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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랐지만, 매일 조금씩 사람이 되어갔다

건방졌고 서툴렀던, 개복치의 첫 인턴 일지

by 집구석마케터

이번 이야기는 앞선 창업을 위해 만들어진 '수탐' 프로젝트를 유지하는 동안 인턴으로 취업하여 일하게 된 이야기로 첫 창업 스토리를 못 보고 오셨다면 읽고 오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들어가며


남다른 경험을 쌓았다고 생각했지만, 새롭게 시작하고 도전해야 하는 부분, 경험이 없는 부분에 있어서 겁나는 것은 매한가지였습니다.


그래서 막연하게 사회의 일원이 되어 독립을 해야 한다는 두려움이 있었고, 그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급한 마음에 인턴을 시작하게 되었죠.


오늘은 건방졌고, 서툴렀고, 부족하기만 했던 인턴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두려워서 휴학했습니다


인턴을 하게 된 계기는 '사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전역하고 나서 창업팀에 들어가고 나름 남들과는 다른 경험을 쌓았다고 생각한 시점. 팀에서 함께하던 팀원들이 각자의 길을 멋지게 개척해 나가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조급해졌습니다.


그 당시 저는 마케팅이 아닌 UX/UI로의 진로를 희망하며 공부하고 있었고, 대학교 3학년이 끝날 무렵 홍대의 졸업 전시회를 보며 마음속의 자신감이 산산이 부서졌습니다. 불과 1년 차이밖에 나지 않는 그들의 결과물은 너무나 훌륭했고, 저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실력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때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다지아너로서의 재능이 없다는 것을요.


정확히는, 제가 상상한 것과 고민한 것을 시각적으로 구현해 내는 능력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졸업반이 되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판단했고, 홍대 전시회를 본 다음 날 바로 휴학을 결정했습니다.


이력서도, 포트폴리오도 제대로 갖춰진 게 없었지만, '어떻게든 일을 해서 경험을 쌓아야겠다'는 마음 하나로 움직였습니다.


제 실력이 마음에 들 때까지는 학교로 돌아가지 않을 생각이었습니다.


그렇게 정말 운이 좋게도, 부족한 저를 받아주는 회사가 있었습니다. 6개월짜리 인턴이었지만 바로 서울에 자취방을 구해, 촌놈의 서울 생활이 시작됐습니다.



아쇼카 한국(Ashoka korea)

인턴으로서 제가 맡게 된 일은 SNS 관리 외에도 기록 정리, 자료 편집, 디자인, 콘텐츠 기획 보조 등 다양한 잡무들이었습니다.


PPT를 만들고 발표하거나 창업 활동을 해봤던 경험은 있었지만, 회사에서의 '일'은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였습니다.


가장 충격이었던 건, 내가 만든 결과물이 곧바로 외부에 게시되고, 데이터로 평가된다는 사실이었죠.


SNS 콘텐츠 하나에도 사수님의 코멘트가 줄줄이 달렸고, 단어 하나, 문장 순서 하나를 다듬기 위해 열 번도 넘는 수정을 거쳤습니다.


"왜 이 순서로 말했어?"
"이건 아쇼카의 철학과 맞지 않아."
"너무 가볍게 썼다."


그때 처음 배웠습니다.


브랜드에는 어조가 있고, 말에도 전략이 있다는 것과. 그리고 손쉽게 소비되고 있는 콘텐츠 뒤에는 수많은 수정과 고민 끝에 최선의 결과물을 뽑아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요.



퇴근 후, 노트북과 셀프 야근


단순히 디자인 역량이 부족한 것이 아닌 '일머리'가 부족하다고 느낀 저는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더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콘텐츠 용어를 정리하고, 카드뉴스를 다시 구성해 보고, 다른 브랜드를 벤치마킹하며 피드백받은 부분을 복기했습니다.


업무가 많아서가 아니라, 그냥 내가 부족한 게 마음에 들지 않아서.


스스로 괴롭히는 환경을 일부러 만들어내며 성장하고자 했습니다.


"SNS 담당자는 단순히 예쁘게, 보기 좋게 올리는 사람이 아니구나."
"텍스트 몇 글자에 단체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일이구나."


이걸 체감한 순간부터는 '내가 글을 쓴다는 것'의 무게가 달라져야 한다 생각했고, 철저한 기획과 벤치마킹 습관을 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사실상 디자인 역량을 높이기 위해서 시작했던 인턴이었지만, 정작 일을 하다 보니 디자인은 뒷전이 되었습니다.


그 대신, 이 인턴 경험을 계기로 '마케팅'이라는 일에 흥미와 재미를 느꼈고, 진로를 자연스럽게 바꾸게 되었죠.



개복치의 사회생활 1일 차 기록


돌이켜보면, 인턴 경험은 사회에 진출한 후 첫 번째 터닝포인트였습니다. 군대와 창업활동에서 배우지 못했던 다양한 것들을 배울 수 있었고, 처음으로 '일'이라는 걸 사람들과 나누며 해냈던 시기였습니다.


회의는 말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문서 정리를 잘하는 사람이 이긴다.

아이디어보다 일정 관리와 책임감이 더 중요하다.

"다들 바쁘니까"라는 핑계는 아무 의미가 없다.


잘하는 건 없었지만, 꾸역꾸역 버티는 법을 배웠고 자존심 덜고 피드백을 삼키는 훈련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처음 알게 된 사수님은 지금까지도 연락을 주고받는 '사회생활의 첫 스승'으로 남아 있습니다.



퇴사 후에야 알게 된 것들


인턴을 마치고 나서야 알게 됐습니다. 그 시절의 저는 많이 모자랐고, 억울한 게 많았고, 많이 헤맸지만, 그만큼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는 것.


월급은 아주 적었고, 주도적으로 한 일도 많지 않았지만, 그 시간을 통해 '평범한 직장인인 나'를 마주한 시간이었습니다.



개복치 이재선을 소개합니다

인턴 개복치

바닥에서 구르며 최고가 되는 것보다, 살아남는 데 진심인 개복치입니다.


바닥부터 구르며, 사업을 말아먹고, 다시 일어서길 반복한 사회생활 10년 차, 생존형 직장인


Profile

- 스타트업 개복치팀의 개복치 팀장

- 들으면 오~ 할 만한 군생활 경력 보유

- 롤 최고티어 상위 0.1%까지 찍어본 경력 보유

- 침수 피해 4회 '살아있는 재난 블랙박스'

- 비둘기 자택 침공 저지 경력 보유

- 고기 좀 팔아 본 경험 보유(진짜 정육점)

- 창업 두 번 말아먹고 나름 괜찮았다 생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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