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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야 Oct 23. 2021

잊혀진 것들에게 보내는 안부

당신에게서 잊혀진 것은 무엇인가요?


잊혀진 채로 무심히 구석 한 귀퉁이에 있던 것들이 예상치 못한 곳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날이면 나는 당황스러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급하게 처리할 일이 있어 집을 나서던 날이었다. 허둥지둥 볼 일을 보고 난 후 차 안에서 한 숨 돌리고 있을 때였다. 햇빛이 너무 강한 탓에 빛을 가리려 무심코 선바이저를 내렸는데 그 사이에 끼워져 있던 명함들이 후두두둑 떨어지는게 아닌가. 내가 언제 이 많은 명함들을 끼워 났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을뿐더러 도대체 얼마만큼의 시간 동안 이곳에 끼워 났는지도 알 수 없었다.


무릎 위로 어지럽게 떨어져 있는 명함들을 가지런히 주워 하나하나 살펴보던 중 나는 하나의 명함에서 눈길이 멈췄다. 너와 함께 갔던 음식점의 명함이었다. 시골에 있던 돈가스 집. 

맛집이라길래 꽤나 먼길을 운전해 찾아간 음식이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거 없다는 말처럼 맛집이라고 했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생각 이상으로 너무 맛있게 먹었던 탓에 다음에 또 오자고 약속을 하며 명함을 들고 나왔던 곳이었다.


“이게 아직도 여기 있었네....” 


언제였더라, 너와 함께 그곳에 갔던 그때가. 잘 생각이 나질 않는다.

함께 했던 기억들은 시간에 묻혀 꺼내기 조차 어려울 만큼 시간이 흘렀고, 없으면 죽을 것만 같던 너도 더 이상 내 곁에 없다. 

시간은 참 많은 것들을 미화시키기도 하고, 많은 것들을 지워버리기도 한다.

간사한 시간 틈에서 너는 어느새 ‘잊혀진 사람’ 이 되어 있었다.


잊혀진 것들은 입천장에 난 상처 같았다.

아프면서도 자꾸만 건드리게 되는, 건드리면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해서 혀로 건드리게 되는 그런 입천장에 난 상처같은 것.


이 명함을 어떻게 해야 할까, 명함을 손에 꼭 쥐 채로 한참을 생각했다.

가지고 있기엔 다시금 떠오르는 너와의 기억을 지탱하기가 힘들었고, 버리기엔 너와의 기억은 소중했다.

다시 한번, 이 곳에 찾아가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차마 그 곳에 혼자 갈 용기는 나지 않았다. 다시 간다해도 그곳에서 내가 찾을 수 있는 것은 없을테니까.


꼭 쥔 손을 풀어내 다시 원래 있던 곳에 끼워 놓았다.

오늘, 내일, 모레, 일주일, 한 달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또다시 잊혀질 지도 모르겠지만 불쑥 오늘처럼 기억되는 날쯤은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시간이 지나고, 세원이 흘러

무관심 해지고, 잊혀진다고 해도

너는 내게 사랑이었다는 건 분명하니까.

그것까지 시간이 지워버릴 수는 없는 거니까 말이다.

잊혀진 것과 잊은 건 다른 거니까.


오늘 같은 날에는 너에게 안부를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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