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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섬 Apr 06. 2024

돌고래 일기

새 수영팀에 적응하기

2024. 4. 3.

이태원 수영장 오늘 3일 차 출퇴근.

이곳은 예전 수영장하고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엄마들이 줄줄이 따라와서 관람석에 있던 그곳과는 달리 아이들이 그냥 혼자 집과 수영장을 오가며 운동하는 듯하다. 관람석에 엄마가 한 두세 명 정도 있고, 고요하다. 이렇게 운동하는 세 시간은 그냥 내가 집중해서 작업하는 시간으로 갈무리된다.


혜성이랑 같은 레인에서 운동하는 같은 4학년 친구가 있는데, 정말 너무 잘한다. 특히 접영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심지어 중학교 누나들보다 잘하는데... 접영뿐 아니라, 자유형, 배영, 평영까지 아주 물에서 위로 붕붕 떠오르는 라인이 마치 날치 같다.

나도 사람이라 저 잘하는 친구를 보니까 좀 속상하다. 혜성이는 작년 말, 기량이 쑥 오르다가 강사가 바뀌면서 폼이 온통 다 무너졌다. 다섯 살 때부터 가르쳐주셨던 코치님은... 그냥 말을 아끼겠다. 그저 내가 너무 장애인 수영이라고 안일하게 생각했었나 싶고...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천천히 길게 가보자 마음을 다잡아 본다. 솔직히 이야기하면 혜성이는 발차기는 확실히 저 친구보다는 훨씬 앞서는데, 스트로크에서 많이 부족하다. 접영, 배영은 지금 리듬 하나도 안 맞고, 평영은 아예 잘 못한다.

(나중에 선생님 말씀을 들어보니, 저 친구도 국내 초등학교 선수들에 비하면 그저 중간 정도 하는 거란다. 우리나라 수영 선수들 실력, 전 세계와 겨루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실감되는 순간이었다)


사실은 이번에 수영장 옮기고 난 뒤, 전 수영장에서 운동 가르쳐주신 선생님들께 너무 화가 났었다. 이렇게 세심하고 밀도 있게 배울 수 있었는데 5년을 다 버린 것 같아서... 남편 또한 "아니, 아이가 아무리 장애아고 말을 잘 못 알아듣는다지만, 6년째 운동을 하는데, 평영도 안 가르쳐 놓는 게 말이 되냐?"라고 역정을 내며 작은 눈이 더 작아졌었다.

그리고, 들인 강습비용도 배가 더 비쌌다. (이건 정말 '그것이 알고 싶다' 제보해도 될 정도... ㅠㅠ) 뭘 해도 앞에 '장애인' 붙으면 두 배 이상으로 뛴다. 수영이든 뭐든... 시간당 기본 5만 원부터 시작임. 바우처 지원도 당연히 안 됨.

그래도 다시 시작이다.  이쪽 선생님 말씀 어찌어찌 다 알아들으며 그동안 들인 나쁜 수영 습관 다 잡고 있고, 배영 물 잡는 법, 접영, 평영 다시 배우고 있다. 혜성이는 워낙 시키면 시키는 대로 최선을 다하는 녀석이라 천천히 하다 보면 실력 늘 것이다.

다만 오늘은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샤워 다 하고 나와서는 내일은 5시부터 6시 반까지만 운동할 거라고, 엄마가 코치님께 전화해 달라고 계속 징징징 조른다. 좀 전 집에 오는 길에 "아까 너랑 같이 운동하던 친구는 지금도 운동하고 있어." 내가 완전히 '강남 엄마' 같은 말짓거리로 혜성이 심통을 잠재우려고 하다가 흠칫했다. (아이쿠. 미안!) 그랬더니 혜성이가 이렇게 응수한다. "아냐, 나보다 훨씬 잘하는 애야. 혜성이는 못하겠어. 빠를 수 없어. (자기가 느리다는 이야기)"


집에 오니까 9시가 거의 다 됐다. 매일매일 출퇴근하며 사시는 분들도 있는데, 나라고 이 일 못하랴 싶다. 평일에는 이렇게 수년간 살아야 하겠지. 괜찮은 몰입과 도전이다.

좀 전, 아이 재워놓고  하늘이 나를 이곳에 보내며 정해준 사명이 뭘까 잠시 생각해 봤다. 요즘 주역 풀이 책 읽고 있어서 그렇다. 정말 내가 이 땅에 온 사명이 뭘까. 어쩌면 애들 앞길 잘 다지면 그걸로 족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이것만 잘해도 큰 일이겠다 싶다. 작가로 단단히 성공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될 수 없었던 사람으로 한 생 마무리 할 수도. 그래도 늘 쓰고, 또 쓰고 역영은 할 것이다.


혜성이 수영하는 것 보면 물살을 애써 헤쳐 나가는 연어 같다. 힘겹고...



2024. 4. 4.

혜성이는 다행히, 얼마나 꼼꼼히 샤워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운동 끝나면 자기가 혼자 샤워를 하고 나온다. 모방이 워낙 강한 아이인지라 그동안 선생님들이 해주시는 목욕 절차를 아마 다 외우긴 했을 것이다.

아까는 샤워를 하고 나오자마자 또 이상한 노래를 부르고, 유튜브 말을 흉내내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일주일에 두 번 와서 같이 운동하는 형아가 이상하게 얘를 쳐다본다. 나는 그 눈빛이 너무 싫다. 아무리 아이라도...

그래서 내 눈알을 부드럽게 돌려서 그 아이에게 맞췄다. 웃지는 않았고(웃고 싶지가 않았고). 원래 예전에는 "이런 아이 처음 보니?"라고 공격적으로 이야기를 했었는데, 어른한테는 끽소리도 못 하면서 아이만 조지는 강약약강의 전형인 것 같아서 그런 짓 그만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쪽 수영장 오면서 자격지심 비슷한 것이 발동하기도 했다. 국제학교 다니는 아이들이 왜 수영까지 잘하는지. 주차장에 베엠베, 벤츠 주차되어 있고... 이런 '잘난' 애들은 장애에 대한 이해는 한 톨도 없으려니 생각하니까 (편견이다. 부자 아이들에 대한...) 내가 자꾸 날이 서는 것이다. 그런데 또 얘네들은 절대, 네버, 체육 중학교 안 간다. ㅋㅋㅋㅋ 어디 그런 학교를 가. 앞으로 스탠퍼드, 하버드 가실 분들이...


내가 아이 눈을 맞춰 쳐다보니까 아이가 소리는 안 내지만 입으로 아 시발.... 보인다. 그리고 나는 혜성이에게 일부러 크게 말했다. 걔 들으라고.  노래는 엄마 차에 가서 실컷 부르자. 그랬더니 그 아이가 또 쳐다본다. 서늘한 눈빛으로. 나도 지지 않고 쳐다봤다. 어린아이와 벌인 이 눈싸움이 너무 찝찝하고, 나도 참.... 어른인데 아이한테..... 마음이 아프다.


집으로 올 때 두무개 다리 들어오면서 참다못해 혜성이한테 물어봤다. 아까 엘베에서 본 형, 너랑 같이 운동하는 형 맞냐고. 운동 세 시간 끝나고 난 터라, 지금 나랑 말할 집중력도 바닥인 듯했다. 답을 아사무사하게 한다. 맞아, 아니야, 맞아, 아니야... 휴우~ 그냥 한숨에 마음 실어 내보내고 만다.


이번에 들어간 팀, 정말 잘 들어간 것 같다. 그리고, 장애인 수영팀, 정말 그렇게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하면 안 된다. 정말!

지금이라도 좋은 선생님 만난 것에 감사하고 있음. 넙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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