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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2] 바쿠 시내 구경

스몰톡의 천국, 게스트하우스

by 박약

호스텔에서 밖을 내다보니 날이 흐리고 사람들은 패딩을 꼼꼼히도 챙겨입고 있었다. 꽤 추운날이구나.. 하지만 나는 꽤 걸을 테지, 하고 티셔츠 하나에 패딩을 걸쳐입었다. 새벽 5시에 일어났는데 어제 저녁부터 게스트하우스에 물이 다 팔려서 목을 축이지 못했다. 당장 나가야 하기에 이것 저것 검색해보고, 남은 돈들을 계산해보고, 글도 쓰고 남편과 연락도 하니 금방 9시가 됐다. 이제는 슬슬 챙겨서 나가야 할 시간이다.


예상일정은 시내구경과 유심구매, 점심먹기와 들어오면서 장봐오기였다. 당장 클렌징 오일도 없었고, 슬리퍼도 구매해야 했다. 28MALL 까지는 지하철 한 정거장, 걸어서 약 20분 정도였다. 출근 시간이 지나 조용한 유럽풍의 바쿠거리를 걷다보니 금방 슈퍼마켓이 나왔다. 들어가니 카운터 직원이 코리안? 한다. 되게 한국풍으로 생긴 편이긴 한데, 중학생들도 친구들이 장난으로 고전미인이라고 하고, 누군가는 리설주를 닮았다고도 한다. 요즘 얼굴에 살이 올라서 이목구비가 더 통통 납작해졌다.


예스, 하니까 예쁘게 웃는다. 단위가 크긴 했지만, 괜찮다며 바꿔주었다. 공항에는 어느 마낫을 원하느냐는 질문도 없이 돈을 바꿔주었었다. 사실 난 그래서 더 편했다. 생수가 시원하진 않았지만 목이 말랐던 차에 작은 병을 다 비웠다. 이제 1마낫짜리도 생기고 동전들도 생겼다. 다이소에서 사온 귀여운 토끼 동전지갑에 담고 다시 총총 발걸음을 옮겼다.


바쿠 시가지에는 군데 군데 공원이 있다. 에어팟에 재즈를 틀고 걸으니 꽤나 운치가 있다. 조용한 오전의 유럽풍 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까지. 여기는 동양인이 거의 없기에, 아닌척하면서 쳐다보는 사람이 꽤 많다. 특히 아이들은 시선을 숨기지 못하고, 어른들은 그냥 빤히도 본다. 이래서 다들 해외여행을 오는구나, 완전히 외국적인 풍경에 이국적인 사람들까지. 가슴이 뭉게뭉게 설렌다.


지금까지는 일본, 중국, 코타키나발루, 태국을 다녀왔다. 모두 관광지여서 관광객들이 꽤 많았고, 말레이시아와 태국은 친척들과 함께, 일본은 친구들과 함께, 중국은 같이 중국어 배우던 사람들과 다녀왔다. 지금은 내 생애 처음 한달여행이자, 혼자 오는 자유여행이다. 한국에 돌아가서는 아이 계획이 있다. 앞으로 향후 몇 년간은 느끼기 힘들 자유로운 시간, 지금 실컷 느끼고 가야지.


28mall에 가까워지니 정말 사람이 떼거지로 나오기 시작한다. 점심시간이라서 그런가, 근처 대학이 있어서 그런가, 수많은 인파속에서도 단연 튄다. 언어는 말하지 않으면 잘 모르는데, 외모는 보자마자 튀나 보다. 지금까지는 어디를 놀러 가도 한국인들이 꽤 많았는데, 여기서는 정말 이질적인 존재가 되었다. 태어나서 처음 느끼는 감정이다. 오히려 게스트하우스에서는 동양인은 거의 없었지만, 워낙 국적들이 다양해서 덜 했구나 싶다.


어디선가 인종차별을 당하는 사람들을 이 수많은 시선이 멸시로 느껴질텐데, 얼마나 속상할까 싶었다. 물론 여행하면서 언젠가 내가 느낄지도 모른다. 무언가 새로운 경험들은 많은걸 배우게 하는구나. 다른 것에 대한 존중은 아주 중요하구나 싶다. 우리 지역에서 내가 담당하던 사업의 다문화 쌤들은 활발한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 지금이야 한국말도 잘 하고 하지만, 처음에는 언어도 모르고, 아이도 키워야 하니 얼마나 어려웠을까. 늘 대단하다고 생각했지만, 다시 한 번 그분들이 참 멋지다는 생각이 든다.


배는 고프지만 뭘 먹어야 할지도 모르겠고, 혼자 식당에서 자리차지하는 것도 뭔가 민폐인것 같아 제일 만만한 백화점에 들어갔다. 28mall이 백화점인지 아울렛인지는 모르겠지만, 고급 브랜드들도 꽤 있어보였다. 원체 쇼핑을 좋아하지 않는지라 쓱- 올라가는데 고급스러운 그릇 가게가 눈에 띈다. 평소 인테리어나 디자인도 좋아하기에 들려봤다. 화려하고 예쁜 중동풍 그릇들이 많다. 하나하나 자세히 살펴보다가, 한국화 스러운 디자인들도 많아서 놀랐다. 크리스탈류가 굉장히 화려하고 예뻤다. 집에 가기전, 배낭에 자리가 허락된다면, 기념으로 찻잔을 몇개 사갈까 싶다.


우리는 보통 지하에 음식점이 있는데, 이곳은 지하는 따로 없던지 내가 못찻았던지 한 것 같다. 맨 위층으로 올라가니 푸드코트가 있고,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 익숙한 브랜드들이 보인다. 맥도날드, 버거킹,,, 문제는 거의 빵류와 피자류, 버넛류가 많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난 밥순이라 느끼한 음식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라이스를 찾아 한바퀴를 돌아도 음식이 거의 비슷하다. 다 패스트푸드점이라 그런가.. 하면서 좌석이 조금더 좋은 곳에 가격이 높은 세트메뉴를 시켰다. 세트메뉴면 뭐 잘나가는거 아닌가..


음식을 기다리는데 누군가 한국어로 말을 건다. 현지인인데 한국어가 능숙했다. bts 팬이라며 바쿠 세종학당에서 한국어를 공부하는 대학생이라고 한다. 17살이 대학생이구나. 국어교육과를 전공했기에 더욱 반가웠다. 다시 대학을 다니며 반가워 아까 먹은 메뉴의 이름을 물어봤다. 뭐라고 했는데 지금은 다시 기억나지 않는다. 밥을 먹고 사진을 찍자고 했다.


음식이 나왔다. 잘라진 소고기와 빵을 토마토 소스와 버무렸고, 옆에는 어떤 묽은 치즈가 나왔다. 콜라와 감자튀김이 세트였다. 아제르바이잔 음식이 꽤 짜다더니 진짜로 짰다. 그래서 콜라가 왠지 더 달게 느껴졌다. 치즈는 신 맛이 났다. 먹을수록 짠 맛이 올라왔지만 맛은 꽤나 좋았다. 배고파서 남기지 않고 다 잘 먹었다. 솔직히, 밥이 아니라 반찬같은 느낌이였다. 밥이 먹고 싶었다.


아무리 한 바퀴를 돌아도 라이스가 없어서 시킨 거였는데, 내 옆자리에 앉은 가족은 볶음밥 같은 밥에 구워진 소고기를 먹고 있었다. 내 옆 가게에 있었다. 대충봤나.. 다음엔 저걸 먹어야지. 이 나라 애기들은 다 천사같이 예쁘다. 이목구비가 얼굴에 꽉꽉 차있다. 좀 큰 아이들은, 안쳐다보는척 하면서 엄청 쳐다보고 작은 아이들은 그냥 대놓고 쳐다본다. 너무 귀엽다.


음식을 먹고 그 친구와 같이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인스타를 공유했다. 한국이름이 따로 있었고, 대학생활을 아주 즐기는것 같아 보였다. 한국을 사랑하는 타지 사람이 꽤 반가웠다. 한류는 힘이 아주 세다.


음식을 먹고 나와서 시내를 하릴없이 걸었다. 사람이 아주 많았다. 멋쟁이도 아주 많았다. 서울 명동같은 느낌이였다. 바버샵도 아주 많았다. 이 동네는 남자들이 더 꾸미나보다. 재밌는건, 그렇게 패딩을 꼭꼭 입을 날씨까지는 아닌거 같은데 다들 패딩을 꼭꼭 입고 있었다. 아마도 우리 나라 사람들보다 추위에 약한 것 같았다. 좀 걷다 보니 더워져서 겉 옷을 벗어 허리에 둘렀다. 분명 납작복숭아도 판다고 했는데, 과일가게마다 없었다. 철이 아니였을까?


한 시간정도를 사람 구경도 하고, 골목구경도 하고, 가게구경도 하면서 보내다 유심을 바꿔 끼는 곳을 찾았다. 텔레폰 가게가 한도 끝도 없이 늘어져 있었는데, 인터넷만 되는 유심은 없다고 했다. 한국에서 전화오는 것이 막힐까 걱정이였는데, 어쩔수 없이 아제르바이잔 번호를 하나 받았다. 5gb 용량의 유심을 구매하는데 15마낫이였다. 데이터가 잘 안터지고 로밍이 더 빠르대서 로밍을 하려 했는데, 아제르바이잔은 어차피 해당되지 않았다. 하루 최대 3000원 로밍에 비해서도 훨씬 쌌다. 한국보다는 조금 느리지만, 유심으로도 충분했다. 사실 출발 전날 이것 저것 다운받는다고 하루에 2.5gb를 썼는데..ㅋㅋ 아껴써야겠다.


유심을 바껴끼고는 왠지 슬슬 피곤해져서 다시 숙소를 찾았다. 검색해보니 여기서는 bravo라는 슈퍼마켓이 제일 대중적인것 같다. 사람들도 봉투를 많이 들고 다닌다. 가다보니 꽤 큰 브라보를 만나서 이것 저것 생필품을 샀다. 물, 물티슈, 생리대, 팬티라이너, 체리주스, 요거트, 클렌징밀크, 우유, 콘프르스트해서 13,000원 정도 나왔다. 내가 현금을 약 100만원정도 뽑아왔는데, 부족한거 같아서 자꾸 액수를 확인하게 된다. 바쿠는 엄처나 시티고, atm이 많은데 다른 도시는 어쩔지 모르기 때문이다.


집에와서는 졸려서 간단히 씼고 잤다. 자고 일어나니 6시가 넘어있었다. 간단히 주변을 둘러 볼까 하다가 하이랜드 파크로 야경을 보러 가기로 했다. 처음으로 바쿠 지하철을 탔다. 짐 검사를 한다는데 기계가 해서 매우 간단했다. 구소련의 나라인만큼 지하철이 아주 깊었다, 안은 쾌적하고 디자인이 심플하면서도 고풍스러웠다. 퇴근길이라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었고, 경찰들과 cctv가 꽤 있었다.


지하철에서 내려 하이랜드 파크로 걸어갔다. 약 30분 걸렸는데, 주변엔 큰 유럽풍 건물들이 크게 크게 늘어져 있었다. 규모들은 크고 거리는 아주 한산했다. 옆 도로에는 차가 엄청나게 다니고 있었다. 나는 이런게 좋다. 큰 건물 사이에서, 아무도 없는 거리를 여유롭게 걷는것. 누군가는 무섭냐고 물어볼지 모르지만, 내게는 나만의 낭만이 있다. 갑자기 기분이 엄청 좋아졌다. 큼직큼직한 건물을 실컷 구경하며 사이사이를 걸어다녔다.


하이랜드 파크까지 올라가고 나니, 멋진 바쿠의 시내가 한눈에 보였다. 화려하고 웅장한 건축물이 많았다. 플레임타워에서는 다양한 조경들이 반짝였다. 재즈를 들으며 한참을 앉아 생각했다. 곁에 누군가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 택이나 엄마가 생각났다. 같이 보면 좋았을텐데.. 이것 저것 감상에 빠져 있는 이런 순간들을 나는 마냥 좋아한다. 당시의 감성이 차오르는 순간들. 나중에 잊을지라도, 이런 순간들은 나만의 소스가 된다.


한참 보고 있는데 어떤 커플이 사진을 부탁했다. 관광객 같아서 최선을 다해서 세 장 찍어주었다. 그들은 쏘쏘 어메이징이라며 칭찬했다. 인스타 짬밥이 여기서 나오는 걸까. 어쨌든 힘들게 올라온 이 곳에서 마음에 드는 사진을 남겼다니 다행이다. 뒤쪽을 걸어보니 따뜻한 불이 나오는 곳도 있고, 순교자의 길도 있었다. 최근까지 전쟁을 한 아제르바이잔에 다시는 희생자가 나오지 않길 기도하며 내려왔다.


다시 숙소에 와서 잠을 청하려는데 새로운 룸메이트가 있었다. 이로써 룸메이트는 파키스탄 친구와 아제르바이잔 친구, 나까지 총 3명이 되었다. 파키스탄 친구는 영어를 아주 잘했고, 학생이면서 음식 관련 사업을 한다고 했다. 아제르바이잔 친구는 이 근처 어딘가 바의 바텐더였다. 둘다 아주 외향적이였는데, 구글 번역기는 아쉽게도 아제르바이잔-한국어, 영어-한국어가 제일 정확하게 번역이 되었다. 짧은 영어와 시냅스로 연결하느라 죽는지 알았다. 하.. 영어가 늘어야 하는데 눈치가 늘고 있다.


그래도 다양한 이야기들을 했다. 파키스탄 친구와 케밥을 사러 갔는데, 주인이 여기가 제일 싸다고 하니까 밖에까지 둘러보고 오겠다고 하는 야무짐에 놀랐다. 나라면 걍 한국보다 싸니까 저렴하네..땡큐 하고 먹었을텐데. 되게 멋져보였다. 셋이서 케밥을 먹으면서 다양한 수다를 떨었다. 신상을 얘기하고, 직업을 얘기하고, 바에 한 번 놀러오라고 했는데 파키스탄 친구는 술을 먹지 않아 결렬되었다.


파키스탄은 생각보다 보수적인 나라인가보다. 어제 스몰톡을 건 사람도 파키스탄인이였는데 영어를 아주 잘했다. 사실 이 게스트하우스에 온 사람은 대부분 영어를 매우 잘했다. 한창 얘기하다가 피곤해서 샤워를 하고 잤다. 12시쯤에 자서 눈을 뜨니 새벽 4시. 시차적응중인가, 정말 왜이러나 싶다. 한 7시쯤에 일어나면 좋았을텐데.. 글을 조금 쓰다가 카스피해에 일출을 보러 갔다.


일출을 보러 갔는데 안개가 잔뜩 껴있었다. 아침운동하기 딱 좋은 코스였다. 일출은 볼 수 없었지만, 어떤 바쿠 할아버지가 러시아어로 말을 걸었고, 손녀가 한국 가수 팬이라며 한참 대화했다. 모레 아침에 같은 곳에서 만나기로 했다. 손녀를 데려온다고 했다.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환대해주는 사람이 많은데, 내가 한국 가수들을 잘 모른다. 공부해가야 할판이다. 내일은 투어가 있고, 모레는 꼭 여기서 일출을 보리라.


바쿠 큰 도로에는 횡단보도가 잘 없고 대부분 무단횡단을 한다. 돌아올때는 출근시간이라 차가 너무 많아서 횡단보도를 찾아 한참을 걷다가 건너왔다. 덕분에 아주 멋진 까페거리를 발견했다. 원래 오늘 올드시티를 가려고 했는데, 날도 흐리고 해서 오늘은 여기서 커피나 마셔야겠다. 맛있는 점심과 함께 :) 기분이 너무 좋아져서 다시 열심히 걷고, 구경하고, 우리 룸메이트 언니의 바도 만난것만 같다.


다시 숙소로 와서 씼고 쓰다 만 글을 완성하는데 옆 자리 분이 또 스몰톡을 걸어온다. 혼자 와서 외로울것 같았는데 그런 걱정은 하덜덜 말아도 된다. 체감상 한 5명과 함께 온 만큼 스몰톡은 끝없이 한다. 내 스케쥴대로 움직이고, 외롭지도 않고, 재밌고, 스케쥴을 미리 안짜니 날짜와 계절과 이런 약속같은 변수에 맞춰 스케쥴을 변경할 수 있다. 정말 최고다 !!! 대충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옆 분이 영어를 잘하고 또 쉽게 잘 해줘서 아주 고맙게도 대화를 1시간정도 이어갈 수 있었다. 한국어가 안들린지 며칠이나 됐다고 일본과 한국의 관계에서 '식민지'라는 단어가 기억이 안나 검색을 해보았다. 뉴런과 시냅스들이 영어에만 온갖 신경을 쓰고 있는게 틀림없다. 그분은 바레일이라는 나라의 분이였는데, 매우 젠틀하고 친절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옆 나란데 알고보니 매우 가고 싶게 예쁜 나라였다.


중동은 왠지 무서운 나라일것만 같은데, 매우 친절하고 스윗한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일단 이분도 매우 스윗하고 친절해서 신기했다. 바레일이라는 나라도 처음 듣는데, 그곳에는 중국인들이 꽤 있다고 한다. 중국 친구들도 많다고 한다. 중국인들이 일본인보다 친절하다고 느꼈다는 것도 신기했고, 중국인과 일본인은 육안으로도 구분이 가능하다고 하는 것도 신기했다.


나는 중국인인지 알았다고 한다. 한국사람들은 체구가 작을거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키가 꽤 크기 때문이다. 그럴 수 있다고 했다. 내가 처음 본 한국인이라니.. 모든 한국인이 이렇게 영어를 못하는건 아닌데.. 뭔가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들수록 말은 개판이 되었다 ^^* 우리나라처럼 문법을 중시 교육하는 학교에서 어찌 나같은 이단아가 나왔을꼬.. 다행히 어느정도 소통은 된다.


한참 수다를 떨다가 보니 벌써 11시 반이다. 이제 점심을 먹고, 커피 한 잔을 즐기고, 유람선을 타고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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