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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미 Jun 15. 2024

일본 여행사 오퍼레이션 근무

기대에 부푼 신입 아닌 신입 같은 파견사원

로컬 여행사 파견사원으로 일본에서의 직장생활을 시작하다.


일본은 자연과 전통이 잘 보존되고 있고 풍부한 먹거리와 볼거리로 관광업이 발전된 나라다. 관광업이 일본의 국가 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특히 해외 관광객의 유입 즉 인바운드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일본이 거의 압도적이다. 인바운드뿐만 아니라 현지인 관광객에 의한 국내 여행 수요도 많다. 휴가철이 되면 해외로 나가는 사람도 있지만 가까운 피서지로 여행을 나가는 사람도 많다. 도쿄나 수도권 근방에 사는 사람들은 신칸센으로 한두 시간만 가면 바다가 있고 온천이 있으며 신선한 회를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시간과 예산이 적은 사람은 국내 여행을 선호하기도 한다.


일본 여행업계는 거대 항공사 ANA / JAL, 대형 여행사 JTB / HIS그룹 /Kinki Nippon Tourist에서 전국 네트워크망을 가지고 운영하며, 일본 여행업계 전체 셰어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과 같이 사계절이 뚜렷하기 때문에 시즌성 패키지 상품도 많이 출시된다. 대표적인 계절성 여행상품으로 봄에는 벚꽃놀이와 딸기 따기, 여름에는 불꽃놀이와 오봉 마츠리가 있고 가을에는 단풍놀이, 겨울에는 스키시즌 상품들이 많이 출시된다. 버스투어 상품도 많다. 버스투어는 버스가이드 1명과 첨승원 1명이 동반되는 투어가 대부분이다. 나 홀로 투어족과 고령자들은 당일치기 버스 여행을 자주 이용한다. 여행인솔자를 일본에서는 첨승원添乗員이라고 한다. 나는 자격증만 취득하고 실제로 국내여행 인솔자로 활동하지를 못해 장롱 속에 썩어 있는 자격증이 되어버렸다.


가지고 있는 자원이 많은 일본 여행업계에서 멋진 풍경과 자연 그리고 최첨단 시설 및 역사 사적을  잘 구성해서 힐링 여행코스를 만들고 싶었다. 여행사에서 근무하면서 고객에게 만족을 주는 여행상품을 기획할 수 있으리라는 큰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일반사무직 파견사원 구인광고는 언제나 넘쳐난다. 여행업계의 파견사원 공고도 많다. 10년 전 파견사원으로 일을 시작할 때는 면접이라는 개념보다 '顔合わせ'(대면이라는 뜻)이라는 명목하에 파견元와 파견先에 가서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하고 업무에 대한 설명을 듣고 서로 같이 일할 의향을 확인하고 동의하에 시작일을 정하는 식이다. 일본어를 어느 정도 말할 수 있고 PC스킬만 있으면 비교적 쉽게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파견사원 중에는 주어진 일만 담담하게 수동적으로 일하는 것이 편해 파견으로만 활동하시는 분들도 있다.


코로나 이후 요즘은 온라인 예약이 주를 이루지만 초고령노약자 사회인 일본은 여행사 창구에 직접 방문하거나 전화 문의와 예약 변경도 많이 발생한다. 여행사 창구에는 종이 전단지나 정기적으로 발행하는 책자를 진열해 놓는다. 인쇄물을 만드는 작업도 파견사원들이 주로 담당한다. 성수기에 주로 많은 상품이 나오므로 단발적으로 파견사원을 고용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위 나열한 모든 초대형 여행사에서 근무할 수 있는 경험을 했다. 회사를 옮겨서 일을 할 때면 사람, 일하는 방식,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것도 하나의 중대한 업무이다.   


내가 주로 담당해 온 업무는 패키지상품 수배, 국내 항공권, 숙박시설 예약 변경 접수하고 처리하는 여기서는 통상 '여행 오퍼레이터'라 부르는 일을 했었다. 일본 국내여행 패키지 및 숙박시설, 항공권 예약을 전화로 접수받고 시스템에 입력하는 간단한 일이지만 전화 응대도 일본 국내인을 상대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전부 일본어로 이루어진다. 나는 유일한 외국인 오퍼레이션이었지만 다른 일본 오퍼레이션의 전화 응대를 녹음해서 그들의 발음, 억양, 돌려서 거절하는 법, 말투를 그대로 따라 하는 연습을 하곤 했다.


일본어는 비즈니스어가 따로 있다. 존경어/ 정중어 / 겸양어/ 겸손어가 있어서 사내 외 어디에 쓰는지 잘 구분해서 써야 한다. 일본 비즈니스 사회에서는 이 말을 잘 구분해서 쓰는 것을 기본 상식으로 여기고 있다.

덕분에 나는 전화응대 혹은 비대면에서라면 일본 현지인처럼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전화를 걸어온 고객은 내가 외국인인걸 알아차리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지금은 일본어를 구사하는데 자연스럽지만, 10년 전에는 어눌한 점도 있었을 텐데, 고객이 전화받는 오퍼레이터가 외국인이라며 클레임을 걸어온 적은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눌한 어투를 쓰는 외국인에게 더 친절한 일본인의 심리가 반영된 것이리라 생각된다.  오히려 같은 오피스 내에서의 감시가 심했다. 다른 누구보다 행동에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는 것 같았고, 일을 효율적으로 빨리 처리하고 다른 일을 하려고 해도 무슨 문제가 있을 것이라며 의심을 당하기 일쑤였고 다른 일거리를 주지도 않았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몇 년을 천대받는 취급을 당하면 자연히 자기도 모르게 기를 펴지 못하고 주눅 들고 어딘지 자신감이 없는 사람처럼 살아가게 된다.


어쩌면 이방인이라는 사실만으로 나 스스로가 서러움을 자진해서 받아들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JTB 그룹사에서 운영한 '한일 관광 진흥 협의회' 진행원으로 근무했을 때   


나는 여행 오퍼레이터로 몇 년의 경력을 쌓았고 클레임 처리 및 문제해결 능력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업무를 빨리 파악해 영역을 늘리고 인정을 받으면 고용형태를 바꿀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파견사원이라는 입장은 생각보다 일이 한정적이고 계약을 변경하거나 직접 고용으로 연결되는 경우는 거의 불가능했다. 또한 여행업계의 페이 체계가 일반 사무직보다 낮게 측정되었다는 것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이후의 직장생활은 통번역사원으로 전직하게 되었다.

다음회에서 이어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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