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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nny May 07. 2021

어느 택시 기사의 자녀교육 레슨 II

[나를 채우는 인문학] 코너에  게재된 세 번째 에세이

프롤로그


어디든지 처음 방문한 도시에선 택시 기사로부터 많은 정보를 획득할 수 있다. 갖은 직종과 연령대의 승객들에게 얻은 정보를 재생산해서 다른 손님에게 배포하기 때문이다. 어느 점잖은 택시 기사로부터 반 시간 가량 자녀교육 레슨을 받았다. “한국 부모들은 모든 걸 바쳐가며 자녀교육에 열과 성을 다해요. 그건 자녀가 노후를 책임져 줄 거란 기대감 때문이었어요. 우리 땐 그런 부모의 기대를 충족시켜 줬지만 요즘 애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죠?”     


자녀를 통해서 자기가 못 이룬 꿈을 대신 이루려거나, 노년의 후견인으로 자녀를 키우는 건 어리석은 짓이라는 말이다. “대리만족, 안 돼요! 노후 보장, 아니죠!” 택시 기사의 말에 귀가 솔깃했다. 부모와 자식 간 어떤 관계를 형성해야 할까? 부모는 자녀를 존중하고 신뢰하며 그들이 독립적 인격체로 성장하게 도와야 한다.     




울타리를 걷어내야 자녀가 독립한다.


이근후 교수는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라는 저서에 부모 역할에 관해 썼다. “자식에게 부모는 하나의 벽이다. 벽은 보호막이지만, 시간이 흐르면 걸림돌이 된다. 부모가 만든 높고 튼튼한 울타리를 뛰어넘으면 성장하지만, 거기에 기대는 습성이 밴 자녀는 부모 품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럴 땐 부모가 먼저 그 벽을 부숴 줘야 한다. 자녀가 미덥지 못해도 과감하게 놔줘야 한다. 이것이 자녀와 부모가 모두 행복해지는 길이다.” 부모가 친 울타리가 높고 튼튼한 보호막이 될수록, 거기 의존하는 자녀의 자생력은 점점 약해진다. 그걸 일찍 걷어낼수록 스스로 힘을 키우려는 자녀의 역량은 점점 강해질 것이다. 이런 측면에선 독수리의 새끼 훈육 방법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어미 독수리는 새끼를 보호하려고 높은 절벽 위에 둥지를 튼다. 가시나무로 집을 짓고 새끼의 연약한 살갗을 보호하려고 부드러운 동물 가죽을 바닥에 깐다. 새끼가 어느 정도 자라면, 어미는 보금자리를 포근하게 해주는 가죽을 벗겨 낸다. 움직일 때마다 온몸을 가시에 찔린 새끼가 둥지 밖으로 기어 나오면 높은 절벽 위에 위태롭게 서게 된다. 새끼는 강풍에 맞서 다리를 후들대면서 자연 앞에 홀로 맞설 때의 공포심을 느낀다. 그때, 어미는 어디 있을까? 새끼의 위험을 모르는 척, 무심한 듯 드높은 상공에 떠 있는 방관자처럼 보이지만, 어미는 멀리서 지켜본다. 강풍에 날린 새끼가 날개를 바둥거리다 힘이 빠져 절벽 아래로 떨어질 때, 어미가 날아와 커다란 날개로 새끼를 받아낸다. 혼자 날갯짓으로 날아오를 때까지 어미는 새끼를 절벽 위에 올려놓고 푸드덕 날다 떨어지면 받아내길 반복한다. 마침내 새끼 독수리는 홀로 창공을 날아오른다.     


요즘의 자녀교육 실태를 대변하는 말이 있다. "할아버지의 재력과 엄마의 정보력이 명문대 진학을 좌우한다." 부모가 고액 과외비를 지급할 수 있고, 입시 전문 컨설턴트를 데려올 수 있어야 명문대에 간다는 것이다. 입시 경쟁은 점점 더 치열해지고, 부모 세대보다 입시 문제 난도가 훨씬 높아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부모의 능력과 형편에 힘입어서 유명 대학에 들어가고, 대기업에 취직하는 것이 진짜 성공한 인생일까?      


미국의 자녀교육 방식은 우리와 사뭇 다르다고 한다. 대학 진학과 동시에 자녀 스스로 학비와 용돈을 벌어야 한다고 들었다. 대학생이 되면 부모 품을 떠나 학교 기숙사에서 독립생활을 경험하면서 성인이 되어간다. 미국 대학에서 부모로부터 학비나 용돈을 받는 학생들은 대부분 한국인 유학생이거나 재미 교포 한국인이나 중국인이라는 얘길 들었다. 미국 청년들이 우리 자녀보다 일찍 철이 드는 이유가 여기 있는 건 아닐까? 자녀교육에 정도는 없다. 하지만 어떤 것이 진정으로 자녀의 행복한 삶을 위한 길일까? 부모의 선택에 달려 있다.     


존중과 신뢰 속에 자녀가 성장한다.


이화여대에서 부모교육을 연구한 도영심 교수는 강조한다. “자녀의 성공은 그가 지닌 역량의 발현이지, 부모의 자녀교육 때문은 아니다. 일란성쌍둥이를 똑같은 방식으로 키워서 둘 다 똑같이 성공하게 만들 수 있는 부모는 이 세상에 없다.” 부모는 자녀의 개성을 이해하고, 역량 발휘를 잘할 수 있게 도와주면 된다. 부모가 선호하는 길이 아니라. 자녀가 원하고 잘하는 걸 하도록 인도하는 게 자녀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길이다.     


어느 방송국에서 성공한 자녀를 둔 부모를 인터뷰했다. 자녀교육을 어떤 방식으로 했냐는 질문에 부부가 일성으로 답했다. "우린 애들에게 별로 해준 게 없어요. 뭔가 해줄 만한 능력도 없고 형편도 안됐죠. 그냥 애들이 하고 싶은 걸 하게 놔뒀어요. 남에게 해를 입히거나 나쁜 짓이 아니라면 말이에요." 그리곤 덧붙였다. "아마도 어려서부터 애들은 이런 생각을 한 것 같아요. 아빠 엄마가 우리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없다. 우리가 스스로 앞날을 개척해 나가야만 한다." 그 부부는 자녀에게 물질적으로 풍족하게 해 줄 순 없었지만, 자녀를 믿고 자녀가 원하는 걸 하도록 도와줬다. 믿는 만큼 아이들이 성장한다는 말처럼 그들의 자녀는 부모의 무한 신뢰를 바탕으로 성장해서 성공했다고 한다.     


부모-자녀 관계는 양방향성이다.


공부보단 친구들과 뛰놀고 싶어 하는 어린 자녀에게 부모가 말한다. “놀 생각만 하지 말고 열심히 공부해라. 다 너를 위해서, 네가 잘되라고 잔소리하는 거다.” 자녀는 생각한다. “아빠 엄만 날 위한다면서 왜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걸 못 하게 할까? 내가 뭘 잘하는지는 알고 계실까?”     


부모는 자녀를 위한 길이라며 자기 의지대로 자녀 진로를 결정하고, 자녀는 부모의 뜻에 따라 원치 않는 길을 걷기도 한다. 부모가 자녀에게 요구하는 것이 자녀 행복을 위한 것인가? 부모의 대리만족을 위한 것은 아닐까?     


자녀의 행복을 위한 거라면 왜 부모 자녀 간 갈등이 생길까? 부모의 대리만족을 위한 거라면 자녀들은 왜 부모의 회한을 이해하지 못할까? 화초는 관심을 받은 만큼 자라는데 자녀들은 왜 부모의 관심을 마다할까? 왜 부모는 자녀를 온실 속의 화초로만 생각할까? 부모-자녀 관계가 양방향성이라는 걸 몰라서 그렇다. 그래서 성경에도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라고 쓰여 있는 듯하다. 부모 자녀 관계는 일방적이기보단 양방향성을 가져야 행복한 관계가 지속된다.     


일촌 지간만큼 자녀와 거리를 두자!


부모와 자식 간 거리는 매우 가까운 듯하지만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그걸 유지해야만 한다. 일촌 지간(一村之間)인 부모와 자식 간 거리는 일촌(一村), 한 마디다. 부모가 자녀와 한 마디의 거리를 두지 않고 지나치게 간섭하면 갈등이 생긴다.     


부모는 자녀 인생이 곧 내 인생이라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금쪽같은 내 자식이라고 말하면서 지나치게 집착하고 기대한다. 과도한 기대감은 서로를 실망시키고, 결국 남보다 못한 관계를 만든다. 일촌 지간인 부모와 자식 간 한 마디만큼 적당한 거리를 둬야 한다. 일촌의 거리는 그만큼 서로를 존중해야 하는 간격이기 때문이다.     




에필로그


택시 기사가 일러 준 자녀교육 팁을 정리해 보자. 부모들이 자녀교육에 열성을 기울이는 이유는, 자녀가 성공해서 부모가 못 이룬 꿈을 이뤄주고 노후도 책임져 줄 거라는 기대감의 발현이다. 하지만 요즘 세대는 부모의 대리만족과 노후 보장 기대감을 충족시켜 주지 않는다고 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교육 전문가의 견해와 각종 사례에서 나타난 교훈은 두 가지다. 첫째, 부모는 자녀가 독립심을 키우도록 적절한 시기에 보호막을 거둬야 한다. 둘째, 부모는 자녀를 인격적으로 존중하고 신뢰해야 한다. 부모 자식 관계는 양방향성을 가지면서, 일촌 지간의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가정의 달을 맞아 택시 기사의 자녀교육 레슨을 우리 삶에 실천적으로 적용해 보자.




[동원N예비군] 2021년 5월호에 게재된 에세이의 글감이자 초고의 바탕이 되었던 세 편의 브런치 글입니다.


https://brunch.co.kr/@yonghokye/31

https://brunch.co.kr/@yonghokye/235

https://brunch.co.kr/@yonghokye/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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