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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Nov 14. 2021

<콰이어트>, 나 이토록 내향적인 사람이었구나

내향인에 의한, 내향인에 대한, 내향인을 위한



<콰이어트>, 수전 케인 지음, 김우열 옮김, 알에이치코리아(2012)

이 책을 읽은 건 2019년, 막 10월이 시작됐을 무렵이다. 9월에 휴직을 하게 됐는데 집에 혼자 조용히 있는 시간이 너무 좋았다. 이게 단순히 몇 년간 일을 하다가 이렇게 쉬니까 좋다, 정도가 아니라 여러 사람이 함께 일하는 사무실의 소음, 들려오는 업무 대화 속에서 포착되는 미묘한 신경전 같은 것들에서 해방된 기분.   


  ‘조용한 공간’에 홀로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간단한 요리를 하거나 생각을 하고 일기를 쓰는 시간이 ‘나에게 아주 꼭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편안한 시간’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동안 심리적으로 육체적으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과한 자극에 노출되어 왔다는 것을 알게 됐다. 보다 중요한 깨달음은 내가 그런 자극을 버거워하는 성향의 사람이라는 것을 '스스로가 몰랐다'는 점이다.


  즉 내가 그 시간들을 보내온 방식이, ‘나는 원래 집순이고 이런 과한 자극을 힘들어하지만 먹고사는 건 중요하니까, 혹은 이 일은 내게 소중하니까 잘 버텨보자’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랬다면 나름대로 어떤 대처 방안을 만들어가면서 스스로에 맞는 방식의 휴식을 취하며 생활했을 것이다.


나는 내가 집순이인 줄도, 공동의 공간에서 많은 소음 속에 여러 사람들과 일하는 것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 성향의 사람인 줄도 제대로 몰랐다. 그저 일이 힘들다 보니 이런 환경적인 것들에도 다 불만이 생기고 힘들게 느껴진다고만 생각했고 남들도 다 힘들 테니 견뎌내야 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내가 처한 환경이 내 성향과 너무나 맞지 않다는 것을 몰랐고 그러다 보니 다른 여러 힘든 상황들과 맞물려 몸과 정신이 더욱 피폐해졌던 것 같다.


 이런 생각들을 할 때쯤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내향성-외향성 자가진단 문항이 있는 포스트를 보게 됐고 내가  ‘내향적’인 사람에 해당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는 걸 알았다. 스무 가지 문항이었는데, 그중 19개 항목에 해당되었다.


 예를 들어 ‘나는 단체 활동보다는 일대일 대화가 좋다’,

 ‘나는 글로 자신을 표현하는 게 좋을 때가 많다’, 

‘나는 동년배들보다 부나 명예나 지위에 덜 신경 쓰는 것 같다’, 

‘나는 일이 끝날 때까지는 사람들에게 내 작업을 보여주거나 그것은 논의하고 싶지 않다’, 

‘나는 밖에 나가 돌아다니고 나면, 즐거운 시간을 보냈더라도 기운이 빠진다’, 

‘나는 전화를 받지 않고, 음성사서함으로 넘어가게 내버려 둘 때가 종종 있다’, 

‘꼭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일정이 꽉 찬 주말보다는 전혀 할 일이 없는 주말을 선택하겠다’ 등등의 문항이었고, 마치 누가 내 마음을 읽어주는 것 같았다.


  이 문항들의 출처가 <Quiet : 시끄러운 세상에서 조용히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라는 책이길래 망설임 없이 바로 주문하고(*책 35~36쪽에 20개의 전체 문항이 나온다), 하루 이틀 사이에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평소에 내가 겪던 상황들, 그 상황 속에 느꼈던 감정들이 고스란히 언어화되어 있었다. 더운 여름 갈증이 심할 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벌컥벌컥 들이켜는 기분으로 시원하게 읽었다. 이 글 작성 후 얼마 후에 MBTI를 처음 해 봤었는데, 결과는 INFJ였다.


 먼저 이 책의 앞부분에서는 ‘내향성’이란 단어에 대해 고찰한다. 내향성-외향성은 기질의 ‘남과 북’이라고 할 수 있으며 내향성-외향성 스펙트럼에 따라 뇌 경로와, 신경전달 물질과, 신경계의 말단도 바뀐다고 한다. 내향성은 무작정 달려들기보다 차분히 고려하는 기질로, 내향적인 사람과 외향적인 사람은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 필요한 외부 자극의 수준이 다르다는 게 핵심이다.


내향적인 사람은 훨씬 적은 자극, 그러니까 가까운 친구와 와인을 한잔 홀짝이거나, 가로세로 낱말 맞추기를 풀거나, 책을 읽는 정도가 ‘딱 맞다’고 느낀다. 반면 외형적인 사람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가파른 슬로프에서 스키를 타고, 오디오 볼륨을 높이는 등 좀 더 강력한 자극을 즐긴다.(p.31)


 데이비드 윈터라는 성격 심리학자는, 왜 전형적인 내향성의 사람이 유람선에서 파티를 벌이느니 해변에서 책을 읽으며 휴가를 보내고 싶어 하는지 설명한다. ‘타인이라는 존재는 매우 강한 자극'으로 위협, 두려움, 도주, 사랑을 불러일으킨다. 내향인에게 사람 100명은 책 100권이나 모래알 100개와 비교하면 매우 자극적이라는 것.


내향적인 사람은 사교술도 뛰어나고 파티와 사업 미팅을 즐길 수도 있지만, 잠시 지나고 나면 집에서 파자마 차림으로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가까운 친구, 가까운 동료, 가족에게 에너지를 집중하는 쪽을 좋아한다. 말하기보다 듣고, 말하기 전에 생각하고, 말보다는 글로 자신을 표현하는 쪽이 낫다고 느낄 때가 많다. 갈등을 싫어하는 편이다. 수다는 두려워하지만, 깊이 있는 논의는 즐긴다.(p.32)


 요는 ‘내향성’이란 '자극이 과하지 않은 환경을 좋아하는 성향'이다. 그렇지만 난 꽤 오랜 시간 스스로 외향적인 줄 알고 살아왔다. 아주 어린 시절의 나는 내향적인 아이의 특징을 꽤나 많이 갖고 있었지만 국민학교(핫..)에 입학하면서부터는 그렇지 않았다.


난 왜 ‘외향적’인 사람이 되도록 교육받았으며, 외향적인 사람이 되도록 애쓰고, 또 언제부터는 아예 그런 사람인 것처럼 살게 된 걸까? 아마도 우리 사회가 외향적이고 적극적인 것, 활발하고 사교적인 것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일 것이고, 그런 기준에 부합하도록 교육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식의 생존에 유리할 거라는 부모님 나름의 마음이기도 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콰이어트'를 읽으며 느낀 첫 번째 시원함은 ‘외향성의 신화’에 대한 부분이다. ‘어떻게 외향성이 우리 문화의 이상으로 자리 잡았을까’에 대한 이야기가 꽤나 흥미로웠다.


영향력 있는 문화역사가 워런 서스먼에 따르면 미국은 ‘인격의 문화’에서 ‘성격의 문화’로 전환했고, 결코 회복하지 못할 개인적인 불안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렸다. 인격의 문화에서 이상적인 자아는 진지하고, 자제력 있고, 명예로운 사람이었다. 중요한 것은 대중에게 어떤 인상을 주느냐가 아니라, 홀로 있을 때 어떻게 행동하느냐 였다. (..) 하지만 ‘성격의 문화’를 수용한 뒤로, 미국인들은 타인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대담하고 재미있는 이들에게 매료되었다. 서스먼은 이를 이렇게 표현한 것으로 유명하다. “새로운 성격의 문화에서 각장 각광받는 역할은 연기자였다. 미국인은 너나 할 것 없이 ‘연기하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p.46)


  저자는 이런 문화의 진화 과정을 이끈 주요 원동력으로 산업 성장을 이야기한다. 20세기가 되자 거대 산업, 도시화, 대규모 이민이 겹치면서 도시로 인구가 밀려들고 사람들은 이제 이웃이 아니라 낯선 이들과 함께 일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는 방법을 찾아내야 했다. 1920년이 되자 인기 자기 계발서도 내면의 덕목에서 외부의 매력으로 초점을 바꾸게 되고, 부모들은 점점 어린 나이에 아이를 학교에 보내게 된다.


학교에서는 주로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는 법을 가르치고, 내향적인 아이들은 흔히 문제 사례로 지적된다. 이렇게 ‘외향성’이 롤모델이 된 문화와 이것이 현대인의 불안으로 이어지는 설명들도 무척 흥미롭다. 이런 현상은 부연 설명할 필요도 없이 우리의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고, 나 또한 그런 구조 하에서 교육받고 자라났다.


 이 부분은 책의 마지막 챕터에 나오는 ‘가짜 외향성과 자기 감시 - 연기력이 뛰어난 사람들’과 연결된다. 스스로가 ‘자기 감시’가 발달된 사람인지를 판별하는 질문으로 ‘누군가를 즐겁게 하거나 그들의 호감을 사기 위해서 자신의 의견을 바꾸거나 행동방식을 바꾸는 것을 거부하겠는가?’, ‘서로 다른 사람과 서로 다른 상황에 맞게 자신의 행동을 바꾸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가?’와 같은 내용이 언급되는데 자기 감시가 발달된 사람들은 전자의 질문에 대해 ‘아니오’라고 체크하는 사람들이다.


이에 따르면 나는 자기 감시가 강한 사람에 해당될 것이다. 내향적인 사람들 중에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성향과 취향을 무시하고 타인에 맞추어 연기를 하며 살아왔을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이다. 안타깝게도 나에게는 해당되는 얘기였다.

우리에게 핵심이 되는 프로젝트를 파악하기가 늘 쉽지는 않다. 그리고 내향적인 사람에게는 이것이 특히 어려울 수도 있다. 상당한 시간을 외향적인 기준에 동조하느라 직업을 고를 때가 되면 자신의 취향을 무시하는 것이 지극히 일반화되어 있다. (..) 이제 나는 내 소중한 프로젝트가 무엇인지 주저하지 않고 말할 수 있었다. 남편과 아들, 글쓰기. 이 책의 가치 홍보하기. 일단 이것을 깨닫고 나자, 바꿔야 했다. 나는 월스트리트 변호사로 일한 시간을 국외 거주자로 살던 시간으로 여긴다. 그것은 매력적이고 흥미진진했다. 내가 그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만나지 못했을 재미있는 사람들도 수없이 만났다. 하지만 나는 늘 외국인이었다. (pp.332-333)


위의 내용은 특히 공감이 간다. 십 대에는 핵심이 되는 프로젝트가 너무나 명확해서 잘 몰랐지만 이십 대 후반부터 약 10년간의 삶을 생각해보면.. '국외 거주자로 살던 시간'이라는 표현이 정말 공감된다. 두 번째로 느낀 마음속 시원함은 <협력이 창의성을 죽일 때> 챕터를 읽을 때였다.


"나는 단독 마구에 맞는 말이지, 2인용이나 팀워크에는 맞지 않는다. (..) 무엇이든 뚜렷한 목표를 달성하려면, 생각과 지휘를 한 사람이 담당하는 것이 필수라는 점을 잘 알기 때문이다.”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저자는 내향적인 사람들은 홀로 일하기를 좋아하고, 고독은 혁신의 촉매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흥미로웠던 내용은 창의적인 사람일수록 내향적인 사람의 경향이 나타났다는 점이다. 이들은 대인관계 기술은 있지만 ‘딱히 사교적이거나 외향적이지는 않았으며’ 그들은 자신을 독립적이고 개인주의적이라고 묘사했다. 더불어 이 책에서는 여러 연구와 실험 사례를 제시하면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낸 사람들에게는 의도적으로 혼자서 연습하고, 탐구하고, 몰입한 시간이 있었다는 걸 보여준다. 내향인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학교 교육의 협력 모형과 토론 중심의 단점(물론 장점도 있을 것이다)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가는데, 인용된 인터뷰의 내용이 재미있다.


이런 교육 방식은 독창성이나 통찰력이 아니라 언어 구사력에 따라 사람을 존중하는 기업계를 따른 겁니다. 말을 잘해서 이목을 끌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하는 거죠. 능력이 아닌 다른 뭔가를 토대로 하는 엘리트주의입니다.(p.129)


  그동안 나 스스로 언어화하지는 못했으나 한편에 늘 자리하고 있던 문제의식이 여러 연구 결과를 기반으로 꼼꼼하게 집대성되어 있었다. 공감 갔던 내용들을 읊자면 책 한 권 전체를 옮겨야 할 것이다. 이 책에서 실질적으로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은 마지막 부분에 나온다.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책에서 정답을 얻을 수 있다기보다는 생각의 방향을 전환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있다. 스스로에게 맞는 답을 찾는 것은 그 이후부터 시작일 것이고.


여러분이 내향적인 사람이라면 재능을 활용해서 플로를 찾아라. 여러분에게는 인내력과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성향과, 다른 사람들이 걸려드는 덫에 걸리지 않는 밝은 눈이 있다. (..) 사실 여러분에게 가장 큰 도전은 자신의 장점들을 조화시키는 일일 것이다. 여러분은 어쩌면 열의에 차고, 보상에 민감한 외향적인 사람처럼 보이려고 지나치게 애를 쓰느라 자신의 재능을 과소평가하거나 아니면 주변 사람들에게 과소평가를 받고 있다고 느낄지 모른다. 하지만 자신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일에 집중할 때, 아마 자신의 에너지가 무한하다고 느낄 것이다.(p.266)


그러니 자신의 본성에 충실하자. 느리게 천천히 가는 방식이 좋다면 다른 사람들 때문에 경주를 해야 한다고 느끼지 말자. 깊이를 즐긴다면, 넓이를 추구하려고 자신을 몰아붙이지 말자. 멀티태스킹보다 하나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면, 그런 방식을 고수하자. 보상에서 비교적 자유롭기에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는 헤아릴 수 없는 힘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러한 독립성을 좋게 활용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 내향적인 사람을 위한 묘책은 지배적인 기준에 휩슬리도록 자신을 방치하지 말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존중하는 것이다.(p.266)


  내가 ‘원래’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깨닫는 것은 이 시기의 내게 절실한 문제였기 때문에 이 책은 말할 수 없을 만큼 큰 도움이 되었다. 내가 ‘나 아닌 모습으로 그저 잘 못 살아온 것’이 아니라 그렇게 살아온 이유와 배경의 일부를 이해할 수 있었고, 지금에 와서 싫든 좋든 그 모습도 ‘나’라는 걸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 있었다. 무엇보다 '나 자신을 내 성향에 맞는 방식으로 잘 활용하는 방법’에 대한 아이디어도 얻을 수 있었고. 아주 적절한 시기에, 그래서 더욱 흥미롭게 읽었던 책으로 기억될 것 같다.


(2020년 5월 23일 작성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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