서 글을 하나 읽었다. 정신과 의사 선생님의 글이었는데, 우울증에 걸렸을 때의 대처법에 관한 것이었다. 그중 첫 번째는 나를 위한 맛있는 음식을 ‘해’ 먹으라는 내용이었다. 우리는 보통 친구들을 만날 때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가곤 한다. 그런데 나 혼자 있을 때에도 맛있는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나를 위해서. 나는 그 얘기에 대해 아주 공감한다. 이 얘기를 하려면 오 년 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엄마가 떠나고, 아빠와 나 둘이 남았던 시절로.
고등학교 시절 나는 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고등학교에 다녔다. 대학을 목표로 한 시점에서 기숙사에 살게 되었고, 밤 12시까지 야간 자율 학습을 하곤 했다. 토요일 자습이 끝나면 5시였고, 그때에 집에 가서 일요일 7시에는 다시 기숙사로 돌아오는 삶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렇게 살았나 싶었지만, 당시 부모님이 이혼을 앞두고 있어 나는 차라리 기숙사가 편했다.
부모님이 이혼을 하고 뭐가 제일 힘들었냐면, 음식이었다. 아빠랑 같이 집에 있던 주말이면 우리는 전단지를 돌려 봤다. 그리고선 우리는 자주 짜장면을 먹었다. 아주 가끔 먹는 짜장면은 정말로 맛있고 입이 즐거운 음식이지만, 그걸 매주, 점심에, 몇 달을 반복하면 그건 끔찍한 음식이 된다. 당시에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음식은 당연 짜장면이었다. 끔찍할 정도로 싫었다. 나에게 짜장면은 곧, 엄마의 부재를 증명하는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배운 거라곤 밥 안치는 일 뿐이었다. 짜장면을 먹다 지쳐서 나는 기숙사에서 돌아오는 주말이면 방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 그냥 굶었다. 혹은 교회에서 점심을 먹거나, 정 배가 고플 때면 라면을 먹었다. 레토르트 식품도 자주 먹었다. 매주 배달 음식을 먹고, 라면을 먹다 보니 그것도 싫어져서 거의 굶기 일쑤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나는 우울증을 앓았던 걸 지도 모른다. 나는 나를 사랑하는 방법도 몰랐고, 갑자기 닥친 일들에 적응할 새도 없이 어른이 되어야 했으니까. 또, 모든 게 내 탓인 것만 같아서 나를 망치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 나를 보다 못해 아빠는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된장찌개에서 김치찌개, 닭볶음탕, 미역국 이런 것들. 내가 기숙사에서 돌아온 주말이면 가장 큰 냄비에 미역국이 담겨 있었다. 나는 이 집에서 고작 한 끼, 많이 먹으면 두 끼 정도 해결하는데 아빠는 가장 큰 냄비에 음식을 했다. 나는 그게, 그게 참 아직도 울컥한다. 아빠는 요리를 하기 시작했고, 나는 그 집에서 밥을 먹기 시작했다. 가장 싫어했던 공간이 ‘집’이 되는 순간이었다. 아빠와 내가 가족이 되는 순간이었다.
사랑이 뭐라고 누군가를 죽음에서 삶으로 건져 올리는 걸까. 나는 매번 의문이었다. 사랑이 뭐라고. 그게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거라고 삶과 죽음을 좌우하는 걸까. 내가 느낀 사랑은 엄청난 것이었다. 내가 죽고 싶었던 순간, 나 자신을 학대하는 모든 순간에서 나를 끌어올렸다. 나도 조금씩이지만 나를 위해서 음식을 하기 시작했다. 기숙사에서 집으로 가는 그 길이 무척이나 길었는데, 점점 짧아졌다. 아빠랑 마주 보며 식사를 하며 조금씩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어떤 학교를 가려고 하는지, 무슨 과를 희망하는지. 그런 사소한 이야기들. 문득 아빠랑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게 처음이라는 걸 알았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지금 내가 죽고 싶은데 음식을 어떻게 해 먹냐고. 우울증에 대해 아는 척하지 말라고. 물론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음식에는 마음이 담겨 있다는 얘기다. 맛이 없더라도 가장 큰 냄비에 담겨 끓여진 국처럼.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이 담겨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맛있는 음식을 해서 먹으라는 건, 당신 자신을 사랑하라는 이야기다.
당신과 나의 상황이 어쩌면 조금은 다를지 모른다. 나는 나를 굶기고, 아빠를 통해 상황을 벗어났으니까. 그렇지만 조금 자란 지금은, 가끔 폭식을 하기도 한다. 우울한 마음을 달래는 방법으로 사용했던 것 같고 여전히 그러하다. 그러니까 음식이라는 게, 이상하게도 내 감정을 대변하는 요소였던 거다. 그게 과식이든, 혹은 금식이든. 어떤 경우든 간에 나를 사랑하지 않을 때 잘못된 길로 가곤 하는 거다. 당신도, 나도 나를 사랑하는 법을 여전히 배워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이 허기질 때는,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가장 먼저 배워야 한다.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 무엇일까. 우리는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연습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 메일에는 이런 이야기를 듣고 싶다. 당신이 생각하는 당신의 장점 3가지를 적어서 보내줬으면 해. 또, 당신이 어떻게 당신이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 후에 당신에게 좋아하는 일을 직접 해준 후기를 들려주기를 바란다. 나 또한 그 답장으로 나의 장점과,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내게 해 준 후기를 보낼 테니까 :) 아주 어려운 미션이지만 꼭, 성공해서 후기를 들려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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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어 레터는 매주 수요일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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