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원칙 중 '목표의 원칙'을 지키지 않은 맥아더의 실수로 擴戰되었다.
전쟁의 원칙은 전쟁을 수행하는 데 지배적인 기본 원리다. 수많은 전쟁을 통해 얻은 최선의 공약수이자 귀납적 결론이다. 전쟁 원칙은 지휘권 행사와 군사 작전 성공에 매우 중요하다. 여러 가지 전쟁의 원칙은 상호 밀접히 연결돼 있고 상황에 따라 상호 보완되거나 상충되기도 한다. 어떤 하나의 특정한 전쟁 원칙의 적용 정도는 상황 의존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전쟁의 원칙 중에 가장 기본적이고 지배적인 것이 목표의 원칙이다. 6.25 전쟁에서 유엔군의 북진 작전 사례에서 목표의 원칙을 어떻게 적용했고, 그 결과는 어땠는지 살펴보자.
* 전쟁의 원칙에는 목표, 공세, 정보, 지휘 통제, 기동, 집중, 기습, 경계의 원칙 등이 있다.
목표의 원칙이란 모든 군사작전 시 명확하고 결정적이며 달성 가능한 목표를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목표는 군사작전의 목적 달성을 위해 모든 전투력을 집중해서 확보해야 할 대상이다. 지휘관은 군사작전의 성공을 위해 명확하고 결정적이며 달성 가능한 목표를 선정해야만 한다는 뜻이다.
군사작전의 최종 목적은 적의 군대를 격멸하고 전투의지를 파괴하는 것이다. 군사작전을 수행하는 각급 제대의 목표는 최종 목적에 기여하도록 서로 연계돼야 한다. 모든 역량을 집중할 수 있고 식별하기 쉬운 목표를 명확하게 선정해야 한다. 또 목표는 상부의 작전 목적에 기여해야 한다. 군사작전의 목표는 임무, 적 상황, 작전지역, 가용 부대, 가용시간, 기타 가용한 모든 요소를 고려하여 제한된 시간과 능력 범위 내에서 선정해야 한다.
전쟁 시 군사작전의 목표는 국가의 정치적 목표 달성에 기여하도록 선정해야 한다. 클라우제비츠가 주장한 것처럼 “전쟁은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국가의 정치적 의도가 궁극적 목적이고, 전쟁은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다. 정치를 두뇌라고 한다면, 전쟁은 그것의 수족(手足)이다. 따라서 목표의 원칙에서 3개의 명제를 이끌어 낼 수 있다.
첫째, 모든 군사작전은 명확하고 결정적이며 달성 가능한 목표를 지향해야 한다.
둘째, 각급 제대의 군사작전 목표는 상부의 작전 목적에 기여해야 한다.
셋째, 전쟁 시 군사작전의 최종 목표는 국가의 정치적 목표 달성에 기여하도록 선정해야 한다.
6.25 전쟁 시, 전쟁의 원칙 중 목표의 원칙이 잘 적용되지 않았던 사례가 있다. 맥아더 장군이 이끌었던 유엔군의 북진작전이다. 그 실패 사례를 통해 교훈을 찾아보자.
유엔군의 북진 작전은 1950년 9월 27일 결정되었다. 트루만(Harry S. Truman) 대통령의 재가를 얻은 미국 합동참모본부가 유엔군 사령관 맥아더(Dorglas MacAthur) 장군에게 보낸 훈령에 그 구체적 내용이 적혀있다.
귀하의 군사적 목표는 북한 군대의 격멸이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38도선 이북에 상륙작전과 공수작전을 포함한 지상 작전을 전개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
그러나 그 작전이 소련군과 중공군의 개입 또는 개입 의사의 공식 발표가 없고, 우리의 작전에 전혀 위협을 주지 않는 상황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귀하의 군대는 한국과 중공 국경 또는 한국과 소련의 국경선을 넘을 수 없으며, 특히 정치적 차원에서 한국군이 아닌 부대는 국경 인근 지역에서 작전할 수 없다.
이 훈령은 유엔군의 전략적 목표는 북괴군 격멸이며, 그 목표를 위해서 북진작전을 결정했다고 밝힌 것이다. 하지만 작전 수행 측면에서 소련군 또는 중공군과 충돌 위험을 예상해서 신중하게 군사작전을 하고, 그런 경우를 방지해야 한다는 추가 임무를 부여했다. 이 훈령의 토대가 된 미국 NSC 81/1에 의하면 이 작전은 몇 가지 제약조건을 전제로 한 조건부 북진이었다.
첫째, 미국은 소련 또는 중공과의 전면전을 전개하면서까지 북진을 감행해서는 안된다.
둘째, 국경 근처 지역에서는 한국군 부대만을 투입하고, 나아가 북괴군의 저항이 종식될 경우, 무장해제 및 항복조건 수락 임무를 한국군이 담당하도록 하며, 잔적 소탕 작전을 위한 유엔군의 투입을 최소화한다.
셋째, 38도선 이북지역에 대한 군사작전과 점령에 대해 한국 정부와 한국 군의 협조를 받을 수 있으나, 한국 정부에 의한 38도선 이북 지역에 대한 주권행사는 공식적으로 인정할 수 없다.
즉, 미국 정부는 북진 작전을 추구하면서도 소련과 중공의 반응, 유엔 우방국과의 협의, 전면전의 위험성 등을 신중하게 고려한 후에 제한적인 조건부 북진 작전을 결정한 것이다.
이것은 이익과 위험요소를 충분히 검토한 후에 결정한 일종의 도박이었다. 이런 미국의 결정은 유엔군이 38도선을 넘기 전까지는 성공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유엔군이 38도선을 넘어선 후, 미국과 유엔군의 방심과 자만, 정치적 목표에 부합되지 않는 군사 목표의 설정 즉, 전쟁의 원칙 중 목표의 원칙 위배로 인하여 북진 작전은 궁극적으로 실패하게 된다.
맥아더 장군은 9. 27 훈령에 근거하여 북진 계획을 수립했다.
미 8군은 38도선에서 개성-평양 축선을 따라 평양을 목표로 공격하고, 미 10군단은 원산에 상륙한다.
그 후 8군과 10군단은 평양-원산 간 도로에서 상호 연결, 정주-영원-흥안 선까지 진출한다. 그리고 그 선의 북방지역에서는 국군부대만을 투입하여 작전을 실시한다.
위의 최초 계획과 달리 10월 24일 맥아더는 유엔군의 북진 한계선을 없애는 모험을 했다. 한국군이 아닌 미 8군 과 10군단에게 전속력으로 압록강과 두만강까지 진출하라고 명령한 것이다.
맥아더의 작전 목표 수정은 정치적 목표를 반영한 9. 27 훈령에 명확하게 위배되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합참 훈령을 위반한 맥아더의 새로운 명령을 철회하게 만드는 어떤 조치도 하지 않았다. 사실상 그것을 승인한 듯한 태도를 취했다.
새로운 북진 명령을 받은 미 8군과 10군단은 가능한 한 빠르게 북진했다. 국경선에 도착한 후 점령지역을 한국군에 인계하고 겨울이 되기 전에 한반도에서 철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일시적 희망을 가졌다. 그러나 맥아더의 수정된 북진 명령은 수습할 수 없는 상황을 초래했다. 미 10군단은 신속히 전진할 수 있었지만, 미 8군은 보급 문제로 청천강 선에서 전진이 지연되었다. 이로 인해서 11월 중순경엔 미 8군과 10군단 사이에 50마일의 간격이 생겼다. 이 간격에서 적이 반격할 경우, 유엔군 병력이 양쪽으로 분리되어 대규모 손실을 방지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리고 중공군은 이 간격에서부터 6.25 전쟁에 군사개입을 했다.
결론적으로 정치 목표에 부합되지 않도록 작전 목표를 수정한 맥아더 장군의 자만심, 이를 방관한 미국 전쟁 지도부의 우유부단함이 중공군의 개입을 초래한 것이다. 따라서 유엔군은 철수하는 상황에 이르렀던 것이다. 전쟁 원칙 중에서 목표의 원칙을 준수하지 않은 맥아더의 실수로 인하여 당초 미국이 제한전으로 예상했던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확전(擴戰)되었고 장기화되는 양상을 불러왔던 것이다.
이 글은 작가가 2003년도에 작성하였고 2020년도에 부분 수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