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enny Oct 01. 2021

5분 후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우리네 인간사다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영화 기생충(Parasite)에서 부잣집 딸의 과외선생이 되기 위해 명문대생으로 위장하려는 아들(최우식)에게 아버지(송광호)가 한 말이다. 이 대사에 담긴 의미는 해석하는 이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유명해진 이유는 우리의 삶과 계획은 불가분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린 초등학교에서부터 일일 또는 주간 교육계획에 따라 행동해왔고, 방학 기간에도 계획성 있게 생활하라고 배워왔다. 군대나 회사에서도 일일·주간·월간·연간 계획대로 훈련하거나 일을 한다. 생애 주기 동안 우린 수많은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대로 살려고 애를 쓰지만, 실상은 5분 후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우리네 인간사다.     


5분 후도 예측할 수 없는 삶과 관련하여 직간접적으로 경험했던 몇 가지 사례를 제시해본다. 첫 번째는 이십여 년 전에 유엔군 옵서버로 근무했던 UNMOGIP(United Nations Military Observer Group in India and Pakistan)에서 경험한 일화다. UNMOGIP은 인도-파키스탄 간 분쟁 지역인 카슈미르(Kashmir)에서 양측의 휴전(Cease-fire) 준수 상태를 감시하는 조직이다.    



당시 유엔군 야전초소에서 함께 근무했던 이탈리아 육군 소속 동료의 이야기다. 사진 속 중앙, 두 사람 사이에서 활짝 웃고 서 있는 알도(Aldo Costigliolo), 그는 5분 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 전혀 상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이 사진을 찍었다. 2001년 6월 20일, 유엔과 알도가 맺은 근무 계약이 만료되는 날이었다. 그는 2년간 헤어져 살던 아내와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로마로 돌아갈 희망에 한껏 들떠 있었다. 알도는 근무 기간 만료에 따른 행정절차를 모두 마치고, UNMOGIP 본부에서 동료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 있었다. 이 사진은 이탈리아 동료 우고(Ugo Bani), 알도와 작가가 함께 촬영한 고별 사진이다.     


알도는 사진을 찍기 직전, 로마에 있는 아내 얘기를 했었다. 며칠 전 그의 아내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런 일은 있을 수도 없고 절대로 일어나지도 않겠지만, 만일 이번에도 당신이 로마로 돌아오지 않는다면 난 다시는 당신을 기다리지 않겠어요." 여러 차례의 해외 파병 경험이 있는 알도에게 그의 아내가 더 이상의 별거는 안 된다는 마지막 경고를 했다. 아내 얘기를 전하며 알도는 자신 있게 말했었다. "간혹 근무 연장 지시가 내려오기도 하지만, 미리 알려 주곤 했는데 근무 종료일인 오늘까지 아무 소식이 없는 걸 보면 난 절대로 근무 연장 대상일 리가 없어! 다른 이탈리아 동료들은 통상 1년 근무하는 UNMOGIP에 난 이미 2년이나 있었거든! 이번엔 반드시 로마로 돌아가야만 해. 아내와 이혼하지 않으려면 반드시!"     


알도의 귀국 축하 사진을 찍고 작별의 포옹을 하는데, 인사담당자가 묘한 표정으로 우리가 있는 상황실로 들어왔다. 그는 알도에게 별도로 전해야 할 말이 있다며 자신의 사무실로 데려갔다. 잠시 후, "오~ 마이 갓~!" 성난 사자처럼 포효하는 알도의 비명이 들렸다. 우고와 난 알도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알도는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채로 머리를 두 무릎 사이에 파묻고 있었다. 뭔지 알 순 없지만, 그에게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가가서 그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물었다. "알도! 대체 무슨 일이야? 혹시 내 도움이 필요하면 말해줘?" 알도가 풀이 죽은 목소리로 조용히 말했다. 이탈리아 수상이 조금 전에 UNMOGIP 본부로 긴급 이-메일을 보냈다는 것이다. 내용은 “이탈리아 육군 대위 알도 코스티글리올로와 유엔의 계약을 6개월 더 연장해 달라고 정중히 요청함. 그와 교대할 인원을 6개월 후에 보낼 수 있음”이었다. 알도는 우리와 함께 활짝 웃으며 고별 사진을 찍던 그 순간엔 몇 분 후의 상황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처럼 5분 후도 예측할 수 없는 게 우리네 인간사다. 이후 알도는 6개월을 추가 복무한 후에 가족에게 돌아갔고, 이탈리아 육군 대령으로 퇴역해서 지금은 로마의 적십자 단체에서 봉사활동을 한다고 SNS에 올렸다.     


두 번째는 인도 측에 있는 푼치(Pooch)라는 UNMOGIP의 야전초소에 근무할 때의 일이었다. 작전지역에서 팀원들과 함께 도로정찰 활동을 마치고 복귀할 때, 본부 상황실에서 급하게 무전으로 우리 팀을 찾았다. 무전 호출에 회답하자마자 본부에서는 우리 팀의 이상 유무를 물었다. 우린 팀원과 장비 모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본부로 보고했다. 우리 팀에 특이사항이 없다는 보고를 받은 본부에서는 신속하게 UNMOGIP 야전초소로 복귀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복귀한 후 본부로 전화를 걸어서 긴급 호출해서 팀의 이상 유무를 확인하고 조기 복귀시킨 이유를 물었다. 본부 상황장교에 의하면, 우리 팀의 도로정찰 경로에 있는 재래시장에서 자살폭탄테러 사건이 있었고 그로 인해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한다. 폭탄이 터진 시간을 확인해 보니, 우리 팀이 그 시장길을 지나간 지 5분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많은 사람이 몰려있던 시장길에서 교통이 혼잡해서 어렵게 빠져나왔는데, 거기서 5분 이상 지체했다면 폭탄테러 사상자 명단에 우리 팀원들이 포함될 뻔한 사건이었다. 당시 자살폭탄테러가 발생하기 직전에 사건 현장을 지나쳤기에 지금 이 순간에 인문학 수필을 쓰고 있다.     


다음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Leonrdo Wilhelm Dicaprio)가 주연한 영화로 유명세를 치렀던 타이타닉(Titanic)호 침몰 사건이다. 1912년, 영국에서 타이타닉이란 호화 여객선을 완공했을 때, 매스컴에서 배를 소개하면서 “조물주도 가라앉힐 수 없는 배(Even God himself couldn’t sink this ship)”라고 표현했다는 설이 있다. 4만 6천 328t, 265m의 규모, 승무원 400명, 객실 및 호텔 직원 518명, 승객 2천 433명으로 타이타닉호는 당대에 가장 큰 배였다. 여객선에는 거대한 체육관, 수영장, 스쿼시장, 미니 골프장이 있었고, 밤새워 즐길 수 있는 초호화 음식이 차려진 식당엔 오케스트라까지 있었다.     



1912년 4월 14일 영국에서 출항한 타이타닉호에 탄 사람들은 부호, 귀족, 고위 관료, 사업가, 외교관, 배우, 여행객 등 각계각층의 부유층 인사였다. 그들은 누구도 타이타닉호가 침몰할 것이라곤 상상조차 못했다. 새로 건조된 거대한 크기의 선체, 노련한 선장과 승무원들이 있었기에 세상의 어떤 배보다도 안전하다고 믿었을 것이다. 그 배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모른 채 “조물주도 가라앉힐 수 없는 배”에 탑승했던 승객들은 흥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타이타닉호가 캐나다 뉴펀들랜드(Newfoundland) 부근에서 빙산을 들이받고 서서히 가라앉으면서 1천 517명이 사망하기 전까지 그들은 그 배의 침몰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5분 후에 귀국 보류 명령이 내려올지 모르고 환하게 웃으며 동료들과 작별 인사했던 이탈리아 육군 대위 알도 코스티글리올로, 자살폭탄테러 사건이 발생하기 5분 전에 재래시장을 지나쳤기에 안전할 수 있었던 UNMOGIP의 유엔군 옵서버팀, 세상에서 제일 크고 안전한 여객선이라고 믿었던 타이타닉호에 탑승했다가 예기치 못했던 배의 침몰로 인생을 마감한 사람들. 이들 모두가 잠시 후에 자신에게 벌어질 일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5분 후, 한 시간 후,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 우린 전혀 알 수 없다. 5분 후도 예측할 수 없는 게 우리네 인간사라면 순간순간의 삶을 얼마나 신중하게 살아야 할까? 지금, 이 순간, 오늘 하루는 다시 돌이킬 수 없고 돌아오지 않는 소중한 시간이다. 그래서 지금 내게 주어진 시간,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이 가장 소중하다.     


어제는 이미 지나가서 돌이킬 수 없고, 내일은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기에 오늘이 중요한 건 아닐까? 오늘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두 개의 명구(名句)를 소개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세상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읽은 책인 성경에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라는 구절이 있다. 미국의 제32대 대통령 부인이자 사회운동가였던 엘리나 루스벨트(Anna Eleanor Roosevelt)는 오늘을 선물로 표현했다. “어제는 역사이고, 내일은 미스터리며, 오늘은 선물이다(Yesterday is history. Tomorrow is mystery. Today is a gift).”


* 이 글은 월간 [동원N예비군] 2021년 10월호 '나를 채우는 인문학' 코너에 연재 중인 여덟번째 에세이입니다.


* 이 에세이의 초고가 된 브런치 글입니다.

https://brunch.co.kr/@yonghokye/175


이전 01화 구멍 난 양말이 더는 창피하지 않은 이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