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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미 Jun 02. 2024

일본 유학을 떠나다

두려움 없는 젊은 나

처음 일본에 유학을 온건 25년 전 1999년이었다. 한국에서 직장을 다니면서 일본어 공부를 하다 강사의 한마디가 뇌 속에 머물렀다. '어학공부는 본국에서 2년 한 것이, 현지에서 6개월 한 것과 비슷한 수준이 된다'라는 말을 해 주었고 그 말로 인해 내 인생은 한순간에 바뀌었다. 현지에서 2,3년을 공부하면 여기서 공부한 배는 얻을 수 있고 유학생 신분이 되는구나! 그러면 이러고 있을 바에 일본에 유학을 가는 편이 훨씬 빠르게 일본어를 잘할 수 있게 되는구나! 그러고는 바로 일본 유학을 준비하고 유학길에 올랐다. 물론 집에서 아무런 연고지도 없는 타지에 어린 딸을 혼자 보내기에 걱정도 있었고, 여러모로 넉넉지 않은 가정 형편상 반대도 많았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 하고 싶은 건 하고 말아야 속이 풀리는 성격상 엄마에게 편지와 다짐을 하고 6개월치의 기숙사비와 학비만 준비한 채로 무작정 떠났다.


도쿄에서도 부유하기로 유명한 아오야마에 있는 어학교를 다니면서 신주쿠 가부키초의 라멘집과 기숙사 근처 작은 레스토랑에서 알바를 하며 유학 생활을 보냈다. 몸은 고되고 통학 전철 안에서 입 벌리고 침 흘리며 잠들어 버릴 정도로 육체적으로 힘들었지만, 정신적으로는 신선한 체험이기도 하고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는 기분으로 충실한 하루하루를 보냈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통학하는 전철 안은 콩나물시루에 겨우겨우 올라타 문이 닫히는 입구에 간신히 몸을 비집어 넣어야 탈 수 있었다. 그 문에 기대고 서서 바깥 풍경을 봤는데 태양이 환하게 비추는 게 희망으로 보였고 자유로움을 느꼈고 그게 행복이었다. 지금까지도 그때 그 기분을 똑같이 느낀 적은 없다.


벚꽃 명소로 유명한 우에노공원 (실제로 보면 스케일 장난 아님)


알바를 해도 생활비만 간신히 버는 정도였고, 다음 학기와 대학 등록금은 엄두도 내질 못했다. 어쩔 수 없이 유학생활은 1년도 채 안 돼서 접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짧고 아쉬운 유학 생활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한국에 돌아와서 다시 직장 생활을 하면서 언젠간 다시 일본 유학을 가서 일본에서 통역사가 되리라 마음먹었었다. 그리고 2010년 두 번째 유학길에 올랐다. 30대 초반이라는 나이와 사회 경험을 쌓아서 그런지 이번에는 집안에서 반대도 없었고 부디 즐겁고 행복하게만 살아달라는 부탁만 들었다. 꽤 신뢰를 얻고 있는 장녀였다.


통번역으로 커리큘럼이 잘 짜여있는 것으로 유명한 학교에서 공부했고 이번에는 무사히 졸업해 로컬여행사에 파견사원으로 근무를 시작하게 되었다.


좌충우돌 직장생활에 대해서는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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