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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nny Nov 03. 2021

구멍 난 양말이 더는 창피하지 않은 이유

직장 동료들과 휴게실에서 커피를 마실 때의 일이다. 한 선배 동료가 웃으며 말했다. “양말 오른쪽 뒤꿈치에 구멍이 났네? 요즘 삶이 고달픈 모양이지?” 슬리퍼를 벗고 오른발을 들어보니 양말에 제법 큰 구멍이 나 있었다. 무덤덤하게 그 선배에게 대답했다. “그러게요! 요즘 유난히 오른쪽 뒤꿈치에 구멍이 잘 나네요!” 사실이다. 며칠 전에도 오른쪽 뒤꿈치에 구멍이 났었다. 출근할 땐 괜찮았는데, 발뒤꿈치의 굳은살 때문인지, 지압용 슬리퍼의 울퉁불퉁한 부분 때문인지 양말 바닥에 구멍이 자주 생겼다. 하지만 그것에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집에 가면 언제든 새 양말로 갈아 신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구멍 난 양말을 창피하게 여겼던 유소년 시절이 있었다. 1970년대 그 시절은 너나 할 것 없이 어렵게 살던 시절이다. 구멍 난 양말을 꿰매어 신고, 구멍이 너무 커져서 다시는 기울 수 없을 때까지 신었던 기억이 난다. 그땐 친구가 양말에 구멍이 났다고 말하면 창피해서 귓불이 빨개지곤 했다. 새 양말은 없고 더는 꿰맬 수 없을 때까지 신어야 하는 양말만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노랠 불렀던 기억이 난다. “내 양말 빵꾸났네. 빵구 난 내 양말, 빵꾸가 안 난 것은 내 양말 아닐세.”     


퇴근해서 구멍 난 양말 얘기를 했더니 아내가 새 양말을 잔뜩 사 왔다. 젊은이들이 즐겨 신는다는 발목 양말이다. 똑같은 모양에 색깔만 달랐다. 발목 위가 없어서 시원했다. 요즘엔 색을 바꿔가며 그 양말을 즐겨 신는다. 동료들과 커피를 마시던 중, 슬리퍼를 벗어보니 양말 색깔이 달랐다. 한 짝은 흰색-회색-검은색, 다른 한 짝은 흰색-감청색-진청색 줄무늬 양말을 신고 있었다. 무늬는 같고 색은 다른 삼색 양말을 신었던 것이다. “어! 양말을 짝짝이로 신고 왔네!” 무심결에 내가 말했다. 한 동료가 웃으며 말했다. “작가 양반, 일부러 그렇게 신은 거 아냐? 언밸런스한 감각으로!”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젠 구멍 난 양말을 신거나 짝짝이 양말을 신더라도 창피하지 않구나! 그런 모습을 보고도 직장 동료들 간에도 서로 무안해하지 않고 그냥 웃어넘길 수 있구나! 그만큼 삶의 여유도 생겼고 마음도 풍요롭구나!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나타나기 전, 아내와 중국 장자제 여행을 할 때였다. 아침 6시 30부터 밤 10시까지 긴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을 때 아내가 말했다. “어! 양말이 구멍났네!” 아내의 양말 뒤꿈치 부분에 구멍이 나 있었다. 온종일 2만 5천 보를 걸으면서 관광을 하다 보니 양말이 닳았다. 평생 한 번은 가봐야 한다는 장자제 여행을 하면서 생긴 아내의 양말 구멍은 창피함이 아니라 즐거움이었다.     


몇 해 전, 군대에서 동고동락했던 전우가 고깃집을 차렸다며 SNS로 소식을 전했다. 그가 식당 홍보를 위해 올린 여러 장의 사진 중에 눈에 뜨인 것은 구멍 난 양말 사진이었다. 신장개업한 지 며칠 되지 않았는데 손님이 너무 많아서 하루에 한 번씩 양말에 구멍이 난다는 얘기를 썼다. 그의 구멍이 난 양말은 바쁜 노동의 결과이면서 엄청난 하루 수익의 표식이었다.     


내가 첫 출간했던 책의 어설픈 편집에 대한 독자평을 해 준 친구가 있었다. “당신 글을 브런치 앱에서 읽을 땐 좋았는데, 종이책을 구매하고 보니 편집이 조금 그렇던데! 전문가의 손길이 닿지 않아서 그런가?” 솔직하고 정확한 평가였다. 첫 번째 자가 출판했던 책은 그랬다. 출판을 위한 편집도 처음 해 보았고, 자가 출판을 지원하는 부크크 플랫폼의 기능도 잘 몰랐으며, 빨리 출간하겠다는 마음만 앞섰다. 그런데 그 친구의 비평이 기분 나쁘지 않고 오히려 고맙게 들렸다. 이미 자가 출판 방식의 종이책을 네 번이나 출간했기에 그 친구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출세를 추구하던 시절엔 다른 이들의 비평과 비난에 무척 민감했었다. 쓴소리를 새겨듣기보단, 비난으로부터 나를 방어하고 보호하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소모했다. 하지만 이젠 알고 있다. 외부로 드러나는 것보단 내면세계가 더 중요하다는 것과 내용이 형식을 지배한다는 것을. 그런데도 대중은 어떤 것의 외형을 보고 그 내면을 판단한다는 것도.     


구멍이 난 양말을 신는 것이 더는 창피하지 않은 이유에서 출발해서 외형보단 내면이 더 중요하다는 데에 이르렀다. 양말 얘기를 하다 보니 문득 그 유래가 궁금해졌다. 양말은 인간의 의복 중 가장 오래된 아이템 중 하나로 신석기시대부터 존재했다고 한다. 그땐 신발과 양말을 구분하기 어려웠고 신체의 일부인 발을 보호하기 위해 양말을 착용하기 시작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양말은 귀족들의 전유물이 되었다가 보편화되었다고 한다. 내친김에 양말의 어원, 그리고 그 기원과 역사를 살펴보자.     


우리가 사용하는 양말이란 단어는 한자에서 온 말이다. 우린 전통적으로 버선을 신었는데, 버선을 한자로 말(襪)이라고 한다. 개화기 이후 서양의 socks가 도입되면서 ‘서양식 버선’이란 뜻에서 양말(洋襪)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양말은 서양식을 의미하는 양(洋)과 버선을 뜻하는 말(襪)을 합한 것으로 서양식 버선이란 의미다.     


BC 8세기경, 동물의 털을 신발 깔창처럼 사용하거나 투박하게 발을 감싸는 방식으로 사용했던 것이 양말의 첫 등장이며 필로이(piloi)라고 불렀다. 이것이 중세시대에는 가죽이나 직물로 발을 감싼 형태로 발전했고, AD 2세기경 천 조각을 바느질해서 발 모양에 맞는 양말로 만들기 시작했다. 서양에서는 이를 우돈(udones)이라 칭했는데, 이것이 현재와 가장 유사한 최초의 양말이었다. 울로 만든 이 양말은 영국의 한 섬에서 발견되었는데, 방한용으로 사용한 걸로 추정한다. 당시 최초의 뜨개 양말도 이집트에서 만들어졌다. 엄지와 나머지 발에 낄 수 있는 형태로 짜져서 샌들과 함께 신도록 제작되었다. 우리나라의 양말인 버선도 삼국시대에 처음 제작되었다고 한다.     


AD 5세기, 양말은 유럽까지 진출했으며, 성직자들이 순결을 상징하는 퍼티(puttees)라는 양말을 신었다. 이 양말은 천으로 만들었으며 붕대처럼 발목에서 무릎까지 감싸는 것이었다.      

좌udones                                                                        우puttees


중세시대에 들어서 바지 길이가 길어졌고 양말도 다리 아랫부분을 덮고 있는 밝은색, 특히 흰색의 꽉 끼는 천이 되었다. 양말에 신축성 있는 밴드가 없어서 흘러내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양말 윗부분에 가터를 얹었다. 11세기에 니트로 짠 양말은 귀족의 복장이 되었다. 발레리노 의상처럼 레깅스와 비슷한 형태였고, 12세기 레깅스는 발가락 부분까지 가릴 수 있게 되었다. 12세기 말, 유럽의 노동자들은 거칠고 딱딱한 모직 양말을 신었지만, 귀족들은 섬세하게 만든 고급제품 양말을 신었다. 15세기까지 프랑스와 이탈리아 귀족들은 손으로 짠 비단 스타킹으로 부와 명예를 과시했다. 이러한 뜨개 비단 스타킹은 영국 상류층 사이에서도 유행이 되었고, 1490년경 옷처럼 만들어서 훗날 타이츠의 시초가 되었다. 점차 비단, 양모, 벨벳 소재가 등장했고, 나라마다 다른 색과 개성을 뽐내며 유행했다. 16세기 양말류는 엄격한 법으로 규제되었다. 1566년 런던시에서는 잘못된 형태의 양말을 착용하지 못하도록 경찰이 수시로 다리 검사를 하는 등 감시와 제재를 했다.     


1589년 영국의 목사 윌리엄(William Lee)에 의해 양말을 제작하기 위한 최초의 뜨개질 기계가 발명되었다. 그는 자신이 만든 검정 스타킹을 영국의 여왕 엘리자베스 1세(Elizabeth I)에게 선물했지만 발명 특허는 받지 못했다. 여왕은 기계로 짠 스타킹이 모양도 조잡하고 너무 거친 양털 스타킹이라고 불평했고, 기계가 사람들의 일자리를 빼앗을 걸 우려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프랑스 왕 앙리 4세(Henri IV)는 윌리엄의 발명품이 왕실의 재정에 부를 가져올 수 있다고 여겼다. 윌리엄은 프랑스로 거처를 옮겨 스타킹 공장을 지었다. 얼마 후 프랑스인들은 이 발명품에 열광했다. 하층민을 위한 양말을 양모로 제작했고, 귀족을 위한 색실 양말도 만들었다. 이렇게 제작된 스타킹은 상류층과 하류층 모두에게 환영을 받았다.     


17세기 후반에는 양말 소재로 면이 사용되었다. 바지가 길어지면서 양말 길이는 짧아졌고, 스타킹을 대체한 현대식 양말이 등장했다. 1938년 나일론의 발명과 함께 양말의 혁명이 시작되었다. 면과 나일론 혼방으로 만든 양말의 강도와 탄력이 예전의 모든 제품보다 탁월했기 때문이다. 이 시기의 방직이 현재까지 쓰이게 된 것이라고 한다.     


양말은 발을 보호하거나 따뜻하게 하려고 발명되었는데, 시대의 흐름에 따라서 귀족의 전유물이 되기도 했지만, 과학 문명의 발달로 모든 사람이 착용하는 의복류의 하나가 되었다. 현대사회의 양말은 패션 아이템이면서 스포츠 또는 레포츠 활동을 위한 기능성 품목이기도 하다. 예전엔 양말이 없어서 맨발로 다니거나 구멍이 난 양말을 신고 창피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일부러 양말을 안 신고 다니기도 하고, 구멍이 난 양말을 신어도 더는 창피하지 않다. 그만큼 물질적 정서적으로 안정된 삶을 영위하고 있기 때문이며, 외형보단 내면이 중요하다는 것도 알기 때문이다.


*  글은 월간 [동원N예비군] 2021 11월호 '나를 채우는 인문학' 코너에 연재 중인 아홉번째 에세이입니다. 개인적인 사유로 양해를 구하고 인문학 코너 연재를 종료했습니다. 마무리를 친절하게 공지해 주신 담당기자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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