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 요리사 팀을 향해 외치다.
막내가 유치원 때 뜬금없이 요리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때쯤 우리 가족은 주말에 카페 나들이를 자주 했다. 규모가 좀 크거나 정원이 있는 베이커리 카페에 주로 갔다. 나와 남편은 커피를 마시고 아이들은 파이나 케이크를 먹고 카페 정원에서 뛰어노는 것이 주말 힐링코스였다. 막내는 아마 달콤한 디저트에 매료되었던 것 같다. 유니폼을 입고 멋진 모자를 쓰고 바쁜 손놀림으로 엄청나게 달고 예쁜 것을 만들어 내는 사람. BTS보다 멋져 보였을 게 틀림없다. 뭔가가 되고 싶다는 게 기특해서 응원을 해줬던 기억이 있다. 그 뒤로 3년째 변함없이 막내의 꿈은 요리사다.
생각해 보니 자극추구형 아이인 막내에게 요리는 오감을 자극하는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았다. 여러 가지 맛이 있고, 재료마다 특색이 있고, 꽤 복잡한 프로세스를 거쳐 요리가 완성되면 성취감을 느끼기에도 좋았다.
처음엔 내가 만들 요리를 정하고 재료 준비도 다 하고, 완성품에 토핑 하나 얹는 정도의 요리를 함께 했다. 이름도 엄마표 쿠킹클래스라고 지었다. 아이들이 할 만한 요리가 생각보다 다양했다. 샌드위치, 주먹밥, 카나페 같은 요리는 불이나 칼을 안 써도 되어서 좋았다. 피자나 스파게티는 오븐으로 돌려주기만 하니 또 손쉽다. 여름에는 요거트에 냉동과일이나 견과류 토핑을 얹게 해 주거나 우유와 함께 갈아 아이스크림처럼 먹게 해 주었다. 이런저런 재료를 사용해 요리를 만들어보더니 막내는 요리에 자신이 붙었나 보았다. 엄마 도움 없이 언니들 없이도 혼자서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내가 시식을 해야 한다는 거다. 그리고 요즘 횟수도 잦아졌다.
"엄마 요리해도 돼요?' 하고 물으면 등에 땀이 난다. 일단 대략의 계획을 듣고 재료를 확인한다. 필요한 재료가 있으면 5분 거리 슈퍼에 혼자 뛰어가서 재료를 사 온다. 요리 과정에 불이나 칼을 쓰지 않는 선에서 혼자 만들게 둔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면 정성껏 플레이팅 한 요리(?)가 내 눈앞에 놓인다.
본능적으로
"괜찮아. 엄마 배불러." 하는 말이 튀어나왔다.
요리 꿈나무를 응원하는 마음과 시식을 거부하는 내 마음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격렬하다.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이 없지만 어쩌랴. 진짜 먹기 싫은 것을. 막내는 굴하지 않고 재차 요구한다. 끈기는 역시 나를 닮았다.
"엄마. 배 부르지 않게 딱 한 입만 먹으면 돼요."
핑계를 차단하는 칼대답이 돌아왔다. 별 수 없이 젓가락을 받아 들고 정체 모를 것을 집어 앞니 끝으로 가져온다. 간신히 이 사이에 끼우고 종잇장처럼 얇게 베어문다. 이번에는 부디 모성애가 압도하기를.
"음. 맛있다. 우리 막내 역시 요리사 자격 있네!"
해냈다. 하지만 나는 앞으로도 이 고난에 맞서야 하며 어떠한 경우에도 웃음을 잃지 않아야 한다. 마음속에 강렬한 외침이 들려온다.
'흑백 요리사 방송을 멈춰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