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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원 Nov 27. 2024

크라고 할 때는 안 크고

애는 해맑고 엄마 속은 꺼멓게 탄다

 어제까지 따뜻하더니 아침에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졌다. 급하게 옷장을 뒤져 지난겨울에 입던 점퍼를 꺼내 아이들에게 입혀보았다. 한눈에 보아도 첫째 소매가 짧아져 작다 싶은데,


"엄마. 옷 저한테 작은 거 아니에요?" 한다.

"아니야. 소매가 조금 짧긴 한데 괜찮아. 딱 입을 수 있는 정도야."하고 재빨리 입을 막고 등 떠밀어 학교에 보냈다. 다른 아이라면 질색할 상황이었지만 우리 첫째는 갸우뚱 한 번 하고는 바로 납득한 눈치다.  아직도 바지를 거꾸로 입고 양말 짝이 안 맞아도 한 번 신었으면 그냥 나가는 아이다. (믿기 어렵겠지만 초등학교 5학년이다.)


 애는 보냈지만 아차 싶어 얼른 쇼핑몰 어플을 켰다. 초겨울에 입을만한 점퍼를 검색했다. 아니 왜 싼 옷은 눈에 안 차고, 괜찮다 싶은 것은 비싸고, 이것저것 따져 적합하다 싶으면 사이즈 재고가 없냐 말이다. 보통 쌍둥이 것 두 개에 막내 것까지 세 개를 구매하는 때가 많은데 고르고 골라 장바구니에 담을 때 재고 없음 알람이 뜨면 분노가 폭발한다.


  딱히 마땅한 을 찾지 못해 어플을 닫고 잠시 다른 일을 하다 깜박하고 말았다. 오후에 집에 온 첫째는 무슨 기분 좋은 일이 있는지 헤벌쭉 웃으며 우스갯소리를 해댔다. 옷이 작아 불편한 점은 없었는지 옷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 옷에 관심이 없고 무던한 것이 이럴 때는 참 편하다.


  이번에는 내 잘못이니 어쩔 수 없지만  평소에도 아이가  옷차림에 관심이 없어 신경이 쓰인다. 일단 내가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안 불편하냐는 거였다. 옷을 잘 못 입고 가서 불편하면 개선을 할 텐데 우리 첫째는 반응이 없었다. 바지를 거꾸로 입고 간 날도 주머니 위치가 바뀌었을 텐데 상관없다고 했다. 양말을 짝짝이로 신고 간 날도 아무도 못 알아봤다며 아무렇지 않아 했다. (못 알아봤을 리가 없잖아.) 더 어렸을 때 겨울 내복을 두 벌 껴입고 갔을 때도 집에 와서야 두벌 껴입은 것을 알아채고 어쩐지 바지가 잘 안 내려가더라고 했다.


 다른 이유도 있다.  사춘기에 접어든 가뜩이나 내성적인 아이가 친구들 사이에 놀림을 받을까 걱정이 되었다. 학교 다닐 때 사소한 트집으로 따돌림을 당하는 친구들을 무수히 보아왔다. 씩씩한 친구들이야 실수를 하고 놀림을 받아도 웃고 그만이지만 우리 아이는 같이 웃어줄 단짝 친구가 없다. 흰 양말 검정 양말을 왼쪽 오른쪽에 신고 등교하는 우리 아이를  바라보는 친구들의 시선을 상상하니 아찔해졌다.


 엄마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는 간식을 먹 엄마 사랑해요를 백번쯤 외치고 나서야  피아노 학원에 간다고 집을 나섰다. 배웅해 주려고 나가는 아이 모습을 보니  아침보다 소매가 더 짧아 보였다. 애가 그새 더 컸나?


'아니 크라고 할 때는 안 크고 갑자기 크기라도 한 거야 뭐야?'하고 다시 보니 한참 이상하다. 엘리베이터에 타려는 애를 낚아채듯 잡아 점퍼 뒤를 올려 확인하니, 사이즈 130. 동생 옷을 입고 나온 거다. 순간 열이 오르며 고성이 튀어나왔다.


"아니. 너는 145짜리 네 옷도 작아서 못 입게 생겼는데 어쩌자고 130을 입고 나온 거야. 불편하지도 않아? 이상한 거 못 느꼈어?"


아이가 팔목을 접어보더니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아. 어쩐지 손목이 시리더라고요."


'너는 손목이 시리냐? 엄마는 심장이 시리다.'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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