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는 배우는 것을 좋아한다. 무슨 수업이든 잘 듣는 편이었지만 나이가 드니 각자 흥미 있는 분야가 생겼다. 5학년이 되고 마침 교육청에서 주관하는 영재학급 모집에 원서를 내고 시험을 보았는데 둘 다 합격했다. 첫째는 코딩 수업, 둘째는 인문예술 분야였다. 요일도 시간도 다른 데다 각자 다른 초등학교로 가서 수업을 듣는 거라, 차를 태워주는 내 수고가 늘었지만 아이들이 재미있어하니 보람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관내 영재학급에 참여 중인 아이들 모두를 대상으로 하는 영재학급연합캠프가 열렸다. 9시에 가서 4시까지 진행되는 프로그램이었다. 마침 다른 학교에서 수업을 듣는 쌍둥이의 친한 친구도 신청한다고 했다. 셋은 함께할 수 있는 이벤트가 생겨 좋다며 설레며 기다렸다.
쌍둥이를 캠프에 내려주고 남편과 나는 막내와 호젓한 시간을 보냈다. 오전에는 여유 있게 쉬고 점심에는 나가서 칼국수를 사 먹었다. 날씨가 좋으니 그냥 집에 가기는 아쉬워 근교에 새로 생겼다는 카페에 들렀다. 정원이 잘 꾸며져 있는 카페였다. 예쁜 것을 좋아하는 막내는 카페가 마음에 든다며 내 사진을 여러 장 찍어 주었다. 커피랑 빵도 맛이 좋았다. 다 먹고 난 다음에도 카페를 뜨지 못하고 정원에서 숨바꼭질을 하며 놀았다. 편안하고 고운 가을날이었다.
카페에서 나와 집으로 가는 길 막내 손에 뭔가가 들려있기에 뭐냐고 물었다.
"언니들 주려고 식당에서 명함 챙겼어요." 식당 명함을 수집하는 언니들을 위해서 명함 두 장을 챙긴 거였다. 그 말을 들으니 쌍둥이가 몹시 보고 싶었다. 특별할 것 없었던 칼국수도 다섯이 먹었으면 더 맛있었을 것 같았다. 정원이 아름답고 빈티지 인테리어가 멋졌던 카페를 보여주지 못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맛있는 빵이라도 산 것이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집에 돌아와 나와 막내는 쉬고 아빠는 쌍둥이를 데리러 갔다 왔다. 쌍둥이는 오자마자 엄마가 신청서를 빨리 접수해 줘서 1번이었다며, 셋이 같이 원하는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고 좋아했다. 실험이 어땠고 친구들이 어땠다며 재잘재잘 이야기를 쏟았다.
"재미있었나 보네. 다행이다. 오늘 카페에 갔는데 정말 좋았어. 빵도 맛있고 카페도 예뻐서 같이 못 간 게 아쉽더라. 다음에 꼭 같이 가보자." 했더니
"엄마! 아빠도 오면서 토씨하나 안 틀리고 엄마랑 같은 말 하셨어요." 한다. 남편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나 보다.
엄마와 언니들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막내의 눈은 언니들 손에 들린 것만 보고 있었다. 샌드위치와 음료 같았다.
"언니야. 그거 뭐야? 그거 나 주면 나도 이 명함 줄게."
평소라면 대수롭지 않게 교환했을 텐데 둥이의 대답이 날카로웠다.
"필요 없어. 너나 가져. 그리고 이건 언니들 간식이야. 배고파서 다 먹을 거라 너 줄 것은 없어."
하루종일 수업을 들어서 힘들고 배고픈 마음은 이해가 가지만 언니들 생각에 명함까지 챙겨 온 막내의 마음도 모른 척할 수 없어 중재를 했다.
"곧 밥 먹을 시간이잖아. 너희가 받아온 간식 진짜 먹음직스럽다. 엄마 아빠도 나눠주면 안 될까? 나눠먹고 나서 밥 먹자."
예상 밖의 대답이 튀어나왔다.
"이거 제가 아침부터 지금까지 열심히 수업 듣고 실험해서 받아온 거잖아요. 이걸 왜 제가 나눠줘야 하죠?"
식당 명함을 협상하듯 교환하자고 요구한 막내의 태도에 마음이 상한 듯했다. 본인들 고생할 동안 막내는 엄마 아빠랑 카페 가서 신나게 놀았다고 생각하니 고까운 마음이 들었나 보다.
"엄마 아빠가 진짜 먹고 싶어서 나눠 먹자고 했겠니? 나눠주기 싫으면 나눠주지 않아도 돼. 혼자 다 먹지도 못할 양을 욕심부리며 지켜서 너희 들이 잃은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하고 뒤돌아서서 저녁준비를 마저 하려는데 막내가 울음을 터뜨렸다. 얻어먹기는 글렀다는 판단에 언니들 명함까지 괜히 챙겼다는 억울함마저 들었으리라. 둥이는 아랑곳 않고 음료에 빨대를 꽂았다. 순간 괘씸한 마음이 들어 뒤돌아 말했다.
"오늘 너희들 고생한 것은 사실이야. 그런데 이 캠프 엄마가 억지로 보냈니? 너희들이 캠프에 가고 싶다고 해서 엄마가 새로고침 눌러가면서 재빠르게 신청했고 아빠도 기쁜 마음으로 태워주셨지. 지금까지 너희가 이룬 것들이 온전히 너희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한다면 틀렸어. 대단한 착각이야."
아이들은 눈물을 흘리며 샌드위치와 음료를 내려놓았지만 막내를 향한 원망의 눈빛을 지우지는 못했다. 그것까지 바랄 수는 없었다. 아직 성장 중인 너무나도 작은 아이들 아닌가?
할 말을 마치고 뒤돌아 저녁준비를 시작했지만 후련하지는 않았다. 내게도 나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신 부모님의 사랑을 헤아리지 못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다고 때가 되면 알게 되겠지 하고 넘길 수는 없었다. 누군가의 이해와 배려 없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는 관계는 없다는 것. 한정된 재화를 나눠 써야 하는 가족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태도를 부모가 아니면 누가 가르쳐주겠는가.
내일은 아이들과 함께 겸손과 감사에 대해 생각해보는 하루를 보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