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 어디로 놀러 갈까? 숲으로 갈까? 바다로 갈까?" 날씨 좋은 주말, 어디에 가고 싶은지 물어보면 우리 아이들은 100% 바다라고 대답한다. 제주에 온 이후로, 아이들은 바다만 보면 바로 뛰어들었다. 처음 왔을 때는 제법 쌀쌀했는데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무리 추워도 일단 발부터 담근 다음, 모래놀이를 하든, 물장구를 치든, 물에 떠다니는 미역을 줍고 다니든 해변에서 신나게 놀았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은 바다에서 신나게 놀 수 있는 여름이 오길 손꼽아 기다렸다. 비록 엄청 덥고, 습하고, 어딜 가나 휴가 온 사람들도 붐비겠지만, 여름의 제주에는 눈부시게 빛나는 바다가 있으니 모든 걸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마른장마가 지나가고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자, 우리는 기다렸다는 듯이 날마다 바다로 향했다. 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남편과 내 인생에서도 바닷가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여름이었다.
날이면 날마다 바다로
어린 시절, 부산에서 자란 나는 여름이면 가족들과 바닷가에 자주 갔었다. 수영은 못했지만, 튜브 타고 물놀이하는 건 아주 좋아했다. 아빠랑 장난치며 물놀이했던 기억도 아직까지 생생하다. 하지만 어른이 된 이후로는 바닷물에 잘 들어가지 않게 되었다. 물놀이하며 신나게 논 기억도 손에 꼽을 정도다. 그러다가엄마가 되고 나니, 바닷가에 한번 놀려면 큰 맘을 먹어야 했다. 아무리 털고, 씻고, 정리해도, 차 안은 물론이고, 집안에서까지 모래가 끝없이 나왔다. 뒤치다꺼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 같았다.
그래서 처음엔 같이 바닷가에 놀러 가도 물에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아이들이 노는 걸 지켜보기만 했다. 뒤치다꺼리할 생각을 하니, 나까지 보태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물에 들어가지도 않고, 그냥 앉아만 있으려니 영 재미가 없었다. 게다가 한낮의 더위는 물에 들어가지 않고서는 도저히 버틸 수 없을 정도였다.
내적 갈등 끝에 결국 더위가 귀찮음을 이겼다. 나는 뒷일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물로 뛰어들어서 아이들이랑 신나게 놀기 시작했다. 그런데 막상 물에 들어가니까 너무 시원하고, 재밌는 게 아닌가! 애들이 아무리 집에 가자고 해도 안 나오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때부터 나는 물놀이를 진심으로 즐기게 됐고, 우리는 틈만 나면 바닷가로 나가서 하루 종일 놀았다.
김녕 성세기 해변에서의 해수욕
하지만 여름이 깊어질수록 코로나 확진자가 늘면서 사람이 많이 몰리는 해수욕장에 가기엔 걱정스러웠다. 그래서 큰 해수욕장 대신 근처의 작고 조용한 해변을 찾아다녔다. 김녕에 가더라도 해수욕장에서 조금 더 동쪽으로 들어간 성세기 해변으로 갔다. 물이 빠지는 시간에 도착했더니 모래톱도 있고, 물도 깊지 않아서 아이들이랑 물놀이하기 좋았다. 물이 깨끗하고, 하얀 모래여서 물빛도 예뻤다. 물고기도 제법 있어서 스노클링 하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나도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물에 들어가 1호 꼬마랑 수영 연습도 하고, 2호 꼬마랑 튜브 타고 둥둥 떠다니기도 하면서 신나게 놀았다. 아이들은 물에서 놀다가 나와서 모래놀이도 하고, 물고기도 잡고, 언제나 그렇듯 재미나게 놀았다.
물놀이할 때는 아이들을 위해 적당히 놀아준다는 마음으로 임하면 안된다. 아이들의 보호자로 따라온 게 아니라, 나도 같이 신나게 놀아야 모두가 진짜 재밌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리고 아이들은 엄마가 지금 지루해하는지, 신나 하는지 본능적으로 알아챈다. 이걸 깨달은 이후로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물놀이를 즐기기 시작했다. 남편이 맨날 '네가 제일 신난 것 같다'라고 놀릴 정도였다.
그렇게 신나게 놀다 보면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특히, 아이들이랑 물속에서 함께 유영하며, 마주 보고 웃는 순간이 참 좋다.말하지 않아도 아이가 지금 행복하다는 걸, 나도 행복하다는 걸 느낄 수 있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의 웃는 얼굴과 웃음소리가 내 마음에 콕 박힌다. 나중에 아이들의 어린 시절을 회상할 때마다 두고두고 떠오를 순간들이다. 아이들에게도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고, 즐거웠던 기억으로 오래오래 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