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고 싶은 선물 있어?" 작년 결혼기념일을 앞두고, 남편이 내게 물어왔다. 매년 딱히 없다고 대답하기 때문에 그냥 한번 물어나 보자 싶어서 던진 질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평소와 달리 바로 '500만 원!'을 외쳤다.
남편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더니, 잘못 들은 줄 알고 '500만 원? 현금으로? 방금 500만 원이라고 한 거 맞아?' 하며 거듭 되물었다. 아무래도 남편은 농담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주 진지했다. 왜냐하면 500만 원은 구체적인 계산 끝에 나온, 나의 건강한 제주 1년살이를 위한 운동자금(?)이었기 때문이다.
더 늦기 전에 운동을 시작하자
육아휴직을 하면서 내가 반드시 해야겠다고 다짐했던 1순위는 바로 운동이었다. 30대가 된 이후, 연이은 임신과 출산, 육아로 인해서 그나마 있던 체력은 모두 긁어모아 써버렸고, 두 아이 키우면서 일까지 하려니 언제나 내 몸 챙기는 건 뒷전이었다. 그 결과, 하루하루가 다르게 몸이 상하는 게 느껴졌다. 마치 골병이 드는 느낌이었다.
이젠 다이어트가 아니라 오로지 '건강'을 위해서 운동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더 이상 못 버틸 수도 있겠다는 걱정까지 들었다. 그즈음에 나는 '마녀 체력'이라는 책을 우연히 읽게 되었고, 큰 감명을 받았다. 그리고 마흔이 되기 전에 무슨 운동이든 반드시 시작을 하고, 꾸준히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문제는 언제나 시간과 돈이다. 그리고 대체로 시간이 있으면 돈이 없고, 돈이 있으면 시간이 없다. 육아휴직을 하면 운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생기지만, 운동하는데 큰돈을 쓰는 게 부담스럽기도 하다. 그래서 돈 걱정 없이 하고 싶은 운동을 배우기 위해서 미리 운동자금을 모을 계획을 세웠다. (물론 돈을 들이지 않고 운동하는 방법도 많지만, 나는 필라테스를 하고 싶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자금이 필요했다)
1년 동안, 일대일 또는 소그룹 레슨으로 필라테스를 배우는 데 드는 비용을 계산해보니 대략 500만 원 정도가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휴직 전까지 내 월급에서 일부 떼서 모아도 되지만, 그렇게 하더라도 우리 집 재정관리를 맡고 있는 남편의 동의가 필요했다. 남편은 운동자금으로 500만 원이 필요하다는 나의 주장에 처음에는 황당하다는 반응이었지만, 끊임없는 설득과 여러 차례의 협상 끝에 내 비상금 통장에는 500만 원이 채워졌다.
내가 필라테스를 좋아하는 이유
나의 첫 필라테스 수업은 첫째 육아휴직 중이던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이를 처음 어린이집에 보내고, 하루에 3시간 정도의 자유시간이 생기자마자 나는 제일 먼저 필라테스 센터에 찾아가 등록했다. 이미 그때부터 아이 낳고 몸이 예전 같지 않다고 느꼈던 터라, 운동이 꽤 절박했던 때였다.
그런데 등록하고 딱 한 번 수업을 들으러 간 다음 날, 나는 둘째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계획에 없던 임신이어서 그 당시에는 필라테스고 나발이고 제정신이 아니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센터에 환불하러 갔더니, 임신부를 위한 필라테스 수업도 있는데 반을 옮기는 건 어떻겠냐고 권했다. 시작하자마자 포기하고 싶지 않았기에 나는 둘째를 임신한 채로 필라테스를 배우기 시작했다.
배가 불러올수록 몸은 무거워졌지만, 필라테스는 재밌었다. 특히 운동할 때 근육들을 의식적으로 사용하는 느낌이 좋았다. 선생님이 설명하면서 보여주는 동작들을 정확하게 해낼 때는 뿌듯했다. 운동하면서 자기 효능감을 느껴본 게 정말 오랜만이었다. (타고난 뻣뻣함 때문에 늘 자괴감에 시달렸던 요가 시간과는 전혀 달랐다)
나는 필라테스를 할수록 이 운동이 나에게 잘 맞다고 생각했지만, 슬프게도 꾸준히 계속할 수는 없었다. 둘째 출산 후 3개월 만에 복직하면서 나는 극도의 시간 빈곤에 시달렸고, 결국 운동과도 담을 쌓고 말았다.
온전히 내 몸에 집중하는 시간
나는 제주에 내려가자마자 집 근처의 필라테스 센터부터 알아보기 시작했다. 제주 시내에 살다보니, 다행히 집 주변에 선택지가 많았다. 막판까지 일대일 수업이냐, 소규모 그룹 수업이냐 고민했지만, 필라테스를 꾸준히 해온 친구들이 처음 시작할 때는 일대일 수업이 좋다고 추천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물론 저질체력으로 그룹수업을 따라갈 자신도 없었다.
운동을 시작하고 보니 (당연한 소리지만) 역시 일대일이 좋구나 싶다. 선생님이 기초부터 차근차근 내 수준에 맞게 진행하고, 동작도 하나하나 다 잡아주니까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 게 맞나 걱정 안 해도 된다는 게 제일 마음 편하다.
무엇보다 일주일에 한두 시간, 선생님과 둘이서 운동하는 시간만큼은 내 몸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어서 좋다. 나의 근육들을 의식하면서 몸을 움직이고, 땀 흘리는 시간이 소중하다. 그 시간만큼은 몸은 힘들어도 나 자신을 돌보고 있다, 아끼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아직은 운동할 때마다 곡소리가 절로 나오고, 선생님께 '코어에 힘이 풀렸어요!' 소리를 자주 듣는다. 그래도 끝나고 나면 몸도, 마음도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다. 운동하고 나면 이렇게 좋은데 그동안 왜 못했을까 싶기도 하다. (일주일에 한두 시간이면 절대적으로 많은 시간도 아니다)
앞으로는 아무리 바빠도 나를 위해서 운동하는 시간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건강하고 멋진 40대가 되기 위해서 내 몸부터 스스로 챙기고, 돌볼 것이다. 그렇게 꾸준히 하다 보면 언젠가는 몸도, 마음도 중심이 잘 잡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