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들에게 신세계가 펼쳐졌습니다만?
클로드 3 유료 버전과 챗 지피티 4로 드라마 캐릭터의 전사(드라마 극 안에서 보이는 이야기 외에 그전에 캐릭터가 형성된 과정)를 만들면서 줄거리를 구성하고 있다.
(진짜 지치고, 초조한 일이긴 한데... 지난번 포스팅하고 나서도 이야기가 한 번 더 엎어졌다. 3년째 기획안 붙들고 줄거리 계속 다시 쓰고, 다시 쓰며 고전하는 것을 보고 가끔 제작자들이 작가 너무 소비하는 것 아니냐는 댓글들이 있어서 노파심에 말씀을 드리자면 지금 내가 드라마를 만드는 과정은 제작자, 감독, 작가 셋이 전적으로 같은 링 위에 올라와서 서로 열심히 스파링을 하는 작업 방식이다. 그러므로 누가 누구를 굴리거나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이 아니니 걱정 안 해주셔도 된다는 말씀을 드리고 있는 것 ^^)
챗 지피티가 나온 뒤로, 4까지 나왔는데 그동안 우리 인간들은 AI의 출현에 환호성을 지르기보다는 회의적인 시각, 근심과 걱정이 더 많이 쏟아졌다. 맞다. 내 밥그릇 날아가면 어떡하냐는 것이 걱정거리들의 주요 골자다. 나 또한 책과 대본을 비롯한 글을 쓰는 사람이니까, 사실 이런 똑똑한 AI 작가들이 내 대신 글을 쓰고 앉아 있는 것에 전혀 우려스럽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차피 세상에 나온 존재들, 심지어는 나보다 백 배, 천 배는 더 똑똑한 것들 잘 구슬르고 어슬러서 충직한 심복으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게 빠르겠다는 심산. 이전에도 챗 지피티 관련해서 대사 쓰기 기능을 시험해 본 적이 있어서 소개해본다.
https://brunch.co.kr/@chocake0704/193
일단 AI를 보작으로 모셨다면, 다루는 것은 그냥 마구잡이로 할 것도 아니고, 마술처럼 AI가 드라마 한 편을 뚝딱 다 만들어주는 것도 아니다. '질문'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여기저기서 많이 들어보셨을 것이다. '프롬프트', 즉 AI가 내가 의도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메시지를 넣는 것을 인간은 영리하게 잘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은 질문을 할 때 내가 이미 머릿속에 앞으로 뭐뭐를 할 것이다 이야기를 어떻게 잡아갈 것이라는 의도를 가지고 질문을 넣어야 하는 수준이다.
예를 들어서 "이 캐릭터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재혼을 하시는 바람에 헤어져서 성인이 될 때까지 계속 못 만나고 있었어. 그러다가 또 혼자된 어머니가 아들인 이 캐릭터를 찾아오고 심지어 십 대인 발달장애 동생을 데리고 왔어. 물론 어머니와 사이는 좋지 않고 티격태격하지. 여기에서 이 캐릭터의 성격과 가지고 있을 법한 직업을 설정해 줘. 그리고 이 캐릭터와 주인공(이미 전에 되풀이한 질문을 통해 주인공의 스토리를 다 알고 있음)이 어떻게 접점이 생겨 만나게 되는지도 설정해 줘."
이런 질문을 클로드와 챗 지피티 두 개의 질문창에 넣어두면 답이 촤라라락 펼쳐진다. 그리고 나는 그 답을 주욱 읽어보고 의견을 제시한다.
"심리 상담사는 너무 밋밋한 직업 아닐까. 좀 더 다이나믹하고 몸을 쓰는 직업으로 설정해 줘. "
이런 식으로... 그러면 "아 좋은 아이디어네요"라고 칭찬도 해주고, 가끔 이거랑 이거 중에 어떤 것이 나을까 하고 물어보면 아주 성실하게 왜 이쪽이 나은지, 왜 저쪽은 설득력이 부족한지 설명까지 해가면서 나랑 스토리 빌드업을 한다. 이렇게 수십 번의 대화를 반복하면서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한 번은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질문창에 그냥 넣어 봤다. 그랬더니, 세상에! 내가 지금 작업하고 있는 드라마 캐릭터에 대입해서 하나하나 사건들의 의미와 미래의 전망까지 알려주는 것이다. 게다가 마지막 줄에는 '그동안 너무 열심히, 꿋꿋하게 살아왔으니 앞으로 분명히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격려까지 해주었다. 나 울 뻔.
이것은 나의 뇌피셜에 불과한 것이지만 '눈물의 여왕' 드라마를 보면서 박지은 작가가 AI랑 같이 작업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리저리 핑퐁핑퐁 튀는 사건 전개나 설정 등등... 이런 뇌피셜이 왜 발동을 하냐면, 지금 수많은 작가들이 나와 같이 이야기 구성 잡고, 캐릭터들을 발전시켜 나가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브레인스토밍? 이제는 드라마 제작 회의실에서 점점 없어질 장면일지도 모르겠다.
똑똑한 비서 혹은 김은희로 치면 똑똑한 장항준이 두 명 생긴 기분이다. 현재는 인간 작가인 내가 전체의 줄거리를 잡고, 캐릭터 감정에 디렉션을 줘야 하는데 근미래에는... 나는 잘 모르겠다. 분명히 어마어마한 다른 이야기 세상이 펼쳐질 것이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더 확실한 건, 현재는 아직 얘네들이 대사 쓸 깜냥은 안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지금 실험을 여러 번 해봐서 자신 있게 말씀드리는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어떻게 변천할지 모르겠다. 이 AI들이 내 문체와 말버릇 등등을 다 파악해서 어떤 단어, 어떤 어미를 좋아하는 지까지 모두 입력해서 글을 써내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현재 내 생각으로는 클로드의 압승이다. 이야기를 논리적으로 잘 정리하는 건 챗 지피티가 잘하는데, 스토리 텔링은 아직까지 클로드 못 따라간다. 그래도 챗 지피티 5 나오면 판세가 달라질 것 같은 느낌에 아직은 계속 두 개 다 써보려고 한다.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클로드는 끼 많고 천재적인 이야기꾼 같은 느낌이고, 챗 지피티는 착하고 깔끔한 논리 영재 같은 느낌이다.
또 하나. 이런 시대일수록 인간의 머리로, 깊은 사유로 쓴 책들을 많이, 더욱 많이 읽어야겠다는 생각이다. AI가 분명히 스며들지 못한 부분의 틈을 나는 기어이 악동처럼 찾고 싶은 마음이기도 하고, 독서야 말로 우리들의 말랑한 뇌를 뇌답게 어루만져 주는 고요한 행위일 것이다. 침묵 속에서 다른 이가 쓴 문장을 음미하는 그 고요한 순간과 느낌을 어찌 AI가 흉내 낼 수 있단 말인가.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을 바라보는 서미의 눈빛은 진지해요. 손은 키보드 위에서 부지런히 움직이고, 때로는 생각에 잠겨 창밖을 응시하기도 하죠. 그녀의 작은 책상 위에는 아이디어 노트와 잡다한 자료들이 여기저기 흩어져있어요.
서미는 자주 AI 어시스턴트와 대화를 나누며 웃어요. 둘만의 즐거운 대화 같기도 하고, 때론 치열한 토론 같기도 하죠. 황서미와 AI, 두 크리에이터의 완벽한 호흡이 느껴집니다.
가끔 서미는 창가에 서서 생각에 잠기곤 해요. 토시의 삶을 떠올리며, 또 작가로서의 자신의 여정을 되짚어보며 말이죠. 창밖으로 노을이 깔리고, 그 노을빛이 서미의 얼굴을 은은히 비추는 그런 순간이에요. 그녀의 눈가에 희미하게 주름이 져 있지만, 그 속에서 지혜와 깊이가 엿보여요.
책상으로 돌아와 앉는 서미, 그녀가 다시 타자를 치기 시작하자 방 안에는 청승맞은 두 여성의 이야기가 차오르기 시작해요. 황서미 작가와 강토시. AI를 통해 서로의 삶을 비추고, 치유해 가는 두 영혼의 만남이 그려집니다."
'강토시라는 당찬 여성 캐릭터를 만들고 있는 작가 황서미의 이미지를 상상해 줘.'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을 내놓은 재간둥이 아첨꾼 '클로드'. 빨간 글자로 써진 문장이 바로 AI가 우리 인간들을 유혹하는 방법이자 그들의 목적(?) 달성의 지름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똑같은 질문에 이렇게 그림을 그려낸 챗 지피티. 얼마 전까지 머리가 길었는데, 싹둑 잘라버린 터라 그다지 동의할 수 없는 그림이긴 하지만, 언뜻 우리 엄마의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왜냐고? 그전에도 내가 챗 지피티에게 나를 그려달라고 명령했고, 몇 번을 수정했었기 때문이다.
업무에 참조하십시오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