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우 이야기
“야! 너 내 개인정보 팔았어? 그건 그렇고 네 매형한테까지 연락 오게 하면 어떡해?!! “
“내가 진짜 너 때문에 돌아버리겠다 정밀!! 너 내가 만만해? 매형이 만만하니?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냐?“
주말 아침부터 혜진이 통화로 욕 한 바가지를 남동생 현우에게 쏟아낸다. 현우의 빚 독촉 전화가 남편 진우에게까지 오자 그간 투명인간 취급하던 동생에게 몇 년 만에 전화해서는 악담을 퍼부었다.
현우는 올 해로 서른다섯, 혜진의 연년생 동생이다. 지방의 3년제 대학 방사선과를 졸업했지만, 지금은 인력사무소로 출근하며 하루 벌어 하루 살고 있다. 1년 전까지는 부모님과 함께 살았지만 지금은 청주에 지내고 있다. 청주에 따로 연고가 있는 건 아니다. 인력 사무소에서 만난 나이가 3살 많은 형이 청주에 일이 많다고 내려와 같이 지내는 건 어떠냐고 제안을 했고, 현우 역시 집에서만 있기엔 눈치가 보여 월 20만 원의 생활비를 내고 그와 함께 지내고 있다.
현우의 삶이 지금처럼 꼬여 버린 건 아주 사소한 습관 하나 때문이었다. 바로 ‘빌려 쓰기’. 공유 경제 시대이고 SaaS다 뭐다 이젠 소유하지 않고 빌려 쓰는 시대라곤 하지만, 모든 일에는 대가가 따른다. 현우는 ‘돈 빌리기‘의 신동이자 대가다. 어릴 적부터 떡잎이 남달랐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되자 잠재능력이 발현되었고 스무 살이 되자 그 능력이 만개하기 시작했고, 서른이 되자 집안을 거덜내기 시작했다.
2002년 대한민국에 붉은 물결이 한창이던, 축구하나로 전국이 뜨겁던 6월 어느 날.
현우 집 초인종 소리가 들린다.
“현우엄마~ 저 영호 엄마인데요. (똑똑똑)“
낮잠을 자다 초인종 소리에 놀란 현우의 은숙은 황급히 나가본다.
“저희 애가 현우에게 15만 원을 빌려줬는데 지금까지 못 받았다고 해서요. 근데 문제가 반에 5명 정도가 현우한테 빌려줬다고 하더라고요. 금액도 꽤 된다고 하던데 알려드리려고요. “
은숙은 그녀를 소파에 앉히고는 남편 경수가 베트남 출장 때 사온 G7 커피를 꺼내, 가장 좋은 찻 잔에 담아 내보인다. 연신 미안하단 말을 마음을 담아 건네고는 15만 원에 5만을 더해 그녀를 돌려보낸다.
은숙은 가슴이 두근두근거렸다.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됐다. 그날 저녁 퇴근한 남편 저녁을 차려주곤 현우의 일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 혼란스러웠던 본인과 달리 너무나 태연한 남편의 대응에 흠칫 놀랐다.
“이야 그놈, 배포도 크다. (하하) 역시 내 아들이야. 뭘 걱정을 그렇게 해. 애들 크다 보면 그럴 수 있지. 적당히 혼내고 돈 갚아줘”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남편 경수가 경제활동을 혼자 하고 있고, 집에서 큰소리를 칠 때라 은숙은 그가 하자는 대로 적당히 얘기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은숙이 인생에서 가장 후회하는 순간이 바로 이때다.
현우의 제대로 된 대부인생이 시작된 건 스무 살부터다. 대학을 가게 되며 현우는 대전에서 홀로 자취를 하게 되었다. 대학생활에도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터라 수업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와 하루종일 게임을 했다.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는 눈치 보느라 자제했는데, 혼자 살게 되니 천국이 따로 없다.
'밥 먹고 게임하고, 학교 다녀오고 게임하고'
하지만 게임계도 현질을 하지 않고서는 다음 레벨로 빠르게 넘어가지 못한다. 처음엔 만원 이만 원 문화상품권을 현금으로 구매해 캐시를 충전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용돈이 바닥나고 다른 방도가 없었다.
하지만 현우가 누군가?! ‘빌려 쓰기’ 신동이자 대가 아니던가. 휴대폰 소액결제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부모님이 핸드폰 요금 자동이체 내주셨기에 당장 현금이 없더라도 결제가 가능했다. 엄마가 알면 혼나겠지만 그건 요금이 청구되는 20일 후다. 오늘 아이템을 사는 그 순간부터 20일간은 행복할 거다. 그리고 만약 걸리더라도 그날만 좀 혼나면 언제나 그랬듯 부모님은 용서하고 넘어 갈 것이다!
현우는 게임 못지않게 술도 좋아한다. 게임에서 만난 친구들과 모임도 하고 술도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마신다. 기분내기도 좋아해서 계산은 꼭 자기가 한다. 없으면 빌려서라도 한다.
보통 사람이라면 스팸으로 연락처를 차단할 메시지에 그는 반응한다. 오늘 술 먹을 돈이 없다면 알바를 해서 돈을 벌고 노는 게 아니다. 현우는 일단 소액 대출을 받고 나중에 돈 벌어서 갚을 거라 긍정 회로를 돌린다. 인터넷에서 알아본 대출 100만 원을 신청했더니 5분도 안 돼 10만 원을 제외하고 90만 원이 입금되었다.
그렇게 백만 원씩 늘리다 보니 3천만 원의 빚이 생겼다. 딱히 뭘 한 건 없다. 빚은 늘었는데 남은 게 진짜 하나도 없다. 다 현우 뱃속, 친구들 뱃속으로 들어간 술과 안주들만 있었다.
진우는 상견례 자리에서 현우를 처음 봤다. 예비 처남은 방사선과 예비졸업생이고 곧 임상병리사 관련 국가고시 소위 '국시'를 본다고 했다. 결혼 후 6개월이 지났을 땐 국시를 통과하고 강원도의 대학병원에서 취직이 됐다고 들었다. 학교 교수님이 대학병원 취업에 많이 도움을 주었다고. 친할머니 생신 때 친척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취업 소식을 당당하게 알렸다. 아버지 경수는 아들 취업 소식에 입이 귀에 걸렸고, 강원도에서 가장 비싼 전셋집을 구해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현우의 학교에서 은숙에게 연락이 온다.
"안녕하세요 어머님, 현우학생이 연락이 안 되어 전화드립니다. 이번학기 등록을 하실 건지 아니면 제적처리를 해도 되는 건지 확인이 필요해서요."
은숙은 이 통화가 도통 무슨 의미인지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 취업한 아들이 졸업을 하지 않았다니. 그리고 제적처리를 당할 수도 있다니.
알고 보니 현우가 얘기한. 모. 든. 게. 거짓말이었다. 졸업도, 취업도 그날 은숙은 현우의 자취방을 급습했다. 입구부터 느껴지는 쾌쾌한 향기, 전 날 먹은 듯한 소주와 국물 그대로 남겨져 있는 컵라면, 그리고 오후 1시가 되었는데 널브러져 자고 있는 현우를 발견했다.
그날 은숙은 그곳에 앉아 하염없이 울었다.
"엄마 아빠가 좋아할 거 같아서 거짓말했어. 친척들 다 있을 때 얘기 하면 좋잖아. 그리고 나 정말 1년 후에 국시 붙어서 대학병원 들어갈 거야."
아무런 죄책 감 없이 내뱉는 현우의 거짓말에 은숙은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자신의 인생은 왜 이 모양인지, 아무리 마음을 다잡으려 해도 진정되지가 않는다.
그날부터 은숙은 아들을 다시 살려보려고 정신과도 다니고, 1:1 맨 마킹을 하며 졸업까지 시켰다. 아들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러다 남편 경수의 퇴직금 2억까지 현우의 빚 갚기로 날려버리게 되자, 그때서야 뒤늦은 포기를 하게 된다. 더 이상 현우의 빌려 쓰기 신공을 서포트해 줄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추석이 명절을 앞두고 현우가 집에 찾아왔다. 요즘 경수는 퇴직 후 소득이 없어 고민이 많다. 가지고 있는 건 아파트 하나밖에 없는데 주택담보 대출을 받을지 말지를 고민하다 은숙에게 털어놓는다.
"여보 대출 받지 마요. 못 갚으면 어떡하려고 그래요. 우리 그래도 아직 통장에 몇 년 치 쓸 돈은 있어요. 내년부턴 국민연금도 나오니깐 조금 더 참아봐요"
방에서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현우가 밖으로 나와 참견하기 시작한다.
"엄마, 대출은 나쁜 거 아니야. 다 쓰라고 존재하는거지. 빌려서 갚으면 되지 무슨 걱정이야.(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