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두 마리의 개를 키운다. 한 마리는 편견(偏見), 다른 한 마리는 선입견(先入見)이다. 우스갯소리처럼 들리지만, 인간은 편견과 선입견이란 두 마리의 개가 지키는 거대한 감옥 속에서 살아간다. 편견과 선입견은 다른 듯하지만 같은 이란성 쌍둥이다. 편견은 선입견에서 비롯되고, 편견 때문에 선입견을 품게 되기도 한다. 편견과 선입견은 모두 교만한 성품을 갖고 있다. 이 두 마리의 무서운 개를 한꺼번에 제압할 힘과 지혜를 가진 개가 있다. 일견(一見)이란 개다. 일견의 본명은 백문이불여일견(百聞而不如一見)이다. 일견을 키우면 편견과 선입견이 설치지 못하도록 잘 조절하고 적절히 통제할 수 있다.
인간은 편견과 선입견이란 두 마리의 개가 지키는 감옥 속에서 살아간다
편견이나 선입견에서 비롯된 유사한 성향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차별이다. 인간은 편견이나 선입견 때문에 타인을 차별하고, 그런 자기 행위의 정당성을 사회적으로 일반화시키려는 경향이 있다. 예화를 통해 편견과 차별을 제대로 이해하고, 마치 그것이 보편타당한 양 일반화시키는 것에는 어떤 오류가 있는지 살펴보려 한다.
편견은 공정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이다. 두 사진 속의 인물을 비교해 보자. 왼편은 어두운 표정을 하고 낡은 옷을 입었고, 오른편은 자신감에 찬 태도에 세련된 정장 차림새다. 좌측 사진만 보여주면서 이 사람의 직업을 맞춰보려고 하면, 고달픈 삶에 지친 노동자를 연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사진만 보고 그렇게 단정하는 경우는 낡고 더러운 옷을 입은 사람은 가난한 사람, 가난한 사람은 노동자란 편견을 가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동일 인물이며 포천(Fortune) 지(誌)가 선정한 500대 기업의 최고경영자인 곤살레스(Edgar Gonzalez)다. 선입견과 편견을 가지면 상대방을 제대로 알아볼 수 없다.
선입견과 편견을 가지면 상대방의 실체와 가치를 제대로 알아볼 수 없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글감을 찾으려고 거리의 부랑자들과 함께 지낸 어느 작가의 경험담이다. 브리즈번(Brisbane) 거리에서 휠체어를 탄 남루한 차림의 맥스 아저씨를 만나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그와 함께 초저녁부터 먼동이 틀 때까지 이야기꽃을 피웠다. 작별 인사를 할 무렵, 맥스는 자신이 유서 깊은 가문의 일원이라고 말했다. 그의 부친은 남아공의 재력가, 모친은 프랑스의 명문가 출신이라서 온 가족이 엄청난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심한 신체적 장애를 갖고 허름한 차림새로 새벽녘까지 길거리를 헤매는 맥스 아저씨가 백만장자였다는 걸 어떻게 상상할 수 있겠나? 선입견과 편견을 가지면 상대방의 실체와 가치를 제대로 알아볼 수 없다. 그렇다면 차별은 어떨까?
차별(差別, discrimination)이란 평등한 지위를 가진 다른 집단을 자의적 기준으로 불평등하게 대우해서 그 집단을 사회적으로 격리하는 통제 형태다. 차별받는 이들의 실제 행동과 무관하거나 관계없는 생각을 근거로 그들에게 열등성을 부여하는 제도적 관행을 통해 차별이 이뤄진다. 계층을 구분하는 언행이 차별로 여겨지는지 아닌지는 그 사회가 계층 구분을 인정하는가 인정하지 않는가에 달렸다. 사회적 차별은 평등의 기본원리를 표방하는 사회에도 존재하는데, 의도적 기만이나 무지에서 비롯되기도 하고, 제멋대로의 감정적 반응이나 전통적 편견으로 인한 것일 수도 있다.
20여 년 전, 유엔 파견근무를 위해 파키스탄 행정수도인 이슬라마바드에 거주할 때의 일화다. 유엔과의 계약기간 만료가 가까워져서 귀국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운전사로 고용했던 현지인 S의 누나가 동생을 잘 보살펴 줘서 고맙다며 만찬에 초대했다. 공무원과 결혼한 S의 누나 집이 근거리였기에 아내와 함께 초대에 응했다. 식사를 마치고 차를 마시는데 S의 매형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우리 가족의 귀국길에 S를 한국까지 데려가 달라는 부탁이었다. 한국에 돌아가면 S를 운전사로 고용할만한 생활 여건이 안된다고 했더니, 후견인으로 서울까지만 동행하면 도착 후엔 동생이 스스로 일자리를 구해서 살 수 있다고 했다. 정중히 사양하고 돌아오는데 아메리칸드림을 꿈꿨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S의 가족들도 학창 시절의 나처럼 코리안드림을 꿈꾸고 있었다.
당시 현지인 상류층과 외국인만 입주할 수 있는 아파트에 살면서 출입 통제가 심한 유엔 클럽과 고급 호텔을 자주 이용했기에 현지인들에 대한 우월의식이 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상주 운전사로 고용한 S도 많은 급여를 받으며 유엔 직원인 고용주와 같은 공간에서 생활한다는 상대적 우월감을 가졌던 것 같다. S는 사람이 많은 시장길을 지날 땐 자동차 클랙슨을 울리면서 "길을 비켜라. 귀한 분이 지나가신다"라며 현지인들을 향해 고함을 지르곤 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소중히 생각하지 않고 그 사람은 또 다른 사람을 그런 식으로 대했다. 난 당신보단 우월한 존재라면서.
한편, 동료 직원의 현지인 운전사 중엔 우리에게 자신감 있고 당당한 태도를 보인 K가 있었다. 그는 영화배우처럼 잘생긴 얼굴에 체격도 좋았고, 엉터리 영어를 하는 S에 비해 거의 완벽한 영어 회화를 구사했다. 그에게 “너의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온 것이냐”라고 물어봤다. K가 말했다. "1970년대까진 한국이 파키스탄보다 가난한 나라였던 걸로 안다. 한국이 파키스탄보다 잘살게 된 건 불과 20~30년밖에 안 되는데, 내가 왜 한국인들에게 비굴한 태도를 보여야 하나? 난 당신들에게 급여를 받은 만큼 운전만 해주면 된다." K는 S와 달리 현지인들에게도 매우 친절했다. 그에겐 S처럼 고용주에겐 약하고 다른 현지인들에겐 강해 보이는 이중적 태도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차이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차별이 만연한 사회구조에서 비롯된 행위라기보다는, 한 인간이 자기보다 약해 보이는 다른 인간을 대하는 개인적 태도가 아닐까?
어느 작가가 우리나라에 정착한 외국인 남편에 대한 이웃의 편견과 차별에 관한 수필을 썼다. 그녀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남편은 수도권 고등학교에서 원어민 영어 교사를 하고 있는데, 남편에게 막노동 일자리를 제의하는 사람을 간혹 만난다고 한다. 외국인 친구가 많은 그녀의 경험에 의하면, 백인 청년에겐 한국에 여행 왔냐고 물어보면서 흑인 청년에겐 일하러 왔냐고 물어본다고 했다. 이처럼 우리나라에도 편견이나 선입견을 품고 외국인에게 차별적 언행을 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이들의 행태를 한국인도 인종 차별한다고 일반화해서 주장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에서도 6·25 전쟁 이후 세대는 아메리칸드림을 갖고 살았다. 축복받은 땅이란 환상을 갖고 유학이나 일자리를 찾아 미국으로 떠났다가 금의환향하든지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획득해서 그 나라에 정착하는 꿈을 꾸곤 했다. 도시의 번화가에 즐비한 영어 간판을 보면 우린 여전히 그런 꿈을 갖고 사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풍요롭게 보이는 나라의 언어와 생활 방식이 우리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 나라에서 인종차별을 경험했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인종차별이 그 사회에 만연 하단 생각은, 꿈의 나라에 사는 완전한 인간으로 보이는, 그들 중 일부의 차별적 언행을 백인의 유색인종 차별로 일반화하는 건 아닐까? 그 사회 전반에 걸친 문제가 아닌데, 그렇다고 오해하는 건 아닐까?
일반화(一般化, generalization)는 세 가지 개념을 갖고 있다. 첫째, 특정한 대상에 관한 생각이나 연구 결과를 그와 유사한 대상에 적용하는 것이다. 여기서 본래의 대상과 적용 대상은 본질적으로 같은 특징을 갖는다고 전제한다. 둘째, 여러 개체가 가진 공통의 특성을 부각해서 하나의 개념이나 법칙을 성립시키는 과정이나 그 결과로 얻어진 진술이다. 과학의 법칙은 구체적 사상을 설명하거나 기술할 수 있는 보편적 질서라서 일반화와 동의어로 사용된다. 셋째, 특정 조건에 의해 학습된 행동이 그와 비슷한 조건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한 사람의 행위를 그 집단 전체의 행위로 간주하는 것을 일반화의 오류라고 한다
쉽게 말하자면 일반화란 어떤 특정 대상의 행동을 그 대상이 속한 집단의 모든 구성원에게 같이 적용하는 것이다. 그가 나쁜 사람이면 그가 속한 집단의 모든 사람이 나쁜 사람이라는 논리다. 하지만 그가 나쁜 사람이더라도 그가 속한 집단에는 나쁜 사람도 있고 착한 사람도 있다. 한 사람의 특정 행위를 그 집단 전체 행위로 간주하는 것을 일반화의 오류라고 한다. 그 사회 구성원 중 일부의 행태를 보고 그 사회에는 인종차별이 만연하다고 말하는 건 일반화의 오류가 아닐까?
사회적 동물인 인간사회에는 질서가 필요하다. 그 질서를 위해 지배자와 피지배자를 구분하는 성향이 있고, 과거엔 백인과 흑인, 귀족과 평민 등으로 계급을 나누기도 했다. 하지만 모두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다. 현대 사회에서 선입견과 편견으로 차별 대우를 하는 건 특정 개인의 성향일 뿐이다. 자신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경험했던 성숙하지 못한 개인의 특성을 두고 그 사회에 편견과 차별이 만연하다고 생각하는 건 편견과 차별, 그 일반화의 오류일 뿐이다.
* 이 글은 월간 [동원N예비군] 2021년 9월호 '나를 채우는 인문학'코너에 게재된 일곱 번째 에세이입니다.
[표제 사진 출처 : https://pro-papers.com/blog/writing-about-bias-prejudice-and-stereotyp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