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를 때리고 있습니다만
김호연 작가의 신작 <나의 돈키호테>를 정말 재미있게 읽고 있다. 김호연은 영화 쪽에서 일하던 사람이라 소설 중간중간 너무나 업계에 뼈 때리는 일침을 가할 때가 있다. 낄낄대고 혼자 웃으며 읽었다.
돈키호테 비디오 시절, 쓰고 있는 시나리오는 언제 영화가 되는지 내가 물을 때마다 아저씨는 영화는 혼자 만드는 게 아니어서 제작자가 시나리오를 오케이 하고 그다음 배우들인 참여 해야 제작비가 투자돼 영화가 만들어진다고 했다.
"제작자가 영화 만드는 돈을 내는 게 아니에요? 그럼 제작자는 하는 일이 뭐예요?"
"시나리오 빠꾸 놓는 일을 한단다."
...(중략)
"잠깐만요!"
그가 짜증 난다는 듯 미간에 내 천자를 그리며 돌아섰다.
"시나리오는 어땠어요? 왜 10년 동안이나 영화가 안 된 거죠? 게다가 드라마화도 무산됐고...... 이거 하나만 대답해 주시죠. 장영수 씨 시나리오는 어땠나요? 정말 그렇게 별로였나요?"
그동안 속에 뭉쳤던 것이 터져 나온 질문이었다.
석명환은 뜬금없다는 듯 멈칫하더니 곧 짧게 혀를 차고 나를 애처롭다는 듯 바라보았다.
"<분노의 법정>에 대해서 난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아. 다만 이거 하나만 알려주지. 시나리오가 좋다고 영화가 되는 건 아니야. 성실하다고 돈 잘 버나? 사람 착하다고 복을 받나? 다 그런 거야."
석명환이 미팅룸을 빠져나갔다.
...(후략)
이 소설의 여자 주인공은 지금 행방불명된 어린 시절 돈키호테 비디오 가게 주인아저씨인 장영수 씨를 찾으러 유튜브 채널을 연다. 그리고 동네 꼬마 동생이었던 장영수 씨의 아들과 함께 그를 찾아 나서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삶이 마치 돈키호테와도 같았던 장영수 씨는 학교 다닐 때는 열혈 운동권 학생이었으며 그 결과 취직을 못하고 학원가에서 영어 일타 강사로 이름을 날렸다가, 출판사에도 있었다가, 역시 돈키호테 답게 뜬금없이 영화감독을 꿈 꾸며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다. 내가 소개한 이 장면은 주인공과 아들이 한때 그와 함께 영화를 만들었던 제작자, 제법 크게 성공한 제작자 석명환을 찾아간 장면이다.
어제는 스레드에서 근래 일곱 번째 신작을 낸 한 소설가가 판매 추이를 보니 이번에도 떠내려갔다고 하며 조금 속상해하는 글을 읽었다. 그러면서 김호연은 다섯 번째 소설에서 메가 히트를 쳤는데, 자기는 벌써 일곱 번째라고...
이렇게 소설 열심히 쓰시는 분들 많은데, 다 잘 될 수는 없고... 그래서, 이 아침 석명환의 일침이 눈에 들어왔다. 시나리오가 좋다고 영화가 되는 건 아니야. 성실하다고 돈 잘 버나? 사람 착하다고 복을 받나? 다 그런 거야. 그래도 뚜벅뚜벅 걸어 나가면서 쓰는 수밖에 없다. 다른 방법이 없다. 그 수밖에 더 있나. 걷고, 글 쓰고, 걷고, 글 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