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 이에 따라 때론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때론 감성적으로 말하는 것
말을 잘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글을 잘 쓴다는 것은 내 경험과 내 생각을 누구나 이해할 있도록 글을 쓰는 것이다.
그러면 말을 잘한다는 것은 내 경험과 내 생각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말을 하는 것인가? 어떻게?
학창 시절, 언젠가 선생님과 같은 반 친구들 앞에서 특정 주제에 대한 발표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만 해도 여러 사람 앞에 서는 것을 부끄러했던 숫기 없는 아이였다. 발표를 마치고 내 자리로 돌아가 앉았을 때 무슨 말을 어떻게 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었다. 그런데 학생들의 발표가 모두 끝난 후 선생님께서 총평을 하시면서 내게 발표를 참 잘했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발표를 잘했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채점표의 많은 부분에 체크를 하셨다는 것인지 내가 정말 말을 잘했다는 것인지는 지금까지 알 수 없다.
여하튼 그 이후로 상급 학교로 진학할 때마다 토론, 발표 또는 논술이 비중을 크게 차지하는 과목에선 우수한 성적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심지어 어떤 때는 토론을 마친 후, 한 미국인 유학생이 "너의 입술과 혀는 신이 내린 은총이다"라는 극찬을 한 적도 있었다. 나는 말을 잘하는 것일까?
나 자신은 스스로 말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일상생활에서 지인이나 친구들과 대화를 할 땐 내가 그 중심에 서지 못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아내와 얘기를 할 때, 특히 서로 의견이 엇갈릴 땐 늘 아내에게 밀리곤 한다.
학교에선 발표를 잘한다거나 말을 잘한다는 평을 받는 데, 일상생활에선 말을 잘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공감대와 소통"의 문제는 아니었을까?
학교에선 동일하거나 연관된 주제를 놓고 토론하고 발표하기 때문에 듣는 이들과의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고, 교사나 다른 학생의 경우도 상대방의 말을 경청할 준비가 되어 있었기에 그들과 소통이 가능했던 것이다.
하지만 일상생활의 대화에선 그 주제가 실로 다양하다.
화제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이 되어 있지 않다거나, 서로 집중하지 않을 땐 소통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난 상대방이 듣기를 원하는 말보단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주로 하는 편이다. 아내에게 자주 듣는 말이다.
학교에선 경청할 자세를 갖춘 상대방에게 논리적으로 말을 했기에 그들은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는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대화보다는 감성적인 대화가 많다.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대화는 재미가 없다. 그런 말을 듣고 싶어 하는 친구와 아내는 없을 것이다.
친구들이나 아내와 얘기할 땐 이성보단 감성에 호소해야 그들이 내가 하는 말을 들을 것 같다.
토론 학원 원장을 하는 어떤 이가 "말을 잘한다는 것"에 관한 칼럼을 일간지에 이렇게 썼다.
대화의 기본은 말을 주고받는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하는데, 말을 못 하는 사람들은 남의 말을 잘 듣지 않기 때문에 소통이 안되고 대화가 이어지질 않는다. 말은 많이 한다고 해서 말을 잘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말을 잘하기 위해선 이런 노력이 필요하다.
첫째, 상대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도록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정보를 듣고 싶어 하는지' 등에 대해 미리 고민한다.
둘째, 상대방에게 호감이 가는 말을 하기 위해선 스토리텔링이 필요하다. 말을 못 하는 사람의 또 다른 특징은 그 사람과 대화를 하면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셋째, 말을 잘하기 위해선 상대방의 눈을 보면서 말을 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 관계는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