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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치 못한 남다른 사회생활의 시작

이 정도로는 안 죽어

by 집구석마케터

혹시 앞선 프롤로그를 못 보셨다면, 읽고 오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들어가며


사회생활이라 하면 보통 첫 직장을 떠올리지만, 한국 남자들에게 진짜 사회생활의 시작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군대죠. 그곳은 세상의 논리도, 시간도, 체력도 다르게 작동하는 별개의 세계니까요.


그래서 오늘은 저의 정신적, 육체적 역치가 급상승했던, 그 악명 높은 군생활 이야기로 시작해보려 합니다.

역치 : 일반적으로, 반응 그 밖의 현상을 일으키기 위해 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최소의 에너지 값.


수상한 자대배치


입대는 평범했습니다. 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영장이 나왔고, 이제는 사라진 306 보충대로 울면서 들어갔죠.


26사단 신병교육대에서 한 달을 보내고, 어느 부대로 갈지 기다리던 중, 자대 배치를 위해 여러 간부들과 면담을 하던 중, 운명적인 실수 하나를 저지릅니다.

"아버지가 특전사 출신입니다."

그 말을 하자마자, 면담하던 간부들의 눈빛이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자대 배치 날, 지나가는 조교들과 간부들이 제게 "힘내라", "잘 버텨야 해" 같은 말을 남기며 사라지기 시작했죠. 이때 눈치챘어야 했습니다.


왜 그런 일이 발생했던 것인지는, 자대에 가자마자 알게 됩니다.


자대에 도착하니 붙어있는 부대 이름은 '000 특공대'. 일명 스페셜 포스(Special Forces), 즉 특공대가 제가 들어가게 된 부대였죠. 영화 속에서나 보던 인간병기를 만드는 부대가 제가 가게 된 부대였습니다.



드라마 속 그 부대

화면 캡처 2025-05-31 124927.png 드라마 아이리스 이병헌 타이어

마침내 도착한 곳, 간판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000 특공대"

네, 드라마 아이리스에서 이병헌이 타이어 끌던 그곳. 실제로 그 촬영지였고, 제가 복무한 부대였습니다.


훈련 강도요? 정확히 말하면 특전사의 일반 병사 버전입니다. '열화판 특전사'라고 보시는 게 편할 겁니다.


여기서 사람들은 많이 궁금해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특전사'와 '특공대'가 어떻게 다른 것인지 일반인들은 구분하지 못하죠. 쉽게 요약하자면, '특전사'는 특수 임무를 수행하는 간부 편제의 부대입니다. 반면 '특공대'는 특수 임무를 수행하는 '병사 편제'의 부대죠. 훈련과 임무 난이도로 따지면 당연히 직업 군인인 '특전사'가 훨씬 더 힘듭니다.


특공대는 '특전사'의 열화판이기에 특전사가 하는 훈련보다는 완화된 버전을 훈련하는 것이 '특공대'입니다. 사실상 직업 군인이 아닌 '병사' 기준에선 가장 높은 난도의 훈련과 임무를 수행하는 부대죠.


일반적인 군 생활을 하신 분들은, 부대 훈련을 할 때 산속에서 도망 다니는 북한군 역할의 '대항군'을 쫓고 잡는 훈련을 많이 해보셨을 텐데, 사실 그 '대항군'이 바로 저였답니다:)


매일같이 뛰고, 들고, 오르고, 굴렀습니다. 군 생활 동안의 90%를 육체 단련과 훈련에만 시간을 쏟은 시간이었죠. 그 당시 3km를 10분 초반을 뛰었는데, 느리다고 혼날 정도였습니다. 그냥 군 생활 내낸 인간병기로 가공되고 있었던 셈이죠.



무너졌지만, 단단해졌다


ChatGPT Image 2025년 5월 31일 오후 01_39_34.png 점점 단단해지는 중

사실 무슨 훈련을 받았는지 자세히 적지 않겠습니다. 궁금하다면 만나서 소주 한 잔 할 때 말해드릴게요.


이 글을 통해 군 생활을 요약하자면 이것입니다.

"그 시절 정말 망했다고 생각했지만, 지나고 보니 역치가 자란 시기였다."

그 부대를 다녀왔다고 해서 멋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오히려 "어쩌다 그런 힘든 곳에 가게 되었냐..."는 동정이 전부였죠.


하지만, 그 2년은 정신적, 육체적 한계를 깨부수는 밀도 높은 시간이었고, 그때 익힌 세 가지는 여전히 삶을 지탱하는 버팀목입니다.


'한 걸음 더' 할 수 있다는 극복의 기억

'불편하면 내가, 또는 나를 바꾸자'는 태도

실패해도 '그럴 수 있지' or '다음에 더 잘해야지'라는 덤덤한 마음가짐


군대를 나온 지 1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그 시절이 저를 사람 만들었다는 걸, 인정하게 됩니다.



개복치의 첫 생존 수업


그 시절엔 그저 "왜 나만 이런 곳에 온 거지?라는 생각뿐이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살아남는 법'을 배우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습니다.


할 줄 아는 게 없었지만 어떻게든 버텼고, 도망치고 싶었지만 결국 하루하루를 지나쳤고, 그렇게 개복치의 사회생활 1일 차는 흙바닥 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 후로도 많이 실패하고, 무너졌고, 흔들렸지만 그 경험 덕분에 "이 정도로는 안 죽어"라는 감각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그 감각은, 앞으로도 꽤 오래도록 저를 지켜줄 것입니다.




개복치 이재선을 소개합니다

군인 개복치

바닥에서 구르며 최고가 되는 것보다, 살아남는 데 진심인 개복치입니다.


바닥부터 구르며, 사업을 말아먹고, 다시 일어서길 반복한 사회생활 10년 차, 생존형 직장인


Profile

- 스타트업 개복치팀의 개복치 팀장

- 들으면 오~ 할 만한 군생활 경력 보유

- 롤 최고티어 상위 0.1%까지 찍어본 경력 보유

- 침수 피해 4회 '살아있는 재난 블랙박스'

- 비둘기 자택 침공 저지 경력 보유

- 고기 좀 팔아 본 경험 보유(진짜 정육점)

- 창업 두 번 말아먹고 나름 괜찮았다 생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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