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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잎클로버처럼 Jan 25. 2023

정말 바쁘지는 말고 바쁜 듯이


"지금 바쁘죠?"

"미안한데, 이거 좀 부탁해도 될까요?"

"바쁠 테지만, 지금 차 한잔 할까요?"


사회 초년생 시절에 늘 듣던 말. 바쁘다. 나 역시 무의식 중에 대화를 할 때 "바쁘겠지만..." "바쁠 테지만..."으로 시작하고 있었다. 바쁘다는 말은 어느새 습관이 되었다. '바쁘지?'라고 묻는 말은 '나 바쁘다. 너도 바쁘니?'와 같은 말로 들렸다. 


처음에 '바쁘다'는 말은 나에게 해야 할 일이 있다는 좋은 의미였다.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는 자부심 같은 것이었다. 반면, '바쁘지 않다'는 할 일이 없는, 한심한, 게으름으로 인식했던 것 같다. 대체로 바쁨이 좋았다. 쉴 새 없이 업무들을 하다 보면 어린이집, 유치원 간 아이는 까마득하게 잊는다. 오직 그 시간은 육아와 분리된 유일한 시간이기도 했다. 바쁨이 생활이 되더니 육아에도 이어졌다.


"엄마! 나랑 놀아줘. 이거 같이 놀자."

라며 애타게 엄마를 기다리던 아이에게

"지금은 바쁜데. 밥하고 있잖아. 밥 먹고."

밥 다 먹고 나서 하는 말은

"설거지만 마저 하고 놀자"

잠깐 놀고 나서 하는 말은

"내일 아침에 출근하려면 바쁘니깐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자. 이제 양치하고 잘 시간이야"


짧은 시간이라도 눈 마주치고 진심을 다하려고 했지만, 머릿속에는 늘 지금 당장 해야 할 일들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정말 바쁘게만 살았다. 이 시기에 많은 엄마들이, 특히 많은 워킹맘들이 그랬을 것이다. 주말부부로 큰아이가 어렸을 때 6년간은 독박육아를 했다. 집에 와서 놀아줄 사람은 엄마밖에 없었을 텐데 그 시기에 다 못 채워준 뭔가가 있을까 봐 겁이 나기도 했다.


그땐 몰랐지만 나 홀로 감당하기엔 너무 무모했던 거 같다. 일도 좋았고 아이도 너무 예뻤기에 최선을 다해 살았다. 다른 길, 다른 상황을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다. 하루하루 순간을 살았다. 그렇기에 버텼는지 모르겠다. 육아의 모든 게 처음이라 엉성했지만 너무 씩씩하게 잘 해내는 것 같아서 스스로를 칭찬하며 뿌듯해하기도 있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왔을 때 종일 엄마만 찾고 징징대는 아이를 볼 때면 안쓰러워서 안아주고 토닥여 주다가도 서서히 남편의 부재(주말부부)에 대한 원망이 올라왔다.


나 홀로 바쁨의 장기화로 내 영혼마저 탈탈 털리고 있었다. 속상하고 억울했다. 주변을 둘러봤더니, 다들 도와주는 사람이 옆에 있거나, 남편과의 분담이 되어 더 여유롭고 순조로워 보였다. 주변사람들의 와 대단해~! 슈퍼맘이야~! 이런 말들도 더 이상 위로가 되지 않았다. 어느새 바쁨 증후군 같은 것이 내 삶을 송두리째 갉아먹고 있는 것 같았다. 펑~! 나의 엔진은 과열되었고 어떤 기름칠로도 가동될 에너지가 없었다.


'이렇게 살고 있는 게 맞는 것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이 꼴을 하고도?)'

'나는 행복한가? 우리 아이들은 행복한가?'

'STOP~!'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어.'


나는 박차고 나왔다. 주변에 양해를 구하고, 그동안 가던 일을 <잠시 멈춤>했다. 나와 우리 가족을 위한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 나의 육아휴직 세계가 시작되었다. 아이들과 함께 행복한 성장을 꿈꾸며 가던 길을 멈추고 또 다른 세상을  구경하고 참여하는 느낌이랄까? 흥미진진했다. 자신의 삶을 아름답게 가꾸고 성장해 가는 사람들이 유난히 내 눈에 들어왔다.


휴직 후 오랜만에 만난 직장선배들의 "요즘 어때?"라는 질문에 대한 나의 첫 대답은 "한 가지 일만 해도 돼서 너무 좋아요."이었다. 육아 역시도 정말 힘든 일이라고 하지만, 나에게는 한 가지 일이 되어서 너무 좋았다. 이 모든 순간을 기쁘고 감사하게 받아들였다. 덕분에 한결 충만한 시간으로 채워가고 있다.


몸과 마음이 한결 여유로워진 나. 여전히 '바쁘다'는 말은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기도 하지만, 의식적으로 더 안 하려고 노력한다. 나를 돌아볼 여유도 없는 정신없이 바쁜 상황, 늘 바쁨에 시달리는 바쁨 증후군에 더 이상 곁을 내주고 싶지 않다.


나에게 '바쁘다'는 본질을 놓치고 열심을 낸 그때가 투영된 것 같다. '바쁘다'는 말을 하고 나면 무엇 때문에 바빴는지 생각해 본다. 속 빈 강정이 되지 않았나 되돌아본다. 때로는 바쁘냐는 물음에 오히려 "아니요, 전혀요."라고 대답하기도 한다.


바쁜 듯이 살아가지만 정말 바쁘기만 하고 싶지는 않다. 바쁨에 허우적대다가 그 순간과 그 시기에 채워야 할 본질(꿈, 사랑, 의미 충만한 시간들...)을 잊어버리고 싶지 않다. 바쁜 듯 하지만 정말 바쁘지 않은 일상을 꿈꾼다. 바쁜 듯 바쁘지 않은, 느긋하게 바쁜 듯한 삶을 만들어가고 싶다.


위로가 되는 시. ^^

정현종 시인님의 <바쁜 듯이>


정말 바쁘지는 말고

바쁜 듯이

그것도 스스로에게만

바쁜 듯이


한가한 시간이 드디어

노다지가 될 때까지 느긋하게

느긋하게 바쁜 듯이


 - 정현종 <바쁜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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