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우리네 일상

by 김호섭


"혹시, 최근에 사람 많은 데 간 적 있으세요?" 젊은 의사는 물었고, "아니요. 워낙 집돌이 스타일이라..." 나는 대답했다. 대답과는 달리, 늘그막에 일자리 구한답시고 전철 타고 버스 타고 사람들 사이에 이리 치이고 저리 차이며 돌아다니던 최근 모습이 떠 오른다. "폐렴입니다. 폐렴은 처음이시죠? 사람 많은 데 다닐 때는 마스크 꼭 써야 하고 잘 써야 합니다. 대충 걸쳐 쓰지 마시고... 기본적으로 자신은 스스로가 챙기고 보호해야 합니다."

신박한 의사 양반이다. 어떻게 아셨을까. 마스크를 쓰기는 써도 대충 걸치고 다니는 나의 형식주의에 따끔한 진단봉으로 의학적, 철학적 처방을 내리신다. 독한 항생제와 달디달고 달디단 링거수액이 동시다발로 온몸에 쏟아진다. 콸콸콸. 급류에 휩쓸려가며 내가 본 것은 잔뜩 흐린 하늘이었다.



띵동. 산소호흡기에서 나는 소린 줄 알았는데 정신 차려 보니 휴대폰이다. "김땡섭님 최종합격 되셨습니다. 출근 일정과 세부 사항은 메일을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 얼마 전에 면접 본 IT업체에서 온 문자다. 나는 옆으로 돌아 누웠다. 간호사 선생님들이 보고 있기 때문이다. 흐르는 건 항생제인가 링거수액인가 오래된 장독대에 켜켜이 쌓아 올린 정화수인가. 육십일 세 노익장의 주책맞은 감성인가.

일주일만에 퇴원 수속을 하는데 의사가 말한다. "연배에 비하여 회복속도가 굉장히 빠르십니다. 기본 체력이 좋으신데 무슨 운동하세요? 그래도 마음 놓지 마시고, 보름정도는 더 통원치료 받으셔야 합니다." 효리의 반달눈에 버금가는 미소와 빨간머리앤의 주근깨가 유달리 돋보이는 젊은 의사가 어여쁘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인천 의료원 정문을 나서면서 또또또 나는 한참을 출발하지 못했고, 비도 안 오는데 애꿎은 윈도우브러시만 바빴다.




다시 돌아올 일상이 있다는 건 감사한 행운이고 큰 복이다.
다시 길 위에 오른다. 단순하고 꾸준하게 밀고 가는 일에는 조용하지만 맹렬한 힘이 있다고 나는 믿는다.

다시 걷고 쓰고 춤춘다.


힘들거나 기쁘거나 일희일비 업다운 파도에 휩쓸려 출렁이지 말고, 어떠한 순간이 오더라도 놓지지 말아야 할 무엇이 있다. 나는 그걸 <우리네 일상>이라고 부르고 싶다. 소소하고 흔해도 참으로 소중한.

정년퇴직 육 개월 만에 다시 일터로 나설 준비를 한다. 새롭게 맞이할 그 시간에는 '언제까지 밥벌이를 해야 하나'라는 그늘 보다는 '평생 현역으로 당당히 살아가자'는 단호한 햇살에 기대어 보련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시장에 들러 옥수수 두 개 사다가 옥수수 밥 해 먹어야겠다.
살짝 왔다 간 폐렴 위로 옥수수 알갱이가 잔잔히 내려앉겠지. 꽃눈처럼.


허리 꺾이고 비에 젖어도 길가에 따뜻하고 노릇한 열매 하나 익어 가겠지. 사랑처럼. 봄처럼.



#인천 #인천의료원 #폐렴 #재취업 #퇴원 #자유공원 #cafe023 #보람마트 #시베리아호랑이 #다시 #일어섭니다 #걷기 #쓰기 #그리기 #벗님들 #힘찬 #응원덕분 #입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