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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린 문제만 반복하는 세상을 바꾸고 싶었다

'이건 진짜 될 줄 알았어'라고 믿었던 첫 창업 도전기

by 집구석마케터

혹시 앞선 군생활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스토리를 못 보셨다면, 읽고 오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들어가며


많은 사람들이 '군대 갔다 오면 철든다.'라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철을 너무 일찍 들어버렸는지, 착실한 복학생활 대신, 험난한 창업의 길에 뛰어들었습니다.


오늘은 멋모르고 시작했고, 될 줄 알았지만, 택도 없었던 첫 창업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문제를 푸는 사람에서, 만드는 사람으로

36034248_218520555630552_2762739293699964928_n.png 수탐 배너


전역 후, 디자인과 복학생으로 평범하게 보내고 있었습니다. 수학과는 완전히 멀어진, 예체능 삶의 한가운데였죠.


수학은 저에게는 이미 흑역사로 분류된 과목이었습니다. 하지만, 정말 뜬금없이 수학과의 재회가 시작됩니다.


형의 소개로 창업을 준비 중인 한 팀을 만나게 되었고, 그들이 만들고 있었던 것은 '수학폭탄'이라는 서비스였습니다.'학생의 레벨에 맞는 유사문제를 큐레이션 해주는 수학 서비스'였죠.


설명을 듣자마자 느꼈습니다.

내가 고등학생 때 원했던 서비스잖아?

사실 저는 수학을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았습니다. 모의고사는 늘 2~3등급 수준이었죠. 한 번도 1등급은 찍어보지 못했습니다.


기출문제는 수십 권 사놓고도 끝까지 풀어본 적 없었고, 틀린 문제를 제대로 오답노트로 만들어 모으는 것조차 귀찮아했었습니다.


특히 어려웠던 것은 '뭘 몰라서 틀리는지는 알겠는데, 그걸 다시 연습할 만한 문제를 어디서 찾지?'였습니다.


저는 늘 공부를 요령 있게 해보려 했고, "이런 서비스 하나 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그때 그런 상상 속의 서비스를 만들겠다는 사람들이 제 눈앞에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별 다른 고민 없이 팀에 합류하게 되었고, 그날부터 문제를 '저는 문제를 푸는 사람'이 아니라 '만드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학생들은 왜 또 틀릴까?

KakaoTalk_Photo_2018-04-14-03-15-17.png 수탐 문제 분류 방식 특허 출원


서비스를 만들며 반복해서 부딪혔던 질문이 있었습니다.

"왜 학생들은 오답노트를 써도 같은 문제를 또 틀릴까?"

우리는 수많은 인터뷰와 사례 분석 끝에 기존 문제집이 문제를 분류하는 방식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대부분의 수학 문제는 복합 개념으로 출제됩니다. 그런데 기존 문제집은 대표 개념 하나로만 문제를 분류하고 있었죠.


예를 들어, 이런 식입니다.

삼각함수 60% + 미적분 30% + 극한 10%

이런 문제도 문제집에선 '삼각함수 문제'로만 분류하고 표시하고 있었습니다.


학생이 이 문제를 틀리고 나면, 삼각함수 단원을 복습하며 전혀 다른 문제들을 풀게 되는 것이었죠. 결국, 학생은 공부를 했지만 제대로 된 복습은 못한 셈이 됩니다.


우리는 이 지점에 주목했습니다.

학생들에게 진짜 필요한 문제를 정확히 찾아주자.


진짜 필요한 문제를, 바로 찾게 하자

%EC%BA%A1%EC%B2%98.PNG?type=w3840 실제 수탐 서비스 문제 검색 방식

기존 서비스나 문제집은 문제 하나를 찾기 위해 5단계 이상의 분류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그 과정이 너무 길고 번거로웠죠. 그래서 우리는 발상을 거꾸로 뒤집기로 했습니다.


"학생이 찾는 건 단원이 아니라, 문제 그 자체다."

우리는 문제 중심으로 복합 개념을 태깅하고, 유사도 기반 추천 시스템을 설계했습니다. 학생이 궁금한 문제를 검색하면, '같은 단원'이 아니라 '비슷한 개념 조합의 문제들'이 추천되는 방식이었죠.


지금 보면 단순한 구조지만, 그 당시엔 우리에겐 교육계의 구글을 만들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완벽보다, 일단 작동하게

wweqwr.png MVP 수탐 유사문제 검색 결과 페이지

우리는 처음에 완벽한 서비스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9가지의 핵심 기능을 담은 '수학을 탐하다'라는 이름으로 기획했죠.


하지만 갈수록 느꼈습니다. "이걸 다 개발하려면 진짜 몇 년은 걸리겠는데?"


그래서 방향을 바꿨습니다.


일단 작동하는 걸 먼저 만들자.

그렇게 탄생한 것이 MVP 버전 '수탐'입니다.


우리가 꿈꿨던 풀버전은 끝내 출시하지 못했지만, MVP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실제 학생들에게 닿는 서비스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멈춤


2018년 봄. 수탐 MVP 런칭.


하지만, 졸업과 취업 시즌이 다가오면서 팀원 대부분이 자연스럽게 각자의 길로 흩어졌습니다. 해커톤도 나가고 창업지원금도 받으며 열정으로만 유지하기엔 사회 진출이라는 현실의 벽은 무척 높았습니다.


저를 포함한 몇몇은 2021년까지 사이드 프로젝트로 문제를 업데이트하며 서비스를 유지했지만, 결국 운영을 중단하며 확실한 마무리를 짓기로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우리가 기획했던 방향은 너무 앞서갔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요즘에 와서야 수탐과 비슷한 서비스가 상용화되어 학생들이 사용하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가끔 생각합니다.


조금만 더 붙잡고 있었으면, 어땠을까?



개복치의 첫 창업 기록


수탐은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시장도 선점하지 못했고, 우리가 꿈꾸던 '수학을 탐하다'는 완성되지 않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을 사랑합니다.


군 생활이 저를 단단하게 만들었다면, 수탐은 저를 처음으로 '일할 줄 아는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함께 했던 동료들은 지금도 내가 '함께 다시 뭔가를 해보고 싶은 사람들'입니다.


망했지만, 진심이었고,

실패했지만, 가장 에너지가 넘쳤고,

완성하지 못했지만, 분명히 무언가를 만들고 결실을 맺었습니다.


그 첫 경험이면, 충분히 밀도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함께한 멤버들]

- 대표 : 기재민

- 수학팀 : 공정한 / 엄기영 / 김상현

- 개발팀 : 노종원 / 최희재

- 디자인팀 : 이재선 / 용의주



개복치 이재선을 소개합니다

수학 문제 만드는 개복치

바닥에서 구르며 최고가 되는 것보다, 살아남는 데 진심인 개복치입니다.


바닥부터 구르며, 사업을 말아먹고, 다시 일어서길 반복한 사회생활 10년 차, 생존형 직장인


Profile

- 스타트업 개복치팀의 개복치 팀장

- 들으면 오~ 할 만한 군생활 경력 보유

- 롤 최고티어 상위 0.1%까지 찍어본 경력 보유

- 침수 피해 4회 '살아있는 재난 블랙박스'

- 비둘기 자택 침공 저지 경력 보유

- 고기 좀 팔아 본 경험 보유(진짜 정육점)

- 창업 두 번 말아먹고 나름 괜찮았다 생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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