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대에 만났던 그를 다시 만난 건 오십 대가 되어서다.
오십 대의 어느 날, 친구 K의 소식을 들었다. K는 중학교를 마칠 무렵에 만난 친구다.
그 당시 우리 집이 서울에서 오산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난 주중에는 기숙사, 하숙집 등으로 옮겨 다니면서 서울 친구들과 어울려 학교를 다녔고, 주말에는 집에 내려가서 오산 친구들과 함께 지냈다. K를 알게 된 건 그때 오산에서 함께 교회 중고등부에 다녔기 때문이다. 주말에 함께 낚시를 하거나 자전거를 타기도 하고 방학 땐 함께 여행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늘 서너 명 이상의 교회 친구들과 같이 놀았기 때문에 K와 단둘이 길게 얘기했던 기억은 거의 없다. 십 대 시절의 K에 대한 기억은 그가 공부를 썩 잘한다고 들었고, 말수는 적었지만 친구들과는 잘 어울렸던 그런 아이였다. 그리고 고3이 되면서 우리가 만나는 시간은 점차 줄었고, 그 이후 점점 더 멀어져 갔다. 그리고 오랫동안 그를 잊고 지냈다.
K와 다시 연락이 닿게 된 것은 C를 통해서였다. 그때 그 시절 K와 C와 난 자주 어울렸다. C가 SNS를 검색하고 수소문을 해서 내게 전화를 한 것이었다. 내일모레 오십을 바라보던 때였다. C가 운영하는 생선구이전문점이 내 직장 근처에 있어서 C와는 자주 만나게 되었다. C는 대형 영화사에 다니다가 간부급 권고사직을 거절하지 못하고, 퇴사 후 이것저것 하다가 전문음식점을 차려서 제법 잘 운영하고 있다. C가 요리에 재능이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C가 구운 생선과 압력 돌솥밥과 각종 반찬은 정말 맛있다. 특히 조개젓 맛은 일품이다. 그렇게 C를 통해 연락이 돼서 K를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K가 C보다 먼저 날 찾았다고 한다. 어쨌든 그런 K의 소식이 내게 들려온 것이다.
K는 첫 직장으로 삼성물산에 취직해서 잘 나가는 사원이었다고 한다. 삼성에서 나와서 전자분야의 개인사업을 했는데 해외 공장도 두어 군데 운영할 정도로 규모 있는 회사로 성장시켰다고 했다. 그런데 대기업과의 불화로 큰 빚을 지게 되었고 그 빚을 다 청산하고 난 후, 지금은 조그만 제조업체를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K와 함께 일하는 직원들은 외국인 근로자를 제외하면 대부분 인맥으로 연결된 사람들이다. 기술자인 A실장은 K를 힘들게 했던 친구가 소개한 사람, 주간 팀장인 B는 초등학교 동창, 야간 팀장인 G도 어떤 지인과 연결된 사람, 회계업무를 처리해 주는 D부장은 멘토가 소개한 사람, 회사 자금을 직접 관리하는 E이사는 K의 부인, 그리고 나머지는 주야간 현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이다. 즉, K의 회사 한국인 직원들은 K의 신조인 "한번 입사하면 권고사직은 없다"를 지킬 수 있게 만드는 사람들인 것이다. 그런 K의 회사가 여러모로 어렵다고 C가 말했다. 특히 아르바이트생을 구할 수 없어서 일손이 모자란다는 것이었다.
K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가 가서 도와줄까? 일손이 달리면 내가 일용직 알바라도 할 수 있는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한 말인데, K가 그래 주면 좋다고 선뜻 대답했다. 퇴직을 앞두고 쉬고 있던 터라 노느니 장독 깬다는 말을 실천하러 짐을 싸들고 K의 회사로 내려갔다. 내가 한 일은 로봇 팔을 설치하기 전까지 제조품이 컨베이어를 타고 잘 지나갈 수 있도록 수작업으로 조절하는 것이었다. 시간이 남을 때는 제조품들을 밴딩 하거나 불량품을 골라내서 재활용할 수 있도록 불순물을 제거하는 단순 노동이었다. 주간에 일하고 야간엔 외국인 근로자와 맞교대를 한 후 K의 사무실 겸 숙소에서 한 달 반을 함께 지내게 되었다. 그리고 회사를 떠날 땐 오랫동안 조직을 관리해 본 입장에서 바라본 회사의 운영에 관한 내용을 꼼꼼하게 적어 주었다. 물론 K가 사전에 요청했던 것이다.
달포 동안, 하루 일을 마치고 저녁 식사 후엔 어린 시절의 이야기부터, 각자가 지금까지 살아온 얘기, 그리고 회사 운영에 관한 얘기까지 정말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그때 알게 되었다. K가 나와 말이 잘 통하는 친구였다는 것을. K도 마찬가지였다. 우린 서로 정말로 말이 아주 잘 통하는 친구였던 것이다. 몇 시간을 두런두런 얘기해도 대화의 소재가 끊이지 않았다. 세상사는 얘길 하다가 갑자기 철학적인 대화로 넘어갔다가 종교적인 논쟁을 하다가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갔다가 가족 얘기를 꺼냈다가 회사 일 얘기를 하다가 다시 삶에 대하여... 무궁무진한 주제로 어떤 얘길 꺼내더라도 서로의 대화가 끊이질 않았고 막힘이 없었다. 세상에 K가 나랑 이렇게 말이 잘 통하는 친구란 것을 왜 몰랐을까? 말이 통하는 친구를 만났을 때의 기쁨이란 이런 것이구나! 오십 평생에 오랫만에 말이 아주 잘 통하는 친구를 만나게 된 것이다. 몰라봐서 미안하다! 십 대에 서로를 알아봤다면, 삼십 년을 모르는 채 보내지 않았을 텐데!
그 친구는 무척 예민하다. 해외 출장을 갈 때도 얇은 실크 소재의 이불을 들고 다녔다고 한다. 그 이불을 덮지 않으면 어디서든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들었다. 부도가 난 이후에 생긴 트라우마인 것 같다고도 했다. 그리고 K는 누군가와 함께 같은 방에서 잠을 못 잔다고 한다. 그래서 아들을 낳은 이후로 지금까지 아내와 각방을 쓰고 있다고. 같은 방을 쓰려고 한번 시도했다가 서로 불편해서 줄곧 따로 잔다고 했다. 그런 K가 나와 함께 며칠씩 지방 출장을 가서 모텔 방 하나를 예약하고 같은 방에서 잠을 잤다. 늘 들고 다니던 실크 소재 이불을 덮지 않고 잠을 잘 잤다. 그 자신도 신기하다고 했다. 우린 일을 마치면 늦은 밤까지 모텔 방에 앉아서 때론 누워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시간이 얼마나 흐르는 줄도 모를 정도로 긴 시간 동안. 서로 말이 통하니까! 그러다가 스르르 잠이 들곤 했었던 것이다.
K는 내 아내와도 동향이고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낸 친구사이다. 한 번은 K가 내 아내와 오랫동안 나와 함께 지내는 얘기를 전화로 통화했는데, K의 아내가 어떤 여자와 저런 말투로 저토록 오래 전화 통화하는지 궁금해하면서 살짝 질투심을 비치기도 했다고 한다. K와 C와 부부동반으로 가끔 만났고 지금은 계를 들어서 세 부부가 함께 하는 해외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K가 우릴 만나면 얼굴에 화색이 돈다고 했다. K의 몸과 마음이 다시 건강해진 것 같다고도 했다. K의 아내가 내 아내에게 한 말이다.
말이 통하는 친구를 만난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다. 나도 K를 만나면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다. 연애 기간을 포함하면 40여 년 가까이 알고 지낸 아내에게도 때론 말할 수 없는 일이 있다. 하지만 K에겐 할 수 있다. 그 친구도 나를 만난 이후, 트라우마에서 어느 정도 해방된 것 같다. 끊었던 신앙생활도 다시 하게 되었다. 몸도 마음도 다시 건강을 되찾고 있다. 말이 통하는 친구를 만난다는 건 이런 것이다. 말이 통하는 친구는 정말 좋은 친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