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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원 Nov 06. 2024

지능 검사가 필요할까?

청출어람의 소회

 막내가 어린이집에 다닐 때,  주변 카페에서 뜨개질 원데이 클래스가 열렸다. 2만 5천 원이면 원하는 음료 한 잔에 실 한 볼을 주고 뜨개질도 가르쳐준다는 거였다. 샘플로 보여준 여름용 네트백은 구멍이 숭숭 뚫려 시원해 보이고 사이즈도 딱 알맞아 보였다. 뜨개질은 한 번도 해본 적 없다고 했더니 사장님은 뜨는 걸 직접 보여주시며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원데이 클래스에서 완성한 첫 뜨개질 작품이다.


"바늘 이렇게 잡으시고 이렇게 실을 걸어 아래로 빼는 거예요. 그러면 고리 하나가 완성되는데 이게 사슬코 1 코예요. 같은 방식으로 사슬코를 30개 떠보세요."


 이런 식으로 모든 과정을 보여주시고 따라 하게 해 주셔서 실을 걸어 빼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나의 기억력이 붕어 수준이라는 거였다. 가방을 뜨려면 한 단을 마치 빼뜨기를  다음 기둥을 올려 그다음 단을 시작해야 하는데 나는 매번 빼뜨기를 잊었다. 사장님이 일하시며 나를 지켜보시다 조용히 오셔서 실을 풀어 바로잡아 주시고 가셨다. 두 번 세 번 까지는 괜찮았는데 계속 반복되자 등이 후끈 달아올랐다. 어찌어찌 가방 모양이 만들어져 가자 사장님이 얼른 오셔서 마무리하는 것을 도와주셨는데 딱 이런 느낌이었다.


아이들이 스스로 한 것처럼 뿌듯해하지만 실상은 엄마가 다 해준 만들기.


'처음이라 그럴 거야. 더 배우면 되지.'


  그림과 설명이 자세보이는 뜨개질 기초 책을  주문했다. 그런데 따라 하기가 쉽지 않았다. 특히 실과 바늘의 방향이 헷갈렸다. 안 되겠다 싶어 이번에는 유튜브를 검색했다. 처음 코 잡는 법부터 완성까지 자세히 설명해 주는 동영상들이 많았다. 제일 마음에 드는 채널을  골라 보면서 뜨개질을 따라 했다. 책보다는 이해가 훨씬 잘 되었다. 용기를 내어 가방을 떠보기로 했다. 실을 주문하고 원데이 클래스에서 배운 기억을 떠올려가며 사슬코를 떴다. 다음 기둥코를 올리고 한 단을 떠올렸다. 내 기억력은 딱 거기까지였다. 유튜브의 도움을 받아  중간에 영상을 멈춰가면서 열심히 따라 지만 얼마 안 가  막혔다. 는 독학이 안 되는 사람이라는 게 결론이었다.


  뜨개질 배울 곳을 물색했다. 배움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내가 참여하고 있는 독서모임에 친한 언니가 뜨개질 고수였던 거다. 곧바로 머리를 조아리고 사사를 요청했다. 그때부터 거의 매주 고수님께 뜨개질을 배웠다. 바늘은 바늘이고 구멍은 구멍인데 구멍 안에 바늘을 집어넣기가 왜 이리 어려운지. 구멍 숭숭한 네트백을 뜰 때는 몰랐는데 꼼꼼한 작업을 필요로 하는 뜨개질은 너무 어려웠다. 코에 제대로 바늘을 넣지 못해서 단마다 코가 늘거나 줄었다. 몇 번을 반복해도 알아듣지 못하는 나에게 고수님은 끝까지 친절했지만 나는 절망했다. 이 정도로 못 알아들으면 타고난 지능이나 인지 기능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뜨개질을 놓지 못한 것은 시간에 대한 강박 때문이었다. 셋째를 임신하고 전업주부가 되고 나서 마냥 편하지 않았다.  전업 주부들을 향한 날 선 표현들 이를테면 '맘충'이니 '집에서 놀아요'같은 말 매스컴에 등장했던 때였다. 혐오와 비하의 시선이 뜨악하기도 했지만 그 이유만은 아니었다. 고된 입시를 겪어냈다. 꿈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내 손으로 일하고 두 발로 바로 서는 사회인으로 살아가고 싶었다. 직 못다 한 일들이 많았는데, 엄마가 되었다는 이유로 사회적 성취나 인정에서 멀어진 다는 것이 너무 허무했다. 이대로 도태될 수는 없었다. 1분 1초도 허투루 쓰면 안 될 것 같았다.  열심히 육아 살림을 하고  남은 시간에 운동이나 자기 계발을 하지 않으면 불안했다.


 뜨개질은 그런 나의 불안을 다스려주는 효과가 있었다. 인간 단순반복노동에 기쁨을 느낀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 뜨개질에 집중하다 보면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몰랐다. 입의 즐거움은 엄청났 내가 들인 시간이 씨줄 날줄로 엮여 만들어지는 완성품들은 감격스러웠다.


  작 티 코스터 하나도 예뻤다. 가끔은 울퉁불퉁해지기도 하고 실이 풀린 부분도 있었지만 손으로 만든 물건은 그 자체로 멋스러웠다. 이렇게 생산적인 작업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뜨개질에 매료되었다.  수세미,  방석, 스카프 등으로 몸풀기를 한 다음가방에 다시 도전했다. 2주 넘게 낑낑대며 만든 내 가방 명품 부럽지 않게 멋졌다.


 뜨개질하는 엄마를 향한 아이들의 눈에 존경이 어렸다. 내가 뭐를 뜨던 늘 열정적인 찬사가 이어졌고 나는 뜨개질 장인이라도 된 듯 호사를 누렸다. 아이들은 내게 몇 번이나 뜨개질을 배우고 싶다고 했다. 나는 눈을 아래로 깔며 위엄 있는 목소리로 너희에게 아직 어려우니 좀 더 크면 가르쳐 주겠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둘째가 비장하게 말했다.


"어머니 뜨개질 배우고 싶어요. 가르쳐주실 수 있나요?" (얘는 이럴 때 꼭 극존칭을 쓴다.)

"좋아. 이번 주말에 가르쳐줄게."


 아이들은 신이 났고 나 우쭐했다.


 뜨개질을 가르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실을 거는 것도 어설펐고 코를 끼우는 것도 쉽지 않았다. 나는 여유를 가지고 가르쳐주었다. 아이들은 열심히 뜨더니 뜨개질 책을 사달라고 했다. 적당한 책을 찾아 사주자 둥이는 머리를 맞대로 차근차근 책을 었다. 기특하면서도 코웃음이 나왔다. '얘들아 그게 책 본다고 되는 게 아니란다.'


"참 얘들아 유튜브 강의도 도움이 될 거야. 중간에 멈출 수도 있어서 좋고."

"정말요? 와 좋다."


 아이들은 뜨개질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뜨개질 하고 싶어서 새벽에 일어나 해야 할 일을 모두 마쳤다. 매일 두세 시간씩 집중해 뜨개질을 하더니 어느새 제법 늘었다. 어느 날은 연습해 본 거라며 팝콘뜨기 한 것을 들고 왔다. 놀라움에 눈이 커졌다. '팝콘뜨기? 이게 된다고?'


짧은뜨기와 한길긴뜨기를 배우고 연습한 팝콘뜨기


 다음 날에는 파우치를 만들었다며 가져와서 자석 단추를 달아달라고 했다. '파우치라고? 어라? 이게 아닌데. 이렇게 쉽게 되는 게 아닌데..."


엄마도 못만들어본 파우치라니!


그럼 나는 역시... 그런 거였나?


노래 한 소절이 떠오는 날이다.


'나는 붕어. 꿈을 꾸는 붕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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