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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nny Apr 09. 2021

가면 쓴 남자의 이야기 II

월간지에 게재된 두 번째 에세이

프롤로그

지난해부터 우리는 가면(假面, mask)을 쓰고 살고 있다. 절친한 사이가 아니면 마주쳐도 서로를 알아보지 못한다.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얼굴을 가리는 방역 마스크를 쓰기 때문이다. 마스크나 가면을 착용하면 익명성으로 행동의 자유를 얻게 된다. 마스크로 얼굴을 감추고 폭력 시위를 하거나, 무도회에서 가면을 쓰면 일탈행위를 하기 쉬운 이유다. 하지만 인간의 삶에 더 큰 영향을 주는 건 ‘보이지 않는 가면,’ 페르소나(persona)다. 페르소나로 인생의 성패가 갈리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보이지 않는 가면을 벗지 못하고 생을 마친다. 다른 인격체로 보이는 페르소나(persona)에 본체가 감춰진 채 삶을 마감하는 것이다. 얼마나 슬픈 일인가? 인간은 생존 본능으로, 때론 이익과 만족감을 채우려고 페르소나를 사용한다. 그러나 성숙한 삶을 영위하려면 부단한 자아성찰을 통해 가면 쓴 자기 모습을 직시해야 한다. 잘못 쓴 페르소나를 벗자! 안 그러면 주변인과 자신에게 부정적 영향력을 미친다. 가면에 얽힌 철학적 사유의 바탕이 되는 mask와 persona의 연원을 살펴보고, 가면 쓴 사울 왕과 세 남자 이야기에서 반면교사의 교훈을 얻어보자.



Mask와 Persona

mask의 어원 maskaro의 의미는 ‘연기나 그을음으로 생긴 검은 물질로 칠한 것’이다. maskaro에서 ‘마술사나 마귀’란 뜻의 masca와 ‘유령’인 mascus가 파생됐다. 인간이 처음으로 가면을 만든 이유는 절대자의 힘을 빌려 귀신을 쫓거나 소원을 이루기 위함이었다. 이처럼 마스크나 가면에는 부정적 주술적 함의가 있다. 코로나 19 예방 차원의 마스크 착용을 강조하는 정부 방침에 반대하며, 그것을 쓰지 않을 개인의 자유를 외치는 이들의 행태가 mask의 부정적 연원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고대 그리스 연극배우들이 배역을 위해 사용한 가면을 페르소나(persona)라고 했다. 페르소나를 쓴 배우는 자기와 다른 인격체인 연극 속 캐릭터에 몰입한다. ‘인물’을 의미하는 person, ‘인격’을 뜻하는 personality 어원이 persona인 것도 여기서 비롯된 듯하다. 스위스 정신의학자 융(Carl Gustav Jung)은 페르소나를 ‘정신의 외면(外面)’으로 표현했다. ‘세상을 향한 얼굴’이라는 것이다. 여러 개의 가면을 가진 자는 집과 회사에서 각각 다른 것을 쓰고, 친구들을 만날 때는 또 다른 걸로 바꾼다. 이 가면들이 그 사람의 페르소나다. 다양한 상황을 마주한 인간이 여러 가지 방식으로 대응하려고 페르소나를 이용한다고 융이 말했다.     



가면 쓴 사울 왕

구약성경에 나오는 사울 왕과 그의 아들 요나단 왕자 얘기다. 사울이 퇴각하는 블레셋 군대를 추격할 것인지 그만둘 건지 하나님의 뜻을 구했으나 응답을 받지 못했다. 사울은 유대 공동체의 죄악 때문이라며 누가 죄인인지 제비뽑기로 가려내자고 한다. 당시 유대인의 제비뽑기는 세상만사가 하나님의 주권에 달렸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첫 번째는 사울과 요나단이 같은 편, 백성들은 다른 편으로 갈라섰다. 사울과 요나단 쪽이 뽑혔다. 사울과 요나단으로 나뉜 두 번째 제비뽑기에서 사울은 둘 중 뽑히는 자는 죽어야 한다고 맹세했다.     


신하와 백성들은 왕과 왕자 사이의 제비뽑기를 반대했지만, 사울은 이를 강행했고 최종적으로 요나단이 뽑혔다. 사울은 자기가 맹세한 대로 요나단을 죽여야 한다고 했지만 모든 유대인이 만류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한 전쟁에서 요나단이 큰 공을 세웠음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결국 사울은 마지막 제비 뽑힌 자를 죽인다는 서약을 철회했다.     


하나님의 뜻을 묻는 제비뽑기를 제안한 사울은 외견상 종교적 인물로 보였다. 하지만 그는 종교적 방식으로 자기 생각을 입증하려고 아들과 백성의 목숨을 담보로 삼았다. 반면, 요나단은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대로 행동했다. 백성들이 종교적 인물의 페르소나를 쓴 사울 왕이 아니라 내면이 신실한 요나단 편을 든 이유다.     


사울 왕처럼 가면을 쓰고 외형만 그럴듯하게 보이려는 태도로는 성숙한 인격체가 되기 어렵다. 부족하고 불완전하지만 있는 모습 그대로 살면서 고쳐가야 나이가 들수록 인격도 더 성숙해진다.     



가면 쓴 세 남자

첫 번째 남자는 고위직 간부 김국장이다. 그는 부하 직원들에게 사이코패스 같다는 말을 들을 만큼 위압적이고 권위적인 독설가다. 그의 타깃은 직위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부하 직원들이다. 다른 부서원들은 김국장이 품격 있는 사람이라고 오해한다. 직속 부하와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그의 언행이 판이하기 때문이다.     


어느 저녁 무렵, 동료와 함께 그의 사택으로 서류 봉투를 전달하러 갔다. 그에게 자료를 주고 간단한 대화를 나눌 때였다. 살짝 열린 대문 틈새로 앙칼진 고성이 들렸다. "여보! 내가 빨리하라고 했잖아! 얼른 들어오지 않고 뭐해!" 높은 음성의 주인공은 그의 부인이었다. 우린 깜짝 놀라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그런데 김국장의 반응이 우릴 더 놀라게 했다. 사무실에서와 달리 나긋나긋한 음성으로 아내에게 대답했다. "네! 들어갑니다. 들어간다고요. 조금만 기다려요." 귀가하면서 김국장의 이중적 태도가 떠올랐다. 직장과 집에서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보이는 그의 본래 모습은 무엇일까?     


두 번째 주인공 박이중은 직장에서 함께 근무했던 동료다. 그의 별명은 천사다. 그는 변함없이 온화하고 차분한 태도로 다른 동료들이 꺼리는 업무를 도맡아 처리한다. 종교 시설에서 봉사하는 그의 모습은 더욱 천사처럼 보였다. 어렵고 힘든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정성스럽게 돌보고 섬기는 박이중은 ‘선한 사마리아인’보다 더 선해 보였다.     


어느 날, 한 친구가 박이중의 부인에게 직접 들었다며 놀라운 얘기를 했다. 그가 밖에서와 달리 집에서는 아내와 자녀에게 매우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가장이라는 것이다. 자녀들은 아버지가 무서워서 의사 표현도 제대로 못 한다고 했다. 더구나 그의 부인이 비아냥대며 이렇게 말했단다. "박이중이가 천사라고? 천사는 무슨 얼어 죽을 천사!" 직장과 교회에서는 선한 사람으로 보이는데, 집에서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인다는 그는 어떤 사람일까?     


세 번째 가면 쓴 남자 이대표는 중견기업의 사장이다. 해외 유학파인 그는 우아하고 지적인 아내와 사회 초년생인 딸과 함께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산다. 그의 비전과 열정을 지지하는 직원들은 한마음으로 회사의 발전과 성장을 위해 각자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했다. 그는 자상한 남편이자 좋은 아버지며 자수성가한 사업가로 보였다.      


그런데 그의 여비서가 이대표에게 부당한 일을 당했다며 신고했다. 그의 아내와 딸은 물론, 직원 대부분은 그를 옹호했다. 그의 인품이나 평소 행동으로 볼 때, 이대표가 딸 또래인 여직원에게 부적절한 행위를 할 만큼 몰상식하거나 부도덕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대표의 성품을 잘 안다는 담당 변호사는 오히려 여비서에게 이대표가 당했다며 열성적으로 그를 대변했다. 그러나 결국 이대표는 부적절한 혐의로 구속됐다. 피해자인 여비서를 제외한 사람들이 좋은 사람이라고 호평했던 이대표, 그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     



에필로그

사울은 왕으로서 부족한 결단력과 리더십을 감추려고 신앙심이 깊은 인물처럼 보이는 가면을 썼다. 김국장은 자신의 유약함을 감추고 직장에서의 위상을 공고히 하려고 과격한 인물의 가면을 썼다. 박이중은 사회적 명성을 얻기 위해 직장과 교회에선 선한 사마리아인의 모습으로 보이는 가면을 썼다. 이대표는 특정 피해자에게만 집착한다는 부적절한 행동의 특성을 인자한 모습의 가면 뒤에 감추고 있었다. 사울 왕과 세 남자 모두 자신의 부족함을 감추거나 채워서 이익과 만족감을 얻으려고 가면을 쓴 채 살았다. 그들의 가면 쓴 삶은 주변인과 본인의 삶을 황폐하게 했다.     


융이 말한 것처럼 인간은 여러 개의 페르소나, 즉 세상을 향한 여러 개의 얼굴을 갖고 살아간다. 페르소나라는 가면을 쓴 삶이 선한 영향력을 끼치면 괜찮지만, 그 반대의 경우엔 그걸 과감히 벗어야 한다. 잘못 쓴 페르소나를 벗고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야 한다. 가면 속에 감추었던 모습을 드러내면 치유와 회복을 통해 내면세계가 더 단단해진다. 속울음을 삼키다가 눈물이 왈칵 터졌을 때의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 주변에 가면을 쓴 채 힘겨운 나날을 보내는 이가 있다면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네 보자. 내면의 자아를 드러내고 몸과 마음의 평안을 회복하길 기대하면서.     


가면 속에 감춰 둔 당신의 모습을 되찾아 보세요! 괜찮아요! 더 좋아질 거예요!




월간 [동원N예비군] 2021년 4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이글의 초고였던 브런치 글 [가면을 쓴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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