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대형 수학학원에 등원 한 날, 차에서 내리는 아이들에게 도시락을 건네 주자 아이들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오늘 수업 두 시간 듣고 저녁 먹고 두 시간 더 있다 와야 한다고 말해주었다. 애들은 당황하며 눈알을 굴려댔다. 뭐라 대꾸할 틈도 없이 차 문을 닫고 출발했다. 일명 '일단 던져 넣기' 애들 어렸을 때 자주 쓰던 수법이다.
예민하고 까다로운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깨닫게 된 전략이랄까? 얘네들은 '이거 할래?' 물어도 '저기 갈래?' 하고 물어도 만날 싫다고만 했다. 여행을 가자고 해도 얘는 싫다고 하고 쟤는 좋단다. (아 어쩌라고?)
새롭고 낯선 것을 두려워하는 첫째와 주관이 뚜렷한 막내는 더더욱 그러했다. 보여주고 알려줄 것은 많은데 일단 거부부터 하는 아이들을 위해 고심 끝에 짜낸 방법이었다.
밤에 몰래 짐을 싸고 아침에 일어난 애들을 납치하듯 태운다. 행선지는 이때 통보된다. 어버버 하던 아이들이 '어디를 가는 거냐?', '나는 거기 싫다.' 성화를 부리기 시작하면 얼른 젤리 봉지 하나를 쥐어주고 TV를 튼다.(대형 SUV에 차량용 TV를 설치했다.) 주문에 걸린 듯 모니터에 빠져드는 아이들을 확인하고 남편과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는 아이들이 많이 커서 덜 하지만 의견이 분분한 딸 셋 육아에 아직도 유효한 방법이다. 우리 집에 민주주의 같은 건 없다. 애초에 애들 셋의 의견이 일치될 리 없다. 그럴 때 나는 조교에 가깝다. 아이들 의견을 묻기보다는 판을 잘 짜서 냅다 던져 보는 게 낫다. 대신 아주 심혈을 기울이는 까닭에 열에 여덟은 성공이었다.
예상대로 아이들은 도시락 먹는 재미가 있어서 견딜만했다고 했다. 다른 아이들은 빵이나 과자로 때우거나 아예 아무것도 안 싸 온 친구도 있었다며 도시락 챙겨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다. 출발이 좋았다.
처음 한 달은 도시락 두 개 싸는데 두 시간씩 걸렸다. 메뉴 고르기도 힘들었다. 식어도 맛있는 반찬에 먹기 편한 음식이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애들이 좋아하는 떡볶이도 식으면 굳고 파스타도 불어버린다. 아무리 정성을 들여도 방금 한 요리만큼 맛있는 도시락은 없었다.
3개월쯤 지나자 조금 지치기 시작했다. 밥하고 간식 챙기는 것도 만만치 않고 여기저기 학원 라이딩도 힘들었다. 발 동동 거리며 도시락 만들어 학원에 보내고 나면 지쳐서 한숨이 절로 나왔다. 유난히 힘들었던 날 하원시간에 맞춰 데리러 갔더니 아이가 반색을 하며 말했다.
"엄마 오늘 도시락 정말 맛있었어요. 이제는 도시락 열 때마다 오늘은 뭐가 들어있을까 설레요."
그동안의 피로가 씻겨 내려가는 거 같았다. 아이는 매일 태워주거나 학원비를 내주는 등의 수고보다 저를 위해 도시락을 싸주는 엄마의 마음을 훨씬 높게 쳐주었다. 아무도 자기들처럼 도시락을 싸 오지 않는다고 했다.
"정성 담긴 음식 먹고 스스로가 귀한 사람이라고 느꼈으면 좋겠어. 오늘 하루도 고생했어. 잘 먹어주고 고마워해주니 엄마가 더 고맙다."
다시 힘을 냈다. 의지가 생기니 아이디어가 절로 나왔다. 면만 삶고 파스타 소스는 따로 보온통에 담아주었더니 방금 한 것처럼 맛있었다고 했다. 떡볶이도 보온통으로 해결했다. 시원한 음식은 아이스팩을 활용하면 되었다. 과일도 종류별로 색별로 담아 쌌다. 요령이 생기니 30분이면 척척 완성되었다.
일 년이 지나 휴대폰 사진첩을 보니 그동안 쌌던 도시락 사진이 가득했다. 알록달록 담은 사랑을 되새기며 스스로 뿌듯해하고 있는데 막내가 다가와 말했다.
"엄마. 저도 나중에 언니들 다니는 학원 다닐래요. 도시락 먹고 싶어요."
'이게 웬 횡재?'
'공부라면 질색하는 막내도 저절로 학원에 다니고 싶게 만들어주는 도시락이라니!' 거 도시락 효과 한 번 대단하다.
영양 만점! 사랑 만점! 공부 만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