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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nny Jun 09. 2020

전쟁의 역사와 전쟁 원칙의 현대적 효용성

고대 알렉산더의 아르벨라 전투에서 현대 걸프전까지

프롤로그

     

전쟁의 형태와 도구는 인류 문명의 발달에 따라 계속 변해 왔고 앞으로도 변할 것이다. 전쟁 양상은 안개처럼 무수한 가변 요소를 갖고 있다. 따라서 전쟁 원칙을 제시하는 것은 자연과학에서 불변의 법칙을 발견하는 것과 달리 매우 어려운 일이다. 여러 가지 전쟁 원칙이 제시돼 왔지만 이론적 측면에서 시대·국가·사상가에 따라 그 내용에 차이가 있다. 실제 전장환경에 따라 제시된 전쟁 원칙들은 서로 보완 또는 상충되고, 때론 서로 조합을 이뤄 적용되기도 한다. 동일한 전쟁 원칙도 각종 전장 환경에 따라 상이한 강도와 중요성을 갖는다.


현대전의 복잡성과 다양성은 전쟁 원칙을 새로운 각도에서 검토할 것을 요구한다. 전쟁 원칙이 과연 핵전쟁과 비정규전 상황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는가의 문제다. 이런 의문점에도 불구하고, 전략가 자신들이 먼저 위험을 평가하고 비용을 산정하지 않고는 전쟁 원칙을 고의로 위반하는 법이 없었다. 이 척도를 역사의 어느 분쟁이나 국제적 긴장의 시기에 대해 적용하더라도 전쟁 원칙은 공리주의적이고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대체로 승자들은 전쟁 원칙을 조심스럽게 다루었지만, 패자들은 인력 및 물질의 중압에 눌린 자들을 제외하곤 대체로 전쟁원칙의 적용을 소홀히 했다고 한다.


전략사상가들과 특정 국가에서 내세운 전쟁 원칙은 어떤 것이 있는가? 전쟁의 역사에서 전쟁 원칙은 어떻게 적용되었는가? 이에 대한 분석을 통해 그 효용성을 검토해 보자.


     

전쟁 원칙과 그 역할     


전략사상가들이 주장하는 전쟁 원칙, 그리고 특정 국가들이 강조하는 전쟁의 원칙은 어떤 것이 있을까? 손자는 목표, 공격, 집중, 기동, 기습 및 협동의 원칙을 강조했다. 나폴레옹은 목표, 공격, 집중, 기동, 기습 및 경계의 원칙, 클라우제비츠는 목표, 공격, 집중, 병력 절약 및 기동을 전쟁원칙으로 제시했다. 타운쉔트는 목표, 병력 절약, 집중, 공격, 방향 및 경계의 원칙, 퓰러는 방향, 공격, 기습, 분산, 경계, 기동, 인내 및 결단의 원칙을 각각 전쟁의 원칙이라고 주장했다.


국가별 전쟁의 원칙을 열거해 보면, 미국은 목표, 공세, 집중, 군사력 절약, 기동, 지휘권 단일화, 경계, 간명의 전쟁 원칙을 갖고 있다. 영국은 목표 선택 유지, 사기, 공세, 기습, 군사력 집중, 노력의 절약, 경계, 융통성, 협력, 행정의 원칙, 프랑스는 행동의 자유, 노력의 집중, 기습의 원칙을 주장한다. 러시아는 전진 및 보강, 제병 연합, 공세, 기동 및 주도성, 집중, 군사력 절약, 기습 및 기만, 적절한 예비, 사기, 섬멸의 원칙을 강조한다. 중국은 목표, 군사력 집중, 공세, 융통성, 행동의 자유, 경제, 협조, 기동성, 국가 동원의 원칙, 이스라엘은 목표, 군사력 소진, 주동성 및 공세, 책략, 노력의 집중, 종심 및 예비, 경계, 사기, 행정의 원칙, 일본은 목표, 주도, 집중, 경계, 통일, 기동, 기습, 보전, 간명의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


각 전략 사상가들이 제시한 전쟁 원칙은 수정 보완되었지만, 사소한 변경 외 그 골격은 유지되어 왔다. 각 국가들이 내세우고 있는 전쟁 원칙도 지리·전략적 조건, 국민적 성향, 문화적 가치, 역사적 경험의 차이가 열거된 원칙들의 우선순위 설정에 반영되고 있다. 이것은 동류 개념의 자국 중심적 변형이란 시각으로 볼 수 있다. 유영옥, 이선호가 쓴 [국제 안보 환경과 국가·군사전략]에 나오는 다음 글은 전쟁의 원칙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잘 설명해 준다.

     

첫째, 고도로 불확실하고 역설적인 전장 환경에서 확실성을 추구하기 위해 어떤 공언(Maxims)이  필요하다. 이 공언의 슬로건은 불확실성이 큰 오리무중의 전쟁 현실세계에서 단순하고 논리적인 행동 규범을 제공하는 데 필수적인 사회적 역할을 한다.
둘째, 최고의 궁극적 원칙으로서 규범적인 과학적 증명을 한다. 과학적 법칙으로서 전쟁원칙에 대한 인식은 만유인력의 법칙을 자연과학의 최고 법칙으로 추구하는 것처럼, 전쟁에 대한 다른 어떤 공언이 전쟁 원칙을 앞설 수 없게 만든다.
셋째, 군사 개념에 대한 점검표로써 조직적 필요를 위한 하향식 확산 수단의 역할을 한다. 이것은 공세, 경계처럼 짧고 단순한 개념으로 매우 복합적 상황에 대한 빠른 이해와 의사소통을 가능케 함으로써 전쟁 원칙을 최고로 단순하게 설명할 수 있다. 특히 현대 군대가 기술과 기능적 용어에 크게 의존함에 따라서 복잡한 기술체계의 완전 무결한 운용방법을 알지 못해도 그 통제 원칙과 간단한 용어만 구사할 줄 알면 그것의 운용에 크게 기여하게 된다.


          

전쟁 원칙이 적용된 전쟁 사례     


전쟁의 제 원칙이 실전에 적용되어 승리에 기여한 사례를 고대 전투로부터 걸프전까지 시대별로 분석해 보자. 당시 상황에 따라 이론으로써의 전쟁 원칙이 실제의 전쟁 결과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당대의 전술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

     

고대의 전쟁: 알렉산더 대왕의 아르벨라 전투

기원전 331년 아르벨라 전투 시, 알렉산더는 페르시아 군대가 자기 군대의 양측방을 포위할 것을 알면서도 전열을 연장시키는 대신 전투력의 집중과 적을 각개 격파할 수 있는 속도와 용기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좌측방과 중앙은 서서히 전진하게 하고, 우측방에서 적에게 결정적 타격을 가하게 했다. 또 좌우 양측방의 뒤에 경기병과 경보병을 각각 1개 전열씩 배치해서 어느 방향으로든 신속하게 전진할 수 있도록 했다. 알렉산더는 이런 방식으로 그의 양측방이 페르시아 군대의 긴 전열에 포위되지 않도록 방지했다. 이것은 경계의 원칙과 병력 절약의 원칙을 적용한 것이며, 현대 군사학적 의미의 예비대를 사용한 최초의 전쟁 사례다.


알렉산더가 우측으로 공격 기동을 하자, 페르시아 군대의 좌측방 일부가 동시에 밀려들어갔고, 알렉산더는 페르시아 군의 전열 중앙에 양익간 간격을 만들었다. 페르시아 군의 양익은 알렉산더 군의 양측익을 포위하려고 몰려들어 왔지만, 이에 대처할 목적으로 미리 배치했던 경보병에 의해 격퇴당했다. 알렉산더는 페르시아의 중앙에 공백이 생긴 것을 알아차리고, 즉시 우익에 있는 마케도니아군의 방진으로 거대한 돌파 부대를 편성하여 마케도니아 기병을 선두로 적 전열의 돌파구에 돌진시켰다. 그의 공격은 압도적이었으며 페르시아 군은 분열되고 말았다. 여기서는 단순하지만 미리 구상했던 계획을 실현하는 과정의 관찰을 통해서 목표·공세·집중·기동의 원칙이 잘 적용되었다. 그리고 예상치 못했던 이점이 생기자 이것을 즉각 신축성 있게 잘 이용했다.     


나폴레옹 전쟁: 울름 전투

나폴레옹은 섬멸전을 성공시키기 위해 공식처럼 5가지 작전 원칙을 적용했다. 첫째, 단일 작전선의 원칙이다. 병력의 주력을 결정적 지점인 하나의 방향에 집중하는 것이다. 둘째, 적의 주력을 공격 목표로 삼는 원칙이다. 셋째, 주력을 적의 한 측면, 가능하면 적의 후방에 위치시켜 적의 병참선을 차단할 수 있는 방법으로 작전선을 선정한다는 원칙이다. 넷째, 우회의 원칙이다. 다섯째, 위의 제 원칙을 수행해 나가는 과정에서 항상 아군의 병참선을 확보하고 작전을 수행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울름 전투는 이러한 나폴레옹의 전쟁 원칙이 적용된 전투다.


울름 전역에서 프랑스군은 20만의 병력이 하루에 평균 20Km씩 행군을 계속하여 800Km의 유럽 대륙을 횡단할 정도의 우수한 기동력으로 마크 군의 배후로 진격했다. 110Km가 넘는 광정면에서 라인강을 도하한 후, 그 정면을 95Km로 급속히 축소시키고, 적과 교전이 임박해지자 정면을 45Km로 축소시키고 군대를 집결했다. 여기 집결한 부대는 이탈리아 북부에 있는 5만 명의 마세나 군을 제외한 전체 군대였다. 이 집결은 마세나로 하여금 숫적으로 3배에 달하는 오스트리아군의 주력을 견제하게 하는 병력 절약으로 가능했다. 나폴레옹 군은 결정적 시간과 장소에서 압도적으로 우세한 병력을 확보해서 실제 병력이 적보다 열세한 경우에도 항상 병력의 우세를 달성할 수 있었다. 오스트리아군과 러시아군의 총병력이 숫적으로 적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나폴레옹은 그의 주력으로 오스트리아군과 러시아군이 합세하기 전에 그들을 격파했다. 마크 군을 격파할 때도 적의 전략적 기동을 차단하는 간단한 기동으로 목적을 달성했고, 이 전투는 전략적 우회 기동의 대표적 사례가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후띠에르 전술

독일 후띠에르 장군이 창안해서 리가와 까포레또 전투에서 성공을 거두게 한 것이 바로 후띠에르 전술이다.

첫째, 서부전선의 연합군 대공세처럼 수일간에 걸친 포격 대신 단기간 강열한 준비 포격으로 기습을 대신하며, 경우에 따라 최후의 순간이나 야간에 공격함으로써 기습을 성취할 수도 있다.

둘째, 공격하는 보병부대 바로 앞에 계속 탄막을 형성하고, 보병은 전방으로 이동하는 탄막 바로 뒤에서 전진하며, 이 탄막은 보병의 전진속도에 따라 거리를 증가시킨다. 그리고 경포대는 보병을 따라 전진하면서 직접 지원한다.

셋째, 경기관총을 주 무기로 하는 소규모 보병 전투단은 취약지점에 침투하며, 견고한 진지는 우회하고 후에 지원부대가 이를 소탕한다.

이 전술은 전쟁 원칙 중에서 기습·집중·협동·절약 원칙을 적용한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전격전(Blitzkrieg)

제2차 세계대전에서 무적 독일 국방군(Wehrmacht)의 신화가 창조되게 만든 전격전 이론은 기습, 속도, 화력의 우위라는 세 가지 요소를 갖춘 것이며 그 수행과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적의 후방에서 오열 활동을 전개하여 정보를 수집하고, 민심을 교란하여 적 국민의 싸우려는 의지를 약화시킨다.

둘째, 공군은 기습적 일격으로 적의 공군력을 분쇄해서 제공권을 장악하고, 적 후방의 도시·부대 집결지·지휘소·통신시설·교통시설 등을 폭격하여 지휘 조직과 예비병력 동원체제를 마비시키고, 도시에 심리적 충격을 가한다.

셋째, 전차, 자주포, 차량화된 보병·공병 및 병참 지원부대가 하나의 팀을 이뤄 방어가 약한 적 전선의 좁은 정면으로 기습 집중 공격해서 돌파구를 형성한다. 돌파 담당은 보병이며 돌파 부대 최첨단에는 보병이 위치한다.

넷째, 기갑부대가 이 돌파구로 신속하게 깊이 침투해서 적의 주력을 차단·포위함으로 적이 재편성할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는다. 이때 포병부대가 신속히 전진하는 기갑부대를 따라가지 못하면 급강하 폭격기가 화력 증원을 담당한다.

다섯째, 포병 지원을 받는 보병이 기갑부대에 접속 전진해서 차단·포위된 적을 소탕한다.

이와 같은 전격전에는 전쟁 원칙 중 기습·기동·집중·제병 협동·융통성·사기·공세의 원칙이 포함되어 있다.     


월남전

월남전은 미국이 전술적으로 승리했지만 전략적으로 패배했다고 평가받는 전쟁이다. 이 전쟁에서 전쟁 원칙을 어떻게 적용해서 이런 결과를 초래했는지 전쟁 원칙별로 구분해서 생각해보자.

첫째, 목표의 원칙 면에서 미군은 전쟁의 목표를 혼동해서 전쟁에 실패하였다.

둘째, 공세의 원칙 면에서 미군이 전략적 방어를 했지만 전략적 방어와 전략적 공세의 차이를 잘못 인식했다. 방어를 통한 공세 이전의 호기가 조성되었을 경우에도 전술적 공세에 그치고 말았다.

셋째, 집중·절약·기동의 원칙 면에서 미국은 월맹보다 이 원칙을 사용하는 기술적 능력이 월등했다. 하지만 목표의 원칙, 공세의 원칙과 마찬가지로 이 원칙을 전략적 측면보다 전술적 측면에서 사용해서, 제반 원칙을 전략적으로 적용하여 얻을 수 있는 이점을 상실했다.

넷째, 경계 및 기습의 원칙 면에서 1965년 미 지상군 개입과 1972년 크리스마스 폭격에서 미군이 전략적 기습을 달성하였다. 그 이유는 미국 내 여론과 의회에서 흘러나온 정보를 월맹 측이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전쟁의 원칙이 철칙이 아닌 판단 기준을 제공할 뿐이라는 것을 입증해 준다.

다섯째, 간명의 원칙 면에서 월맹은 이 원칙을 목표의 원칙에 적용시켜 월남 정복이라는 단일 목표에 온 힘을 집중하였다. 반면 미국은 외부 침략 저지와 내부 대게릴라전이라는 상반되고 모순된 두 개의 목표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로 인하여 미군이 월남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간단명료하게 자국 국민들에게 설명하지 못했고, 격국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받을 수 없었다.

     

걸프전

앨빈 토플러는 걸프전을 제3물결 전쟁으로 비유하고, 이전쟁의 특징을 파괴 요소, 무형가치, 탈 대량화, 노동, 혁신, 규모, 조직, 시스템 통합, 기간시설, 가속화로 구분하여 그 특징을 설명했다.


파괴 요소. 지식의 중요성은 무기나 전술에 필적해서 지휘·통제수단의 파괴와 와해를 통해 적을 굴복시킬 수 있다는 생각에 신뢰성을 부여하고 있다. 전쟁에서 지식 요소가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한 가지 지표는 컴퓨터화다. 걸프전 시 페르시아만 상공에는 가장 강력한 정보무기 AWACS와 J-STARS가 떠서 적의 항공기나 미사일을 탐지하여 요격기와 지상부대에 표적 데이터를 보내거나, 적의 후속 지상부대들의 탐지·와해·파괴를 지원했다.


무형가치. 주도권 장악, 정보통신의 개선, 군사훈련의 개선과 동기부여의 강화 등은 단순한 병력의 수보다 중요하다. 장차의 군사적 균형은 무형의 계량화하기 힘든 요소들에 의해 좌우하게 될 것이다.


탈 대량화. F-117기 한 대가 단 1회 출격하여 폭탄 한 개를 투하하는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중 B-17 폭격기가 4천5백 회 출격해서 폭탄 9천 개, 또는 베트남전 기간 중 95회 출격하여 폭탄 190개를 투하했을 때와 동일한 성과를 올릴 수 있다.


노동. 직접 노동 대 간접 노동의 비율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미국은 걸프전에 50만 명의 군대를 파견했고 그밖에 병참지원 목적의 지원부대도 20-30만 명이 있었다. 그러나 전쟁에 이긴 것은 불과 2천 명의 군인들에 의해서였다.


혁신. 걸프전에서 군대와 민간인 모두 높은 수준의 자발성을 보여 주었다. 1991년 2월 24일 사우디아라비아 국경선 돌파를 앞둔 미군에게 온갖 정보를 제공해 준 컴퓨터 관련 네트워크는 불과 6개월 전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할 당시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통신·컴퓨터 장비의 도착이 늦으리라는 것을 알고 현장에서 기술자들이 군과 민간의 정보 웨어들을 변칙적으로 사용하여 네트워크를 꾸며 낸 것이었다.


규모. 화력은 크고 취급 병력은 줄어드는 무기체계로 나아가고 있는 추세다. 지금은 컴퓨터 관련 기술을 갖춘 소수 인원이 지난날 완력 기계를 다루던 다수 인원이 하던 것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조직. 미 공군 참모총장 라이스(Donald Rice)는 조직 개편을 발표하면서 핵무기에 대한 강조가 축소되고 유연 반응의 필요성이 증대한 것은 현지 지휘관의 자율성을 제고할 새로운 구조를 지향하는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전직 공군 장성으로서 장기계획을 담당했던 스미스(Perry Smith)는 말했다. “펜타곤의 지휘력·통제력과 통신시설이 확대되어 전 세계의 미군부대들에게 즉각 접근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앞으로 모든 전쟁은 펜타곤 자체에 의해 통제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그러나 걸프전에서는 그 정반대의 일이 일어났다. 중앙 사령부는 야전 지휘관들을 지원했을 뿐 사사건건 관리하지는 않았다.” 즉 제3물결 군대에서는 의사결정 권한이 최대한 낮은 수준으로 옮겨가고 있다.


시스템 통합. 군의 복잡성이 커짐에 따라 통합이라는 용어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걸프지역의 공중전에서는 영공 관리자들이 다국적군 항공기들이 서로 방해되지 않도록 확인해야만 했다. 그들은 이 일을 위해 매일 항공 과제부여 명령(Air Tasking Order)에 따라 수천 회의 출격 순서를 계획했다. 이 비행들은 고속으로 9만 3,600마일에 걸쳐 있는 122개의 공중 연료 재보급 노선, 660개 제한 작전구역, 312개 미사일 사용 구역, 78개 공습 회랑, 92개 전투 공중 초계 거점, 36개의 훈련 전용 공역을 비켜 가야만 했다. 더구나 이 모든 일은 계속 달라지는 6개 국가의 민간 항공로와 완벽하게 조정되어야 했다. 군대가 이런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컴퓨터·데이터베이스와 인공위성 덕분일 뿐 아니라 이것들이 체계적으로 통합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간시설. 제3물결 군대는 방대한 전자적 기간 시설을 필요로 한다. 이것 없이는 시스템 통합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 때문에 걸프전에서는 군대 역사상 최대의 통신 동원이 이루어졌다. 걸프 지역에 새로 구축된 네트워크들은 118개 이동식 위성통신 지구국과 12개 민간 위성 터미널에 의존하여 329개 음성회선과 30개 메시지 회선을 갖춘 약 81개 교환기를 사용했다. 미국 내의 수많은 데이터 베이스와 네트워크들을 이 전쟁지역의 시설들과 연결시키기 위해 매우 복잡한 연결 조직이 이루어졌다. 이것들은 매일 70만 건의 전화통화와 15만 2천 건의 메시지를 취급했으며 3만 개의 주파수를 사용했다. 공중전에서만 약 3천만 건의 전화통화가 있었다. 이런 신경계통이 없었으면 전쟁 노력의 체계적 통합은 불가능했을 것이며, 다국적군의 사상자도 크게 늘어났을 것이다.


가속화. 사담 후세인의 주방어선 서쪽 끝을 우회하여 진격한 슈와츠코프 장군의 작전은 우회 전법의 고전적 응용이었다. 고전과 달랐던 것은 그 우회 진격의 속도였다. 이것은 양측의 어느 누구도 다국적군 지상군이 그처럼 역사적인 속도로 진격할 수 있으리라고 상상 못 했을 것이다. 이 같은 전쟁의 속도의 증가를 촉진시킨 것이 컴퓨터와 전기통신 그리고 인공위성이었다.          



에필로그

     

전쟁 사례에서 나타나듯 전쟁 원칙은 전체적 전쟁 양상에 걸쳐 적용되고 있지만 이 원칙은 상호보완 또는 상호 연계되고 있다. 다른 원칙을 무시하고 어떤 하나의 원칙만 맹목적으로 고집하거나 준수할 수는 없다. 그 이유는 하나 혹은 그 이상의 다른 전쟁 원칙으로 보완되지 않으면 전쟁에서 승리를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쟁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역사적으로 각 국가의 군대는 이 전쟁 원칙들의 결합으로 도출된 개념으로 작전을 실시했다.


전쟁원칙의 가장 일반적인 적용은 전장에서의 작전개념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전쟁 원칙들은 판단 및 분석을 위한 하나의 보조수단으로써 군사 판단과 결심 과정에 통합될 수 있다. 예를 들면, 목표의 원칙과 지휘통일의 원칙은 전략적, 전술적 차원에서 임무분석을 보조해 준다. 이것은 노력의 목적과 방향을 결정하는 보조수단이 된다. 간명의 원칙은 과업 설정을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고 방책을 비교하는 척도로도 사용할 수도 있다. 공세·집중·절약·기동·경계·기습의 원칙은 방책 수립과 상황 분석을 용이하게 해 준다.


하지만 이 전쟁 원칙들은 철칙이 아니다. 각종 각양의 상황에 적합하도록 지속적으로 수정 보완되어야 한다. 걸프전을 통한 제3물결 전쟁의 경험은 새로운 원칙에 대한 연구를 요구하고 있다. 지금은 4세대 전쟁까지 거론되고 있다. 전쟁의 원칙에 대한 기본적 이해를 바탕으로 어떻게 이를 실전에 적용할 것인지 계속 고민해야 한다.


이 글은 작가가 2000년에 작성하였고, 2020년에 부분적으로 수정 보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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