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영토와 민병철 토익학원, FRIDGE와 FREEZER
소통(疏通)이란 "막히지 아니하고 잘 통함,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음"이라고 국어 표준대사전에 나와 있다. 소통과 같은 의미로 사용하는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이란 "사람들끼리 서로 생각, 느낌 따위의 정보를 주고받는 일. 말이나 글, 그 밖의 소리, 표정, 몸짓 따위로 이루어진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쉽게 말하면 소통이란 "서로 잘 통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소통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서로 간에 노력하지 않는다면 더욱 그렇다. 각자 처한 문화와 환경이 다를 경우, 특히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성향이 다를 경우 더더욱 그렇다. 소통의 어려움에 관한 두 개의 에피소드를 소개하려고 한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소통의 어려움으로 당혹스러운 경우가 간혹 생긴다. 20여 년 전, 유엔군 옵서버로 인도와 파키스탄 간 분쟁지역인 캐시미르(카슈미르, Kashmir)에서 1년간 활동할 때의 일이다. 핀란드 동료가 작전활동을 나가면서 FINLANDIA라는 보드카 1병을 내밀며 내게 말했다. "친구야! 내가 작전활동 갔다 와서 저녁에 마실 수 있도록 이 보드카를 '프리저'에 보관해 주면 정말 고맙겠구나!" 나는 대답했다. "물론이지, 걱정 말고 다녀와라, 친구!" 그리고 나는 FINLANDIA를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 저녁에 핀란드 동료가 돌아와서 내게 물었다. "친구! '프리저'에 보드카가 안 보이는 데 어디에 두었지?" 나는 냉장고 문을 열고 시원해진 FINLANDIA를 꺼내서 그 친구에게 주었다. 그 순간, 당황한 듯 벌게진 얼굴로 그 친구가 말했다. 자기가 '프리저'에 보관해 달라고 했는 데 왜 '프리지'에 보드카를 넣어두었냐고! 네가 나의 멋진 저녁시간을 망쳤다고!
당시 나는 fridge(냉장고)와 freezer(냉동고)라는 단어의 의미를 정확히 몰랐다. 그냥 refridgerator(냉장고 또는 냉각[냉동] 장치)라는 포괄적 의미의 단어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보드카를 냉동고에 얼려서 슬러시처럼 만들어 마신다는 것도 몰랐다. 그래서 freezer에 넣어야 할 FINLANDIA를 fridge에 보관했던 것이다. 그 친구가 '프리저'에 넣어 달라고 했을 때, '프리저'가 냉동실인지 냉장실인지 한 번만 확인을 했더라면, 아니면 보드카는 냉동시켜서 슬러시처럼 만들어 마신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그런 에피소드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이처럼 때때로 소통은 어려운 것이다.
어느 캠퍼스 커플이 있었다. 남자 친구가 군에 입대하게 되었고 한동안 연락이 끊겼다가 만기 전역을 앞두고 여자 친구와 다시 연락이 닿았다. 그들은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였다. 여자 친구가 만나자고 한 장소는 '민토'였다. 그녀가 남자 친구를 군에 보내고 나서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친구들과 자주 어울리던 사진 속의 '민들레 영토'가 바로 그 '민토'이다. 그런데 전방 오지에 근무하던 남자 친구는, 최근에는 '민들레 영토'가 대학생들의 만남의 장소라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 그는 군에 입대하기 전 그녀와 자신이 함께 다녔던 '민병철 토익학원'을 '민토'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흘러 남자 친구는 전역을 하였고 약속 날짜가 되었다. 남자 친구는 약속시간보다 30분 일찍 자신의 '민토'인 '민병철 토익학원'으로 달려갔다. 한 시간, 두 시간이 지나도 여자 친구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 시간에 여자 친구는 그녀의 '민토'인 '민들레 영토'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오랫동안 만나지 않았던 그들이 생각하는 '민토'는 완전히 다른 장소였다. 30개월간 전방 오지에서 군 복무를 한 남자 친구를 배려해서 여자 친구가 '민토'라고 줄여서 말하지 않고 '민들레 영토'에서 만나자고 하였다거나, 남자 친구가 약속 장소인 '민토'가 '민병철 토익학원'이 맞는지를 여자 친구에게 정확하게 확인하였다면 그들의 의사소통에 전혀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두 개의 에피소드처럼 소통은 어렵다. 상대방의 문화와 환경을 이해하고, 각자의 관점과 성향을 존중할 때만이 "서로 잘 통하는" 소통을 위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