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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은 아직 겨울

by 김호섭 Feb 1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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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은 어떤 특정한 시공간에서 읽어야 제대로 맛이 난다. 온전히 어울리는 옷을 입은 듯, 몸과 정신의 얼개가 딱 들어맞아가며 저도 모르는 사이에 홀딱 빠져드는 책이 있다.




낮잠 한숨 때리고, 마냥 흐뭇해진 백수의 오후 일정을 슬슬 시작하는 시간. 오후 두 시에서 세 시 사이. 구도심의 오래된 공원, 그 공원 허리춤에 넉넉히 자리한 한옥 건물. 인천 시민들의 거실 같은 공간, 인천시민애(愛)집. 바로 그 시공간, 폭신하고 포근한 1인용 소파에 앉는다. 그 유명한 김애란 작가님의 <바깥은 여름>. 서두에서 밝힌 바로 그 책을 펼쳐든다. 아마도 작년 여름이었을 것이다. 이 책을 처음 만난 계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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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멈추고 공간은 덩실 둥실 춤 춘다.

열 번 정도 이곳에 왔어도 아주 천천히 읽다 보니 이제야 절반을 읽었다. 굳이 여기서 이 책을, 이 시간에만 읽는 이유는, 도서대출이 안 된다는 일차적인 이유가 있지만 그 이유가 전부는 아니다. 온라인 서점에서 구매하거나 우리 동네 꿈벗 도서관에서 대출하면 손쉽게 구할 수 있겠으나, 어떤 책은 사람처럼 만남과 인연에 정과 성을 들여야 한다는 나름 확고한 신념 때문이기도 하다. '다 읽은 어느 날엔가, 서점에 가서 새 책을 품에 안고, 이 시공간의 기억을 함께 담아와야지'라는 일정계획은 꼼꼼하다.  세시 반부터는 광장에서 오후 댄스 타임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백수가 과로로 쓰러진다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은 아닌 듯 싶다. 하여튼 즐겁게 바쁜 나날이다.

우선, 이 책의 제목에 꽂혀 한참을 표지에 머물렀다. 세부 목차를 봐도 <바깥은 여름>이라는 소제목의 글은 없고, 한 두 편의 글을 읽어도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바깥은 여름>. 이 제목의 의미는 과연 무얼까. 제목에 함축된 작가의 메시지는 무엇일까. 프롤로그는 아예 없으니 에필로그를  넘겨볼까 하다가도 그런 우를 범하지는 않는다. 초록창의 도서평도 리뷰도 검색하지 않는다. 검색보다 사색을 좋아라 하는 소년은 후루룩 뒤로 달려가 에필로그를 미리 펼치지 않는다.


책의 본문을 충분히 읽고 작가의 세계를 탐색하고 난 후에 짜잔하고 만나는 에필로그!. 그 짜릿한 감동과 감탄, 그리고 공감과 감사의 도파민을 접하는 순간과 묘미를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흔한 독서 중에 이런 기가 막힌 경험은 흔치 않다. 마치, 인천 화평동 냉면골목 할머니네 냉면을 감미롭게 음미한 뒤, 마지막 남은 반쪽짜리 삶은 달걀을 입으로 목으로 가슴으로 야무지게 넘기는 그 순간의 감칠맛. 그 맛일 테다. 맛의 경험은 독서나 음식이나 귀하다. 귀한 만큼 참으로 근사하다. 오래된 한옥의 처마 끝처럼.

그런데 에필로그마저 없다면 어쩌지? 그래도 걱정하진 않는다. 그때의 내가 알아서 할 일이고, 알아서 느낄 마음이니까. 끝까지 모르고 미궁에 빠져도 할 수 없다. 이 또한 독서의 묘미, 열린 결말로 이끄는 작가의 의지일테니.




오늘은 외국 관광객 한 팀이 우르르 들어온다. 아마도 중앙아시아 쪽 키르기스스탄이나 우즈베키스탄 사람들 같다. 입장하자마자 이리저리 둘러보고 사진 찍는다. 이국의 남다른 풍취와 장면과 여행의 추억을 담아가려는 모습이다. 미동도 없이 책을 읽고 있는 나는 삼매경이지만, 관광객들을 위해 잠시 자리를 피하려 일어선다. Stay there and keep reading ~. 괜찮으니 거기에 계속 앉아 책 보시라. 관광객이 미소 지으며 말하고 연신 셔터를 누른다. 그들이 담는 풍경 속에 나 또한 어쩌다 풍경이 되었다. 대한민국의 깊은 멋은 한옥처럼 그윽하고 깊은 아름다움에 있다 하니, 나도 그처럼 아름다운가. 설마 그럴 리가.


그런 의미보다는, 책 읽고 있는 나의 모습이 한국의 책과 한옥과 함께 그들에게 인상 깊은 어떤 한 문장이 되었다면 그저 고마울 뿐이다. 이러한 자평은 한복집 아들이었던 나에게 어쩌면 자연스러운 인식의 연장선이기도 하겠고, 미지의 세계를 찾아 떠나는 소설가 지망생의 상상의 나래이기도 하겠다.

관광객들은 빠져나가지만, 나는 다시 책 속으로 스며 들어간다. 문장의 바다는 깊고도 넓으니 아직 김애란 작가님의 깊은 뜻을, 제목의 의미를 헤아릴 수 없다. 좀 더 들어가 보자. 작가님의 안과 바깥, 그가 바라보는 사람과 세상의 풍경이 궁금하다. 다 읽고 나면 조금이라도 헤아릴 수 있기를 살며시 소망해 본다.


나의 <바깥은 아직 겨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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