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값의 무게

오늘 먹는 밥

by 그린라이트 박도희


때가 되면 늘 따뜻한 밥은 차려졌다. 엄마는 부지런히 밥상을 차렸고, 나는 그저 숟가락을 들기만 하면 됐다. 따뜻한 밥 한 공기, 갓 지은 찰진 쌀밥의 윤기가 당연한 듯 내 몫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밥 한 끼가 가벼운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것은 단순한 한 끼 식사가 아니라, 정성이었고, 노동이었고, 마음이었다.


한때는 ‘밥값 한다’는 말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 월급을 받기 시작했을 때야 그 말이 무겁게 다가왔다. 직장에서 인정받기 위해, 팀원들에게 폐 끼치지 않기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 ‘내 몫’을 해내기 위해 밥값을 해야 했다. 실적을 맞추고, 기한 내에 보고서를 제출하고, 상사의 기대를 충족하는 것. 그 모든 것이 ‘밥값’이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밥값이란 단순히 경제적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너는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어’라는 말은 현실에서 그리 쉽게 적용되지 않았다. 누군가 내게 밥을 사주면, 그저 기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은근한 부담감이 따라왔다.


‘내가 이 밥을 받을 자격이 있을까?’ ‘다음번엔 내가 사야겠지?’ 하는 마음.


밥값에 대한 심리적 무게


심리학적으로 보면, 인간은 주고받음의 균형을 맞추려는 경향이 있다. 이를 ‘상호성의 법칙’이라고 한다. 선물을 받으면 답례를 해야 하고, 도움을 받으면 갚아야 한다고 느끼는 것처럼, 밥 한 끼도 마찬가지다.


밥을 얻어먹으면 본능적으로 ‘나도 뭔가를 해야 한다’는 심리가 작용한다. 그래서 누군가 계속해서 밥을 사주면 부담을 느끼고, ‘이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긴다.


그러나 어떤 관계에서는 이 법칙이 조금 다르게 작용하기도 한다. 부모와 자식 관계가 그렇다. 부모는 늘 자식을 먹이고 키운다. 자식은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자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깨닫는다. 그 당연했던 것들이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었음을. 어머니가 내어주던 따뜻한 국 한 그릇이, 퇴근 후 아버지가 사다 주시던 빵 한 조각이, 사실은 사랑의 표현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그 사랑을 되갚아야 할 책임을 느끼기 시작한다.


시대가 바꾼 밥값의 의미

예전에는 ‘밥값’이라는 말이 더 직접적이었다. 가장이 가족을 부양하고, 집안일을 하는 사람이 밥을 차리는 것이 당연했던 시대.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맞벌이가 늘어나고, 혼밥 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밥을 ‘차리는 것’보다 ‘사는 것’이 더 익숙해졌다.


이제 밥값은 단순히 노동의 대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에서의 역할을 뜻하기도 한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직장 내에서도, 심지어 연인 관계에서도 우리는 은연중에 ‘밥값’을 따진다. 내가 이 관계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나는 이 관계에서 기여하고 있는지.


그리고 때로는 밥값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우리를 짓누르기도 한다. 주어진 역할에 맞춰 살아야 할 것 같은 강박. 하지만 정말 밥값을 해야만 할까? 때로는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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