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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nny Jun 04. 2021

세상에 공짜는 없다 II

[나를 채우는 인문학] 코너에 실린 네 번째 에세이


호국보훈의 달인 6월을 맞아 “세상에 공짜는 없다”라는 경구에 담긴 의미를 되새겨 보려고 한다. 오는 6월 25일이면 6·25 전쟁이 발발한 지 만 71년이 된다. “폭격으로 폐허가 된 한반도는 석기시대로 돌아갔다”라고 말했던 어느 미군 장성의 말처럼 전쟁 직후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제일 가난한 나라였다. 그로부터 70년, 세계 최빈국이었던 나라가 세계 10위권의 경제강국 반열에 올랐다. 1953년 76달러였던 1인당 명목 국민총소득(GNI)이 2020년엔 33,434달러로 500배 증가했고,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1953년 477억 원에서 2020년 1천893조 원으로 무려 39,665배나 높아졌다.     


하지만 이것은 공짜로 주어진 기적이 아니다. 전쟁 중엔 유엔의 깃발 아래 전투부대를 파병한 16개국을 비롯한 22개국에서 온 외국 군인들과 우리 민·관·군·경이 함께 피를 흘렸다. 전후엔 파독 광부와 간호사, 베트남전 참전 용사, 중동지역 건설 현장 근로자 등 해외 자본을 유치하고 국내의 열악한 노동현장에서 땀과 눈물을 흘리며 산업국가의 기반을 다진 이전 세대가 있었다. 그리고 민주화를 위해 청춘을 바쳤던 586세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이들이 피·땀·눈물이라는 대가를 지불했기에 자유와 번영의 상징인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는 것이다. 미국 워싱턴 D.C. 의 한국전쟁 참전기념비에 새겨진 “Freedom is not free”는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가 결코 공짜가 아니었음을 잘 표현하고 있다.     


이제 세 편의 이야기와 유명인사 세 사람의 논리를 빌어 ‘세상에 공짜란 없다’란 말이 만고불변의 진리임을 설명해 보겠다.     



첫 번째 이야기

중국의 어느 임금이 문무백관에게 명했다.


“백성들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 성공비법이 담긴 책을 한 권씩 써서 가져오시오!”

기일이 되자 신하들은 각자가 쓴 책을 가져왔다. 큰 수레에 가득 싣고 남을 정도로 많은 책이 모아졌다.     


임금이 왕실의 기록과 역서 편찬을 담당하는 신하들에게 다시 명령했다.

“이 많은 책의 내용을 모두 정리해서 한 권으로 만들어 오시오!”

임금이 정한 날짜에 신하들은 모든 내용을 한 권으로 요약한 책을 가져왔다.

임금이 그 책을 펼쳐 보니 백성들이 이해하기 어려웠고 분야도 너무 방대했다.     


임금이 나라에서 가장 영특하다는 젊은 신하를 불러 그에게 물었다.

“이 책의 내용을 단 하나의 문장으로 만들 수 있겠느냐?”

그 신하는 임금의 명을 받들어 모든 것을 한 문장으로 압축해 보겠다고 답했다.     


며칠 후 문무백관이 지켜보는 앞에서 영특한 젊은 신하가 임금에게 나아갔다.

임금이 그에게 물었다. “만백성에게 공포할 성공비법을 한 문장으로 말해 보아라!”

신하가 큰 소리로 말했다.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임금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모든 신하에게 말했다.

“내가 찾던 것이 바로 이것이요! 누구나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정신으로 살면 반드시 성공할 것이요.” 이후로 백성들은 공짜가 없다는 말을 즐겨 썼고, 나라는 부강해졌다.     



두 번째 이야기

정년퇴직하던 날, 회사 앞 국숫집에서 오천 원짜리 메밀국수를 먹었다.     


30년 동안 점심때마다 이 식당을 이용했지만, 주인장과 이야길 나눈 적은 없었다.

오늘은 왠지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주인장에게 말을 건네고 싶었다.

“사장님, 오늘 나 퇴직했어요.”

이 한마디는 오늘이 여길 방문하는 마지막 날이라는 걸 의미했다.     


주인장이 직접 가져온 국수 위엔 새우튀김 한 조각이 올려져 있었다.

“사장님, 고맙습니다.”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주인장의 배려에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퇴직 후에도 점심은 여기서 먹겠노라고.     


평소처럼 지갑에서 오천 원을 꺼내 주인장에게 내밀었다. “사장님, 여기 계산이요.”

주인장이 멋쩍게 웃으며 답했다. “감사합니다. 육천 원입니다.”

역시 세상에 공짜는 없다.     



세 번째 이야기

미국 서부 개척시대 어느 마을에 낮엔 식당 밤엔 술집으로 운영하는 가게가 있었다.     


손님이 줄고 식당과 술집을 운영하기 어려워지자 주인은 고심한 끝에 대책을 세웠다.

저녁에 술을 마신 손님에겐 다음 날 점심을 공짜로 준다는 광고를 냈다.

광고를 보고 저녁 손님이 몰려들면서 매출액이 배로 뛰어올랐다.

저녁 술값엔 다음 날의 점심 식대까지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한참 지난 후에야 이 사실을 알게 된 주변의 마을 사람들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There is no such thing as a free lunch. Nothing is free in the world.”     



이번엔 ‘세상에 공짜는 없다’라는 주장을 편 경제인, 학자, 법률가의 논리를 들어보자.   


박병원 KT 회장이 한국경제교육협회장에 선출된 직후에 인터뷰를 했다. 경제교육에서 한 가지만 가르쳐야 한다면 어떤 것을 들 수 있냐는 질문에 대한 그의 답변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모든 경제 원리는 여기서 출발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마치 공짜가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 세상에 공짜가 있다면 경제가 필요 없을 것이다.     


이상호 한국건설산업연구원장은 공짜처럼 느껴지는 무언가를 얻었다면, 누군가가 비용을 대신 냈거나, 내가 무언가를 포기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학자들에게 경제학 기본원리 10가지를 제시하라고 하면 그중에 ‘세상에 공짜는 없다’가 반드시 포함된다. 우리가 원하는 모든 걸 다 가질 순 없다. 불가피하게 선택해야만 한다. 무언가를 선택한다는 건 대신 다른 걸 포기하는 것이다.     


일례로 인력과 기계를 동원하고 자재를 사용해서 아파트를 지어 분양한다고 하자. 아파트를 세울 때 투입되는 비용은 상가나 오피스텔처럼 수익형 건물을 지어서 벌어들일 수 있는 이익을 포기한 것이다. 이처럼 뭔가 생산하려면 다른 걸 포기해야 한다. 어떤 선택이든 반드시 비용이 따른다고 생각하면 ‘세상에 공짜는 없다’라는 경제학의 기본원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때론 다른 사람이 비용을 대신 내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것도 공짜가 아니라 비용을 남에게 떠넘기는 것이다. 예를 들면,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에 따른 혜택은 공짜가 아니라 납세자나 미래 세대에 전가되는 비용이다.     


한동안 우리 사회에 무상급식, 무상교육, 무상의료, 무상주택 같은 일련의 무상 시리즈가 난무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모두 잘못된 표현이다. 무상 시리즈가 현실화하려면 우리 사회의 누군가는 그 비용을 대신 지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대 로스쿨 하태훈 교수는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걸 우리 문화에 빗대어 설명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선의로 거저 주는 것 같아도 받은 만큼 돌려주고 싶은 인지상정을 노린 것일 경우가 많다. 내 주머니에서 당장 나가는 건 없지만 공짜로 주는 것 뒤엔 반대급부의 기대가 숨어 있기 마련이다. 우린 누군가에게 쌀 한 톨이라도 받으면 갚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간 갚아야 한다는 부채 의식을 갖는다. 받은 만큼 돌려줘야 마음이 편하므로 갚지 않는 동안은 늘 부담감으로 남는다. 받는 게 있으면 주는 것도 있어야 하는 법이다.     


다른 이의 호의나 선물에 감사하면서도 마음속엔 어떻게 갚아야 하나 걱정이 생긴다. 새로 이사 온 집에서 떡 접시를 받으면 빈 그릇 채 돌려보내지 않았던 것이 우리 문화였기 때문이다.     


음마투전(飮馬投錢)이란 고사성어가 있다.

말에게 물을 마시게 할 때 먼저 돈을 물속에 던져 물값을 낸다는 뜻이다.

옛 선비들이 말에게 강물을 마시게 할 때 공짜로 물을 먹이는 것이 싫어서 그 값으로 강물에 동전을 던졌다는 얘기에서 유래됐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라는 깨달음을 삶으로 실천한 선비들의 행동을 본받으면 어떨까?     


지금까지의 우화와 유머가 주는 교훈, 경제나 법을 다루는 유명인사의 논증을 통해 공짜는 없다는 것을 설명했다. 무언가 무상으로 주어지거나 얻는 것이 있다면, 누군가는 그 대가를 대신 치르거나,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다른 걸 포기해야 한다. 그렇다. 이 세상에 거저 주어지는 건 없다. 호국보훈의 달을 보내며 자유롭고 풍요로운 대한민국의 오늘을 위해 피와 땀과 눈물이란 대가를 지불한 누군가에게 감사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Freedom is not free, 세상에 공짜는 없다!”



이 에세이의 초고였던 브런치 글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brun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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