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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섬 Jun 13. 2024

혐오스런 황섬의 일생

오늘부터 우리 1일

아, 먼저 사진 보고 놀라셨을까 해서... 
사진은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의 가장 슬픈 장면이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사진이다. 그리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밤에 불 꺼놓고 맥주 홀짝이며 청룡영화제나 백상예술대상 같은 영화제 시상식을 보는 것과 틈만 나면 빡빡한 현실을 훌쩍 떠나 자연 속에서 차박을 하는 것이 취미인 50살이 넘은 여자가 있다. 시상식을 보면 너무 감격스러워 줄줄 울면서 수건으로 얼굴 살갗이 벗겨지도록 벅벅 문지르는 이...

벌써 흰머리가 빽빽하게 나서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뿌리염색을 하러 미용실을 간다. 참 머리 커트도 못하고, 드라이도 촌스럽게 하는 동네 작은 미용실이지만, 그래도 그 주인 언니 마음 상할까 싶어 실력 없어도 손품만 들면 되는 염색은 꼭 그 집에 가서 하는 마음 약하고, 착한 여자다.


이 여자에게는 꿈이 있다. 꼭 근사한 드라마를 한 편 써내겠다는 꿈이다. 아니, 영화도 좋다. 지금 벌써 백발 머리가 된 소녀가 늘 자기 이야기가 영상화가 될 그날을 꿈 꾸며 어제도, 오늘도 쓴다. 계속 쓴다. 영화는 욕망이니까. 그러면서 차박하고 돌아댕기는 이야기를 에세이로 쓴다. 그리고 세상의 아저씨들을 관찰하면서 <아저씨 도감>도 쓰고 있단다. 그렇게 이 책, 저 책 다 쓰면서 또 드라마는 시간을 쪼개어 쓴단다. 과연... 얼마나 잘 쓰려나.


이 여자는 '패배주의자'다.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성공 경험'이 없는 사람이다.


국민학교 때는 키가 너무 크다고 여기저기에서 놀림을 받았다. 팔다리에 털이 많아서 별명이 헤라클레스였다. 엄마, 아빠한테 털 깎아 달라고 졸라도 봤지만, 80년대에 언감생심... 이런 몸뚱아리가 너무 싫었다.

중고등학교 때는 음악을 한다고 하다가 그만두었다. 음악을 하려면 재능도 타고나야 하지만, 뒷받침도 필요한데 둘 다 없었다. 재능 없는 것, 숨기고 사느라 혼났다.

대학 때는 별 웃기고 자빠진 법학과에 들어가서 1학년 때 딱 한 번 장학금 타고 4학년 때까지 과 꼴등을 무수히 했다. 그 1학년 장학금도 사학과 이만열 교수님, 그 유명한 교수님께서 시험 채점을 잘못해서 받은 것이다. 장학금 받기로 결정은 났지, 교수님은 실수했지, 여름 방학 때 따로 불러서 레포트를 냈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아르바이트 하느라고, 그 지경이 됐다고 하지만, 법학이 재미가 없어서 노력을 다한 것 같지 않았다. 늘 이런 핑계, 저런 핑계를 대었지만 사실은 재능이 없어서, 머리가 나빠서일지도 모른다. 그걸 숨기느라 조마조마했다.

또 하나. 남들은 다 여자가 영어를 잘한다고 하는데, 아니다. 엄청 못한다. 여자는 그것도 평생 숨겨왔다. 그래놓고 '스픽' 깔고 뒤늦게 연습을 해봤지만, 한 달 하다가 관뒀다. 지금 영어공부 할 때가 아닌 것이다. 그 시간에 글 써서 돈 벌어야 했다.

드라마도 잘 못 쓰는데, 그거 숨기고 드라마 집필 계약은 했으니까,  어떻게든 공부하고 책 읽고, 드라마 보고 난리가 났었다. 여자의 삶 전체가 '체'하는 인생이었다. 이 여자는 도대체 어느 것 하나 잘 해낸 것 없고, 어느 것 하나 찬사를 받은 적이 없다. 칭찬받으려고 인생 사는 것은 아니지만 늘 어깨는 움츠러들어 있다.


심지어 사는 것도 잘도 못 살았다. 결혼도 하는 족족 다 깨졌다. 병신 같이 맞고 때리고 하다가 깨졌다. 그래놓고 피해자 코스프레도 엄청 했다. 남편들 다 나쁜 놈 만들고... '나는 최선을 다했지만, 이혼했어요.'라고 세상에 동네방네 알렸다 그러지 않으면 여자는 살 수가 없으니까.

게다가 애 데리고 도저히 혼자 살 수 있을 것 같지 않으니까 이혼한 남편에게 아들을 보냈다. 한 명도 아니고, 두 명이나 그랬다. 다섯 번 결혼해서 아이 두 명을 각자 남편에게 보냈다. 이렇게 책임감 없는 엄마가 어딨나. 빌어먹을 엄마.... 그렇게 애 보내고, 애 얼굴도 평생 제대로 못 보고 살면서 밥이 들어가나? 술이 들어가나? 놀라운 멘탈이다.


"너는 엄마도 아니야."


이 이야기를 그녀의 세 번째 남편한테 수없이 많이 들었었다. 사실이었다. 엄마도 아니었다. 그러고 나서 딸 데리고 또 결혼을 쳐했다. 그런데, 애를 또 낳고 보니 발달장애아였다. 그래놓고 장애인들을 다 이해하는 듯, 장애인들을 대변하는 듯 코스프레하고 사는데 그것도 페이크였다. 공부도 안 하고, 장애가 뭔지도 모르고, 발달장애인들 지원이 뭔지도 모른다. 그냥 하루하루 애 소리 지르면 "조용해!", 방방 뛰면 "그만 뛰어!", 아이가 헤헤 웃으면 그저 거기에 족하고... 불쌍하고, 귀엽고, 가끔은 너무 창피하다고 생각할 뿐이다. 딱 거기까지다. 힘들다고, 힘들다고 하는데, 천만에, 다른 집 엄마 아빠들도 다 이만큼 힘들다. 아이 키우는 일이라는 것은 이런 것이다.


이혼녀 딱지 달고 욕도 엄청 먹었다. 욕먹어도 싸다. 뿐인가. 세상에서 제일 다루기 쉬운 여자였다. 이혼해서 혼자 살면 득달같이 똥파리들이 끼었다. 진정한 사랑은 개뿔. 그때마다 이 여자는 그게 진정한 사랑인 줄 알고 또 얼마나 최선을 다해서 설레고, 사랑하는지 모른다. 바보도 아니고...


이제는 여자 머리에 흰머리가 덕지덕지 났는데, 철학도 모른다. 슈뢰딩거의 고양이도 모른다. 주식도 모른다. 세상도 모른다. 이러니 꼴랑 이혼했던 경험 하나 가지고 드라마 쓴다고 계속되지도 않는 일, 깔짝거렸던 것이다. 내공이 없는 사람이 드라마를 쓴다고 계속 덤볐다. 벌써 오십이 넘은 사람이, 세상에 드라마 쓰겠다고 칼을 갈고 덤비는 사람들이 20대부터 얼마나 많은데 거기서 도대체 이 여자는 몇 등이겠냐고.


상황이 이런데도 이 여자는 할 일이 그것밖에 없어서 쓴다. 초초초 긍정적인 척하면서 쓴다. 제가 다 이해했어요. 이러면서 쓴다. 이해 하나도 못했으면서... 제가 다 써볼 수 있어요. 이러면서 쓴다. 뭘 다 쓰냐. 못 쓴다. 이런데도 쓴다. 여전히 밝고 웃기는 글을 쓴다. 어떻게 자기 이혼한 이야기, 아이랑 헤어진 이야기, 남편한테 맞는 장면도 우아한 파 드 되, 2인무를 쓴다. 끝까지 얼마나 멋을 부리려고 하는 건가.


이 여자 이야기가 드라마 아닌가. 맞다. 도저히 쟁취할 수 없는 것을 쟁취하려 죽도록 노력하며 애쓰는 사람의 이야기. 그리고 처음 패배주의, 움츠러든 어깨에서 결말에는 멋지게 승리하는 그래프! 하늘 향해 두 손 뻗어 올리며 만세! 를 외치는... 혐오스럽다. 그런데, 멋있다. 멋 부릴 것, 그냥 끝까지 부려라. 이 여자에게 공감하지 못할 사람 누가 있을까. 이 여자 사는 꼬라지, 책임감도 없고, 일부종사도 모르는 년, 삶을 참 쉽게 봤지, 턱턱 지 맘대로 결혼하고 이혼하고... 밉지 않은 사람 누가 있을까. 좋다, 어찌 되었든 감정을 일으키면 드라마다. 무엇보다도 패배주의의 늪에서 빠져나와 성공의 경험을 누리는 것, 이것이 주인공이다!



드라마 엎어졌다.

죄송합니다.라고 애써 이야기했다.

그러자, 누구도 원망하지도 말고, 후회하지도 말라는 말씀을 들었다.

내가 끌어갈 수 없는 이야기였다.

도저히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내 이야기가 아니니까.

내가 아니고 다른 사람이 들어오니까 어떤 캐릭터를 만들어도 매력적이지 않았다.

내가 제일 멋있는데, 그걸 배제하니까 쓰기 힘들어진 것이다.

잘 쓸 수 있는 척을 오래 했는데, 잘 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힘들었다.

작가들 힘들다고 하는 거 이제 듣기 싫으신 모양이었지만...

못하는 것,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다음 단계가 시작된다.

내공? 하나도 없는데, 그건 하루아침에 길러지지 않으니 기다려야겠다.

나 정말 그동안 내공 있는 척하느라고 힘들었다.



남편한테 이야기했더니 "잘 됐어! 차박이나 갔다 와."라고 한다. 착한 사람이다. 쉴 수도 없다. 내일부터 다시 밀린 자서전 작업 마쳐야 한다.

내 이야기 정리하면서,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준비하면서 천천히 다시 시작하겠다. 오늘처럼 좌절하고, 힘 빠지고, 패배주의 절정의 날이 바로 드라마의 시작이다. 

오십 넘은 흰머리 그녀. 다시 드라마를 써라. 너 얘기를 써라. 그게 재밌다.

아, 그리고 3년이 넘는 기간 동안 정말 정말 함께 고생 많았던 분들께 감사드린다.

많은 것 배우고, 배우고, 또 배웠다.


브런치북 이름이 <이번은 된다, 드라마 작가 생존기>인데 생존을 못했다.

나의 망생일기는 이것으로 끝맺음하려고 한다............

로 끝내기에는 나는 너무나 쓸 이야기가 많다.

다시 또 만나자! 내공 쌓아 돌아오겠다.


i'll be b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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