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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nny Jul 08. 2021

사람은 누구나 페리숑 콤플렉스가 있다 II

[나를 채우는 인문학] 코너에 실린 다섯 번째 에세이

이 세상엔 다른 이에게 은혜를 입거나 신세를 지고도 고마워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고마움을 모르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도움을 준 사람을 오히려 미워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은혜를 베푼 이에게 평생 빚진 기분으로 사는 것을 견디기 어려워서다. 반면, 자기가 도와준 사람은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상대방이 자신의 선행을 오래도록 감사할 거라고 확신하며 자랑스럽게 여긴다. 자기가 베푼 호의는 중히 여기면서 남에게 입은 은혜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심리가 바로 '페리숑 콤플렉스'다.      


프랑스 극작가인 라비슈(Eugène Marin Labiche)는 [페리숑 씨의 여행(Le Voyage de M.Perrichon)]이라는 19세기 희극에서 인간의 묘한 심리를 드러내는 행위를 묘사했다. ‘페리숑 콤플렉스’는 이 희극의 주인공인 페리숑의 허영심과 이기심 가득한 행동에서 비롯되었다. 페리숑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지만, 그와 유사한 성향을 나 자신과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희극 [페리숑 씨의 여행]을 소개한다.     


페리숑은 아내와 딸과 함께 스위스로 가족여행을 떠난다. 페리숑의 딸 앙리에트에게 청혼하려는 두 친구 아르망과 다니엘도 서로 선의의 경쟁을 하기로 약속하고 페리숑 가족의 여행에 합류한다.     


페리숑 가족과 두 친구가 알프스 근처에 머물던 어느 날이었다. 산에서 승마를 즐기던 페리숑이 말에서 떨어진다. 낙마한 그가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질 뻔했을 때, 그 근처를 지나던 아르망이 페리숑을 구해준다. 아내와 딸은 페리숑의 은인 아르망에게 무척 고마워했다. 하지만 정작 은혜를 입은 페리숑의 태도는 조금 달랐다. 처음엔 위기 상황에서 자기를 구해 준 아르망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듯하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도움을 과소평가하려고 했다. 절벽으로 떨어지려고 했을 때 커다란 나무를 봤고 그걸 막 붙잡으려는 순간에 아르망이 와서 손을 내밀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자기는 낭떠러지로 떨어졌더라도 크게 다치지는 않았을 거라고 말했다.     


다음 날 페리숑은 다니엘과 빙하 트래킹을 나섰다. 트래킹 중 빙하에서 미끄러진 다니엘은 크레바스(crevasse)로 떨어질 위기에 처한다. 그 순간 페리숑이 다니엘에게 피켈을 내밀어서 잡게 하고 가이드와 함께 크레바스에서 그를 끌어낸다. 숙소로 돌아온 페리숑은 죽을뻔한 다니엘을 자기가 구해냈다며 자랑스럽게 떠벌린다. 허영심과 오만함으로 가득 찬 페리숑의 성격을 잘 알던 다니엘은 그를 부추겼다. 페리숑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자기는 벌써 저세상에 갔을 거라며 그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다. 페리숑은 자기 목숨을 구한 아르망이 아니라 자기가 도와준 다니엘을 사윗감으로 정하고, 앙리에트에게 다니엘과 친밀하게 지내라고 말한다. 페리숑은 다니엘을 점점 더 호감이 가는 사윗감으로 생각하면서, 시간이 흐를수록 자기를 살려준 아르망의 행동은 필요치 않았던 것처럼 여기게 된다. 게다가 자신을 구해 준 아르망의 선의가 진심이었는지도 의심하게 된다.     


이 희극에서 나타난 것처럼 우리의 마음속엔 이해하기 어려운 감정이 있다. 은혜에 대한 부채감으로 인해 자기가 도움을 받은 사람이라는 사실은 잊으려 하지만, 자랑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누군가를 도와준 건 기억하려는 야릇한 감정이다. 자기가 준 건 크게 여기고 받은 건 작게 여기려는 인간의 이기적 본성 때문이다.    



 

은혜를 고마워할 줄 모르는 사람들에 대한 일화가 하나 더 있다. 160년 전 미국에서 있었던 실화다. 자기 몸을 희생하면서 헌신적으로 여러 사람의 목숨을 구했지만, 대다수로부터 고맙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는 어느 청년의 얘기다.


1860년 9월 7일 금요일 밤 12시경, 시카고에서 출항하여 미시간 호수를 지나 밀워키로 입항할 예정인 증기선 레이디 엘진(Lady Elgin) 호에 승객들이 탑승했다. 4백여 명의 승객은 주 방위군과 그 가족들이었다. 그들은 군부대의 발전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여행을 계획했다.     


만찬과 춤에 이은 대통령 후보 스티븐 더글러스(Stephen Arnold Douglas)의 연설로 저녁 프로그램이 절정에 달할 무렵 비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기상 악화를 우려해서 항해 일정을 변경하려던 선장은 고심 끝에 출항을 강행했다. 늦은 밤까지 파티가 이어지자 승객들의 기분은 최고조에 달했고, 넓은 홀은 음악에 맞춰 춤추는 사람들로 붐볐다. 새벽 2시경, 배가 엄청난 충격을 받고 심하게 흔들렸다. 큰 충격으로 바닥에 쓰러진 승객들이 비명을 지르자 축제의 현장이 삽시간에 공포의 도가니로 변했다.     


범선 어거스타 호가 세찬 바람을 타고 전속력으로 돌진해 레이디 엘진 호의 왼쪽 뒷부분을 들이받았던 것이다. 두 선박은 비스듬히 충돌했고, 상대적으로 작은 어거스타 호가 더 큰 피해를 본 듯했다. 레이디 엘진 호 승무원들은 어거스타 호를 먼저 해안으로 돌려보내려고 신호를 보냈다. 반 시간쯤 지났을 무렵, 레이디 엘진 호의 보일러와 엔진이 갈라진 배의 바닥을 뚫고 올라와 선체가 점점 더 깨지기 시작했다. 거대한 증기선은 산산이 조각나면서 곧바로 침몰했다.     


생존자들은 구명정과 부서진 배의 파편에 의지해서 여섯 시간 동안 물에 떠 있었다. 번쩍이는 번개 빛에 미시간 호수에서 벌어진 참혹한 광경이 보였다. 북풍과 거친 파도에 휩쓸린 생존자들은 일리노이주 에번스턴 인근 절벽으로 밀려났다. 미시간호에서 들리는 비명에 잠을 깬 에번스턴 주민들은 급히 구조대를 편성했다.     


구조대원 중엔 신학을 공부하던 에드워드 스펜서란 학생이 있었다. 강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수영을 잘했고 조난자를 어떻게 구조하는지도 잘 알았다. 스펜서는 허리에 긴 줄을 감고 거대한 호수의 출렁이는 물결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는 거친 역류를 헤치며 허우적대는 조난자들에게 다가가서 그들을 한 사람씩 안전한 곳으로 끌어냈다.      


구조활동을 하는 스펜서의 몸은 파도에 휩쓸린 날카로운 선박 잔해에 이리저리 찢겼다. 얼굴에선 피가 흐르고 온몸이 쑤시고 아팠지만, 그는 계속해서 사람들을 구조했다. 지친 그가 모닥불가에서 잠시 쉬려고 할 때마다 파도 속에 허우적거리는 조난자들이 보였다. 그러면 스펜서는 보온용 담요를 벗어던지고 물속으로 다시 뛰어들곤 했다. 격랑을 거슬러 헤엄쳐서 사람들을 구할 때마다 근육 경련이 일어나곤 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구조활동을 이어갔다.     


286명이 사망한 날, 스펜서의 영웅적 구조활동으로 17명이 목숨을 건졌다. 그의 희생적 행동은 여러 사람에게 새 삶을 주었지만, 자신의 오랜 꿈을 무산시켰다. 무리하게 전신 근육을 사용한 후유증으로 중병을 얻은 그는 학업을 중단했고 신학자가 되는 꿈도 접어야만 했다. 7년의 투병 생활 끝에 32세로 요절한 그가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그때 미시간호에서 제가 구조한 사람 중에서 감사의 마음을 전해온 사람은 단 한 명의 소녀뿐이었어요.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들은 은혜도 깨닫지 못하는 것 같더군요.”     


페리숑처럼 자기를 구한 사람보단 자기가 구해준 사람을 더 좋아하고, 생명의 은인 스펜서에게 고맙다고 말하지 않았던 열여섯 명의 생존자와 같은 성향이 바로 우리 인간이 지닌 여러 가지 속성의 하나다. 이처럼 사람들은 대부분 페리숑 콤플렉스를 갖고 있다. 하지만 이런 인간의 본성 때문에 실망할 필요는 없다.     


심리학자 융(Carl Gustav Jung)이 말했다. “인간의 마음은 수많은 콤플렉스로 구성되어 있다”고. 이런 측면에서 보면 콤플렉스는 인간의 성격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 중 하나로 볼 수도 있다. 또한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는 콤플렉스를 마음에 박힌 못에 비유했다. “콤플렉스는 특정 상황에 대해 과도하게 방어하는 행위다. 과거의 충격적인 사건에 관련된 신호를 모두 다 위험한 것으로 받아들여서 방어적인 행동을 하는 것에 콤플렉스의 위험성이 있다. 콤플렉스 그 자체는 병적인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콤플렉스를 병적인 것으로 낙인찍고, 자신에게서 멀리 떨어뜨려 놓으려고 하면 콤플렉스가 마음에 박힌 못이 된다”는 것이다.     


콤플렉스가 없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눈으로 직접 볼 순 없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달의 이면(裏面)처럼 우리의 존재 이면엔 드러나지 않는 콤플렉스가 있다. 따라서 콤플렉스 자체를 없애려는 시도는 부질없는 짓이다. 자신의 콤플렉스가 뭔지 알고 그걸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자신의 콤플렉스를 부정하기보단, 그걸 분석해서 잘 끌어안고 사는 것이 더 건강한 삶의 방편이다. 콤플렉스를 알게 되면 자신의 약한 부분이 상처 받지 않게 스스로 보호할 수 있다. 자신의 콤플렉스를 알고 그걸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다.



아래는 이 에세이의 초고가 된 브런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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