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들 하나에 딸 셋 키운다 했더니 남편이 자기는 딸 넷 키운다 했다. 나 참. 만날 먹이고 입혀줬는데도 자기가 나보다 어른인 줄 아나보다. (심지어 내가 한 살 많다.) 우리 집 경제를 책임지는 가장이라고 내가 얼마나 떠받들어주는지 모른다. 쓰레기 한 번 버리라고 시키기를 하나 애들 보라고 시키기를 하나 청소, 설거지 어느 하나 남편 손 안 닿게 한다. 그랬더니 나이를 거꾸로 먹는 모양이었다.
시어머니 말씀하시길 남편은 아끼는 옷은 직접 손빨래해 입을 정도로 깔끔했다고, 책상 한 번 치워준 적이 없다고 하셨다. 신혼 때는 딱히 거스를 게 없어 그런가 보다 했다. 쌍둥이 낳고 전투 육아 할 때부터 응? 지원사격만 겨우 한다 싶더니 막내 어린이집 들어간 이후로는 아예 손을 딱 놨다. 지금은 어머님이 기억하시는 그런 아들은 세상에 없다. 제 앞가림도 못하는 아들이 있을 뿐.(A/S신청되나요? 반품 안 되나요?)
주말에 남편을 두고 나갔다 들어와도 한눈에 남편 일과를 줄줄 읊을 수 있다.
일어나서 식탁에 있던 빵 하나 먹었구나. 인스턴트커피 한 잔 타 들고 와서 컴퓨터 좀 했나 보네? 다시 침대로 돌아와 최소 2시간은 잤을 거다. 일어나서 냄비뚜껑 한 번 열어보고 고깃덩이가 안 보이니 라면을 끓여 먹었을 거고. 입가심으로 아이스크림 하나 들고 컴퓨터 앞에 다시 앉았을 거다. 30분쯤 지나면 또 침대에 누웠겠지. 평화로운 집에 고로롱 고로롱 소리가 맑게 울렸을 거다.
남편 한 나절의 일과를 고작 빵 봉지, 커피 봉지, 라면 봉지, 아이스크림 봉지 따위로 간파할 수 있다는 게 통탄할 일이다. 헨젤과 그레텔이야 뭐야? 왜 자기 가는 길에 흔적을 남겨? 흔적 보고 찾아와서 등짝이라도 갈겨 달라는 건가?
암튼 오냐오냐 했더니 아기가 되어버린 내 사랑의 지위가 요즘은 위태로워졌다. 한 번은 막내가,
"엄마. 아빠 칭찬 좀 해주세요."
"왜?"
"엄마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아빠가 혼자 알아서 씻고 양치했어요. 이거 칭찬받을만한 일 아니에요?"
"......"
'이놈의 집구석 자알 돌아간다.'
오죽 아빠가 철 없이 굴면 샤워 한 번 했다고 막내가 쪼르르 달려와 아빠를 칭찬해 주란다. 막내의 발칙한 참견에 헛웃음이 터졌다.(40대 남성 칭찬받는 방법도 가지가지다.) 이 정도면 큰 아들도 아니고 막내아들 아닌가? 그래놓고 나더러 딸이라니 어이가 없다. 가끔가다 나를 보며 하는 말이,
"우리 큰 딸 나 못 만났으면 지금도 찔찔 울고 있겠지!"
"......"
남편 눈에는 내가 아직도 도서관에서 공부하다 지쳐 울던 20대로 보이나 보다.
스물네 살의 내가 도서관에서 스물세 살의 그를 처음 만났다. 철없던 때 만나 여리고 미숙한 채로 서로를 눈에 가득 담았었다. 갓 복학한 학부 2년생 그는 죽어도 나를 누나라고 부르지 않았다. 대학원 졸업반이었던 내 눈에 그런 남편이 엄청 귀여웠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그에게 나는 지켜야 하는 존재가 아니었을까?
서로 '너는 철이 있니 없니?' '내가 더 철이 있니 없니?' 하는 동안 20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팽팽했던 얼굴에 주름이 지고 몸에는 살이 늘어지고 머리에 새치도 잔뜩 났지만 마음은 처음 만났던 그때 그대로였다. 능글거리는 미소에서 앳된 이십 대의 그가 보여 나도 그만 수줍게 웃어버렸다.
제일 예뻤던 서로를 기억하면서,
서로 네가 더 철없다 탓하면서 이렇게 나이 들어가는 것도 괜찮다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