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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nny Jun 06. 2020

이라크 전쟁과 미군의 군수지원

미군의 군수지원 성공과 실패 사례에서 배우는 교훈

들어가는 말


2003년 2차 테러와의 전쟁(War on Terrorism)으로 수행된 미국의 대 이라크 전쟁은 부시 대통령의 종전 선언과 함께 실질적으로 종료되었다. 미국의 이라크 공격에 대한 정당성 문제를 포함하여 국제정치, 군사전략, 전쟁사, 전쟁 원인 측면에서는 다양한 관점으로 연구가 진행되었다. 하지만 군수 지원 측면에서는 선행 연구 자료가 별로 없다. 이 글은 이라크 전쟁 관련 국내외 학술지, 정기 간행물, 인터넷에 게재된 자료를 토대로 썼다. 이라크전에서 미군의 군수지원 성공과 실패에 대한 내용을 일부 발췌 종합하였다. 미흡한 부분은 후속 연구로 보완될 것을 기대하면서 제한적이고 부분적인 연구 결과를 서술하였다. 성공 요인은 미군의 사전배치와 전략 수송 개념 적용과 지속적 무기체계 연구개발이다. 실패 요인은 길게 늘어진 지상의 병참선으로 인한 군수 지원의 여러 가지 문제점이다.



이라크전과 미군의 군수 지원, 그 성공과 실패


성공 요인

2003년 미국의 대 이라크전을 승리로 귀결시킨 군수지원의  첫 번째 성공요인은 미군의 사전배치(Pre-positioning)와 전략 수송(Strategic Transportation) 개념 적용이다. 1991년 걸프전으로  미국의 우방이 된 쿠웨이트는 이라크에 대한 대테러 전쟁을 수행하는 미군의 전진기지를 제공했다. 전쟁 이전 카타르에서 쿠웨이트의 도하 캠프로 이동시킨 군수물자를 포함해서 이미 2개 여단 규모의 미군 장비와 탄약이 쿠웨이트에 사전 배치되어 있었다. 또 미국 본토에서 미군 지상군 발진기지인 쿠웨이트로 계속 장비를 공급해서 약 15만 명의 미 지상군 부대는 사전 수송된 탱크, 장갑차, 화포, 탄약을 이용할 수 있었다. 추가적으로 지상전투 제대와 항공전투 제대, 전투근무지원제대로 편조된 미 해병기동군(MEF: Marine Expeditionary Force)도 이 지역의 사전 배치 지상전력을 보강하였다.


미군 항공자산은 쿠웨이트의 암드 알자바 공군 기지에 80여 대의 F-15C, F-16C, A-10A 등 각종 전술기와 F-117A 스텔스기가 사전 배치되어 있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술탄 공군기지에도 약 80여 대의 전술기가 배치되어 출격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카타르의 알 우다이드 기지에는 미군 수송기와 공중급유기가 전술기를 지원할 준비를 한 상태였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수행된 Enduring Freedom 작전에 참가했던 3척의 항공모함, 일본에 주둔했던 CV-63 키티호크, 푸에르토리코에 대기 중이던 CVN-71 시어도어 루스벨트, 샌디에이고에 있던 CVN-68 니미츠 등 6척의 항공모함이 페르시아만에 집결했다. 이 항공모함에 실린 480여 대의 함재기가 미군 항공전력을 보강하였다.


미 해군 전력은 6척의 항공모함과 호위함으로 동원된 24척의 이지스(AEGIS)함이 있었다. 수직발사기를 장비한 미사일 구축함, 보급함, 기타 지원함을 합하면 60여 척의 미군 함정이 페르시아만에 집결하였다. 원자력 공격 잠수함 10척이 동원되었고, 해군 전력이 보유한 미사일은 토마호크와 대공미사일을 포함하여 4,000여 발에 달하였다.


군수 분야의 두 번째 성공요인은, 무기체계와 비무기체계 분야를 망라한  미군의 지속적 연구개발 성과다. 미군은 Interceptor라는 방탄복을 연구 개발하여 이라크 전쟁에 참전한 모든 미군들에게 지급해서 사상자를 최소화하였다. 이 방탄복은 합성섬유인 Kevlar와 Ceramic판을 사용해서 6kg의 무게였다. 이것을 착용한 미군들은 기존 15kg이 넘는 방탄복을 착용했을 때보다 훨씬 신속한 기동이 가능해졌다. 또 목과 사타구니, 심장과 복부를 보호하는 2개의 금속판을 추가하여 이 방탄복을 착용한 병사가 적의 총탄에 맞더라도 통증만 느끼거나 갈비뼈만 부러질 정도로 성능을 개량한 것이다. 소말리아 시가전에서 전투원들이 무거운 방탄복을 착용하고도 총상을 많이 입었던 교훈을 토대로 미군이 연구 개발한 산물이다.


미군의 연구개발 성과로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정밀 유도무기(PGM: Precision Guided Munition)다. 미군의 정밀 유도무기 사용 비율은 1991년 걸프전 때  50% 미만이었으나, 2001년 아프가니스탄 Enduring Freedom 작전 때는 60% 이상으로 증가했다. 그리고 2003년 이라크전에서는 100%에 달했다. 이라크전에서 미군이 사용한 대표적인 정밀 유도무기는 레이저 유도폭탄(LGB: Laser Guided Bomb), GBU-28 또는 GBU-37과 같은 JDAM(Joint Direct Attack Munition)이라 칭하는 GPS 유도폭탄, JSOW(Joint Stand-off Weapon), CBU-94 흑연폭탄, 전자기 펄스 (EMP: Electro-Magnetic Pulse) 폭탄 등이다.


세 번째 성공요인으로 미군은 통합된 보급지원 체계를 구축하고 모든 물자를 동일 보급 경로를 통해 유통하도록 조치하였다. 군수물자의 적재와 하역이 용이하도록 박스화하고 세트화하였다. 또 모든 차량에 사용하는 유류를 동일한 종류의 항공유로 통일했다. 또한 군수-보급-정비를 통합한 전산 정보화 체계를 구축하였다. 이토록 효과적 전투근무지원을 위해 사전 치밀하게 준비했다. 미 본토에서 이라크의 전투 현장까지 8,000마일에 달했고, 공격 간 보급로가 신장되어 전투근무지원 소요가 증가됨에 따른 효과적 전투근무지원을 하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하였다. 전투근무지원을 위해 작전 간 증강된 경계팀을 운용하고, 주 보급로로 이용할 8번 국도를 우선적으로 확보했으며, 공중보급을 위한 비행장을 우선 확보하고, 중간 보급 저장소를 설치하였다.


     

실패 요인

이라크전을 수행하면서 미군과 연합군의 작전 수행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요인은 길게 늘어난 병참선으로 인한 보급로의 확보, 다량의 보급물자를 전방 전투부대까지 적절한 시기에 수송해 주는 문제였다. 이것을 실패 요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미군이 성공적으로 해결하지 못했기에 실패로 간주했다. 전쟁 초기, 미 국방성은 미국과 영국 연합군의 병참지원에는 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당시 종군기자의 보도에 의하면 “병참지원에 문제가 있었고, 참전 군인들이 하루 한 끼만 먹는 경우도 있다”라고 하였다. 이처럼 "적시 적절한 전투근무지원이 되지 않아서 최전선에 배치된 병사들의 사기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었다. 전투 현장에서는 급식, 급수, 목욕, 세탁 등 전투원들에게 인간의 기본적 욕구를 해결하도록 지원하는 것이 그들의 사기를 배가시킬 수 있는 근원적인 요소였기 때문이다.


연합군의 병참 지원에 문제가 생긴 것은 2만여 명의 병력, 200여 대의 전차, 260여 대의 장갑차로 구성된 미 보병 제3기계화사단이 이라크 중부의 나자프 인근까지 진격했던 2003년 3월 29일부터였다. 이 지역은 쿠웨이트의 미군 병참 본부로부터 300km 떨어진 지점으로 미군 보급 차량이 일일 평균 14시간 운행하면 왕복 3~4일이 걸리는 원거리에 있었다. 따라서 적절한 시기에 재보급이 이루어지지 않음으로 최전선의 병사들이 식량과 유류의 지원을 받지 못했고 전차 같은 기동장비의 진격에 제한을 받았다. 연합군의 보급품은 쿠웨이트 남쪽 슈아이바 항구에서 하역한 후, 바코드를 이용하여 신속히 재분류하였다. 그리고 인근의 아리프잔 보급기지에 저장하였다가 다음의 <도표-1>처럼 육상과 항공 수송수단을 이용하여 전방으로 추진 보급하였다. 이 수송차량을 이용해서 공항 확보 이전까지 아리프잔에서 10~80여 대를 1개 조로 편성하여 보급물자 수송을 위해 지속적으로 운용했다.

<도표-1> 장비별 수송능력과 수송물자


이라크 전쟁에서 연합군이 분석한 비전투 손실의 원인 중 운전병의 교통사고 비율이 높은 이유는 장거리 수송으로 운전병의 전투피로가 가중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연합군은 전쟁 간 지속적으로 원활한 추진 보급과 대량 수송을 위해 공항 및 활주로 확보에 주력하였던 것이다.


미 보병 제3기계화사단의 주요 물자 일일 평균 소모량이다. 장비 운용을 위해 1일 약 200만 리터, 즉 200리터용 드럼 1만 개 분량의 경유를 소모했다. 에이브럼스 전차는 시속 60km로 달리면 시간당 200리터, 아파치 헬기는 시속 279km로 비행하면 시간당 400리터의 연료를 소비했고, 탄약은 일일 평균 2,300톤이 소모되었다. 작전지역이 사막이므로 일일 평균 100만 리터, 즉 200리터용 5천 드럼의 물이 필요했다. 이 외에도 많은 보급 물량이 있었고, 이것들을 차량으로 운반할 경우, <도표-2>와 같이 많은 수송자산이 필요하였다.               


<도표-2> 일일 전투근무지원 물동량과 수송자산 소요량


따라서 미군과 영국의 연합군은 이라크전에서 이러한 전투근무지원의 난관에 봉착하여 어려움을 겪었으며, 전투근무지원을 보장하기 위한 도로, 공항, 항만 등을 포함하는 보급로의 중요성을 재인식하게 되었다.


          

맺는말


“작전은 전투를 승리로 이끌고 군수는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는 말이 있다. 미군은 이라크전에서 군수적 측면에서 전진 기지(Advanced Base)를 이용한 사전 배치(Pre-Positioning)와 전략 수송(Strategic Transportation) 개념을 적용하였다. 또 무기체계의 지속적 연구개발과 통합 보급지원체제 구축으로 전쟁을 성공으로 이끄는 데 기여했다. 반면 개전 초기에 지상에서 병참선의 길게 연장됨으로 인한 과도한 수송자산의 소요, 이것을 해결하지 못함으로 인한 적시 적절한 전투근무지원의 부재로 어려움을 겪고 보급로의 중요성을 재인식하게 되었다.


자신의 과오나 오류를 통해서 배우는 것보다는 타인의 경험을 통해 배우는 것이 현명한 자의 처세다. 미군의 사전배치와 전략 수송 개념은 한국 해군과 해병대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양해군을 지향하는 해군과 공지기동부대를 추구하는 해병대가, 해군-해병대팀을 구성하기 위한 공감대를 형성하여 전략과 무기체계와 부대구조를 함께 연구하고 개발한다면 미래의 대한민국 해군과 해병대는 “바다로 세계로,” “바다에서 세계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1991년 걸프전과 2003년 이라크전에서는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한 군수 지원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었다. 이 두 번의 전쟁뿐 아니라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모든 전쟁사를 고찰해 볼 때 군수지원이 중요하다는 것은 명약관화한 사실이다. 따라서 작전의 형태와 성격, 작전지역의 특징에 부합되도록 군수 지원 계획을 사전에 세밀하게 수립하여 철저히 시행한다면 전장의 병사들의 사기를 진작시킴은 물론 전승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이 글은 작가가 2003년에 쓰고 2020년에 부분 수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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